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발 쏘는데 4분 넘게 걸렸는데..北 신형 자주포 확 달라졌다

이근평 2019. 5. 1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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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은 한국군 명품 K-9에 떨어지지 않아
드디어 제대로 된 자주포 제작 들어간 듯
차체에 뚜껑 닫고, 자동화에 신경 쓴 흔적

별 볼일 없다는 평가를 받던 북한 재래식 무기가 외형만큼은 눈에 띄는 향상을 이뤄냈다. 지난 9일 평안북도 구성 지역에서 미사일과 함께 쏜 신형 자주포 얘기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던 북한이 자체적인 ‘핵무장 완성 선언’ 후 다시 재래식 전력 강화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관영매체는 지난해 9·9절 열병식에서 선보인 이 자주포의 9일 사격 사진을 10일 처음으로 공개했다. 포구경은 한국군의 K-9 자주포(155㎜)보다 작은 152㎜로 보인다. 그러나 겉모습은 K-9과 비교해도 별로 떨어지는 구석이 없다. 밀폐형 포탑이 대표적이다. 기존 북한의 자주포는 M-1991(122㎜) 자주포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개방형 포탑 형태였다. 그래서 방호력이 크게 떨어졌다.

북한이 지난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신형 자주포로 보이는 무기. [조선중앙통신]

뚜껑을 장착한 자주포는 단순히 방호력 상승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신형 자주포의 제원은 아직 베일에 싸여있지만 밀폐형 차체 안에 보호할 만한 장치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자동장전 등 사격통제장치가 그것이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북한이 개방형 포탑을 채택한 이유는 인력으로 포탄을 실어 사격해야 했기 때문”이라며 “이와 다른 폐쇄형 구조는 자동화를 추측케 한다”고 말했다. 과거 북한 자주포에는 자동장전 장치가 없었다. 175㎜ 자주포 일부에서 장전보조기가 포착됐을 뿐이다.

자동화 장치를 갖추면 빠른 시간에 많은 포를 쏠 수 있게 된다. K-9의 경우 분당 6발의 사격이 가능하다. 반면 북한의 대표 자주포인 곡산포는 1발을 쏘는 데 4~5분이 걸린다. 북한이 신형 자주포에 자동화 장치로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의 신형 자주포는 자동화 장치를 통해 방열(목표를 향해 사격 지향을 하고 사격준비를 완료하는 과정) 시간을 단축시켰을 수도 있다. 군사전문 잡지인 플래툰의 홍희범 편집장은 “포를 쏜 뒤 적 포병의 반격을 피하기 위해선 자동화 장치로 빠른 이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며 “밀폐형은 이런 자동화 장치를 보호하는 동시에 승무원의 생존력을 높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방호력과 기동력이 더해진 신형 자주포를 공격 수단으로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군 관계자는 “북한 자주포는 주로 군사분계선(MDL) 인근 구축된 갱도에 숨어 고정된 성격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이해됐다”며 “이제는 진격하면서 ‘치고 빠지기’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북한 신형 자주포의 사거리는 20㎞대에서 30~40㎞로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신형 자주포의 원형으로 보이는 러시아 PLZ-45·PLZ-05 자주포의 제원을 참고한 결과다. 홍희범 편집장은 “사진상 북한 신형 자주포는 45 구경장(포신 길이와 포구 직경의 비율)인 것 같다”며 “이런 점을 종합하면 사거리가 30㎞ 이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9의 경우 52구경장으로 사거리가 40㎞ 이상이다.

북한 자주포는 과거 사거리를 늘리는 데 집중하느라 자동화 등 다른 부분에서 질적 향상을 이루지 못했다. 북한 곡산포는 사거리 연장탄(RAP)을 사용하면 최대 사거리가 54㎞에 달한다. 휴전선 부근에서 사격하면 수도권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동력이 떨어져 “사거리만 볼 만할 뿐 적 공격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직 군 장성은 “이랬던 북한이 사거리 외에 다양한 기술 개발에 나서 제대로 된 자주포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밀폐형 포탑의 자주포는 개방형보다 중량이 무거워져 엔진 성능에서도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북한이 9일 사격한 신형 자주포 차체 앞에 '조선인민민주주의 철천지 원수인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노동신문]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신형 자주포를 필두로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분석관은 “2017년 11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남은 여력을 다시 재래식 전력에 투자하고 있다”며 “이후 열병식에서 기계화 장비의 현대화 모습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훈련 현장에 반미 구호가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다시 포착되는 점도 재래식 군사력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지난 9일 북한 신형 자주포 차체 앞에는 ‘조선인민민주주의 철천지 원수인 미제 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 성과를 놓고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재래식 전력 증강은 핵 개발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홍희범 편집장은 “재래식 전력에선 물량이 중요하다”며 “기술 개발은 차치하고서라도 물량전에서 북한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지켜볼 문제”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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