"농어촌어린이집 저출산에 만성적자.. 문도 못닫아"

정선=김호경 기자 2019. 5.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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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 출연 설립자들 진퇴양난
강원 정선군 여량면은 인구가 2000명 정도인 작은 농촌 마을이다. 이곳의 유일한 보육시설인 여량어린이집은 정원이 67명이지만 현재 원아는 5명에 불과하다. 저출산과 이농 현상으로 원아 수가 감소하면서 1994년 설립 이후 올해 원아 수가 가장 적다.

○ 사재로 적자 메우는 농어촌 어린이집

“정부 말만 믿고 고향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사재를 털어 어린이집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후회스럽네요.” 지난달 30일 만난 여량어린이집 설립자인 고재하 원장(73)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원아 감소로 지원금 수입이 줄면서 ‘만성 적자’지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처지다. 이 어린이집은 법적으로 고 원장이 세운 ‘사회복지법인 은혜원’ 소유라 폐원하고 법인을 해산하면 ‘빈손’으로 나와야 한다.

농어촌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 상당수가 이처럼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지만 폐원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폐원 시 모든 재산이 국가로 귀속돼서다.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1392개(2017년 기준)에 이른다. 10곳 중 7곳이 농어촌(53%)과 지방 소도시(20%)에 있다. 1990년대 정부가 건축비용 일부와 인건비 지원을 약속하며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 설립을 적극 장려한 데 따른 것이다.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은 정부 지원을 받는 대신에 국공립 어린이집 수준의 엄격한 관리 감독을 받는다. 원장과 교사 월급은 정부가 정한 만큼만 받을 수 있다. 학부모에게 추가 보육료도 걷지 못한다. 오직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각종 지원금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하지만 2000년대 저출산으로 농어촌 아이들이 급감하면서 운영난이 시작됐다. 정부가 90%를 지원하던 교사 인건비는 2005년 이후 30∼80%로 줄었다. 나머지 인건비와 운영비는 원아 수만큼 지급하는 보육료(1명당 22만∼45만 원)로 충당해야 하는데 원아 수가 크게 줄면서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졌다.

고 원장은 2017년 어린이집 보육교사 두 명 중 한 명을 그만두게 했다. 지난해에는 적자를 메우려고 만기가 2년 남은 화재보험을 해약했다. 그는 정부가 원장 인건비를 지원하는 상향 연령(70세)을 넘어 3년째 월급을 한 푼도 못 받고 있다. 저출산을 내다보지 못한 정부 정책의 실패로 인한 손실을 설립자인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 ‘퇴로’ 열어줘야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전남 나주시의 세지어린이집은 지난해 3월 휴원했다. 휴원 직전 원아는 7명이었다. 이 법인의 김광근 대표이사는 “원아가 최소 12명은 돼야 유지가 가능하다”며 “어린이집 원장인 아내 월급을 다시 운영비로 쓰면서 버텼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연합회에 따르면 원아 10명 이하인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은 32곳, 원아가 11∼20명인 어린이집은 142곳이다. 이 어린이집 대부분이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지만 ‘퇴로’가 없는 상태다.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다른 복지 사업을 할 수도 있지만, 리모델링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사회복지사업법에선 법인 해산 시 남은 재산을 설립자가 처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3년 법이 개정돼 법인 해산 시 남은 법인 재산은 모두 국가로 귀속된다. 자신이 사는 집까지 사회복지법인에 출연한 일부 원장은 법인을 해산하면 집에서조차 나와야 할 처지다.

올해 3월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은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 폐원 시 설립자가 어린이집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법인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며 법 개정에 소극적이다. 김종필 행복나눔보육행정연구소장은 “저출산으로 아동 수가 급감해 도저히 운영할 수가 없는데도 일률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 따져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선=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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