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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바닥 안보이는 한일관계, 납치자 문제부터 차근차근

이승철 입력 2019. 05. 1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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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잘못된 거 아닌가? 원래 북일 관계…. 납치자인데?"

기사 출고 계획을 작성해 올리자,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맞다. 오해할 수 있다. 납치자 문제하면 '북일 관계'의 핵심 의제(일본 측 생각)처럼 돼 있으니까.

하지만 북일 관계가 아닌 한일 관계에서 '납치자 문제'를 바라봤을 때 그려질 수 있는 다각적인 포인트는 짚고 갈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조건 없는 대화…하지만 '납치자 문제' 배제일까?

현재 일본에서 대북 관계를 생각할 때 '납치자'라는 단어를 빼고는 전체 문장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북한 관련 외교는 기승전'납치'로 귀결돼 있다. 북핵 문제가 긴급한 상황에서도 일본은 지속해서 '납치자 문제'를 포함한 포괄적 타결을 주장했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대미 외교를 폈으며 또 한국의 협조를 요청해왔다.

그러던 일본이지만 최근 아베 총리는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을 통해 북한에 '조건'없는 대화를 천명하고 나섰다. '조건 없는'이라는 표현 자체가 처음 나온 것인데다, 연이어 총리가 같은 말을 반복하자, 대북 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해 일본 정부가 납치자 문제 해결 중심의 대북한 외교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교도통신은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1. 조건없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난다.
2. 2002년 북일 평양선언에 기초해 국교 정상화를 지향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3. 북한이 요구하는 다양한 의제에 관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등 3가지 원칙으로 임할 것이라고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납치자 문제'를 완전히 배제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단적인 예로 정부 대변인인 스가 관방장관은 지난 7일 브리핑을 통해 "납치자 가족이 고령화되는 가운데 하루라도 빠른 해결을 위해 다양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2002년 북일 평양 선언에 기초한 국교 정상화도 결국은 '납치 문제 해결'과 연계돼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 총리도 '조건 없는 대화'를 언급한 산케이와의 인터뷰에서 "납치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우선 북일 평양선언에 따라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북한이 처음으로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이 해결을 바탕으로 북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했던 2002년 당시의 '북일 평양선언'의 틀안에서 납치 문제와 북일 관계 해법을 생각하겠다는 의미다.

즉 "납치자 문제를 해결해야 정상화로 나아갈 수 있다"에서 "정상화를 통해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자"는 전략적 배열의 변화가 생겼을 뿐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보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시각

일본이 갖는 납치자 문제에 대한 민감도는 우리나라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납치자의 생일이나 북일 평양 선언일, 혹은 일본에 처음으로 납치자 5명이 돌아왔던 때 등 특정 시기가 되면 납치자 문제에 관한 관련 기사들이 일본 주요 언론에 빠지지 않고 게재된다.

일본인 납치피해자 가족이 미국을 방문, 강연회에 참석해 납치문제의 조기 해결을 촉구했다고 산케이신문이 5일 전할 정도로 관련 가족들의 인터뷰와 동향은 늘 언론의 주요 기사 대상이다.

일본에서는 납치자 문제가 '피해자의 인권','가족의 슬픔','장기간 미제 사건' 등 많은 부분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국민에게 소구하는 부분이 있는 사안이다. 국민적 소구력이 큰 까닭에 평양을 처음 방문한 고이즈미 전 총리도 이 문제 해결을 최우선 해결 사안으로 봤고, 현재 일본 정부의 입장도 사실 비슷하다. 이 문제 해결이 큰 정치적 파급력을 갖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국제 외교무대에서 북한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일본이 '납치자' 문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우리 측에서는 오히려 이를 일본의 과도한 반응으로 보는 반작용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한 외교 당국자는 과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 회담을 진행할 당시에도 일본이 '납치자 문제' 지속적으로 꺼내면서 보다 큰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로서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 등 과거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인권 침해 사건의 피해 당사자로서,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인권 문제로 강조하는 부분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꽉 막힌 한일 관계…남관표 신임 대사, '납치 문제' 사고 전환으로 대화 물꼬 틀 수 있기를

최근의 한일 관계는 글자 그대로 꽉 막혀 있는 상태다. 그저 막혀 있다기보다는 한일 양국이 어디서부터 무엇을 위해 이야기를 시작할지 대화의 돌파구조차 찾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과거 강제 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놓고 일본 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을 거론하며 정부간 직접 협의를 요구하고 있지만, 개인의 청구권이 살아있다는 대법원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 공식 입장인 만큼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9일자 기사에서 '한일 관계 악화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6월 일본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리지만, 한일 정상이 아예 만날 기회조차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 자체가 현재 양국간 외교적 상황을 보여준다.

일단은 한일 간에 어떤 식으로든 시작이 필요한 상황에서 도쿄 외교가에서는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분야로서 '납치자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이다.

그 어느 때보다 남북 정상 간 신뢰가 두터운 상황에서, 최근 아베 총리가 북한과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대북 관계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만큼 한국의 이 부분에서의 역할을 자처한다면 일본이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북한으로서도 일본에 대한 신뢰도가 아주 낮은 상황인 만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한 외교 전문가는 "우리 측이 납치 문제에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은 부분이 없지 않은데, 북한과 일본이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과의 대화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것은 물론, 현재 일본과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북한과 일본이 직접 협상을 통해 급속히 가까워지는 상황보다는 나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9일 일본에 부임한 남관표 신임 주일 한국 대사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현재 대단히 유감스러운 상황이 돼 있다"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북한 관계를 조율한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을 역임한 만큼 한일 관계뿐 아니라 북일 관계 측면에서도 일본 언론들의 기대감 또한 큰 것도 사실이다.

어찌 보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북일 간의 '납치자 문제' 해결에 있어서 작은 중재자 역할을 통해 '한일 경색 국면' 탈피를 모색하는 사고의 전환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철 기자 (neo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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