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선일보

BTS처럼 입어볼까? '핑크' 입는 남자들

김은영 기자 입력 2019.05.12. 10:01 수정 2019.05.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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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명품도, 반항적인 래퍼도 핑크를 입는다
젠더리스·인스타그램 영향으로 밝은색 패션 인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 패션을 선보인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 ‘작은 것들을 위한 시’/방탄소년단 페이스북

여자의 색이라 여겨졌던 핑크(분홍)가 남자의 색으로 부상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달 발표한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뮤직비디오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색조의 핑크 옷을 입고 등장했다. 멤버 지민은 머리를 분홍색으로 염색해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를 점령했다.

BTS뿐만 아니다. 아이돌 그룹을 비롯해 배우, 심지어 반항적인 이미지의 힙합 가수들도 핑크 옷을 즐겨 입는다.

배우 주지훈은 지난해 열린 청룡영화상에서 톰 포드의 핑크 슈트를 입었고,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스타 제이슨 모모아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펜디의 핑크 벨벳 슈트를 입고 나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래퍼 카니예 웨스트, 에이셉 라키도 핑크 슈트를 입었다. 카니예 웨스트는 핑크에 대해 "펑크(불량)하고 예쁘고 강력하다"라고 말했다.

◇ 핑크 패션은 ‘현대적인 남성복’

지난해 열린 2019년 봄·여름 남성복 패션쇼도 핑크 일색이었다. 루이비통에서 디올로 자리를 옮긴 디자이너 킴 존스는 디올 데뷔 무대에서 파스텔 핑크와 꽃무늬, 투명한 자수 원단 등을 사용해 우아한 남성복을 선보였다. 그는 "여성의 전형적인 쿠튀르(맞춤복) 정체성을 남성적인 언어로 번역했다"면서 자신의 옷을 "현대적인 남성복"이라고 주장했다. 버버리, 아크네스튜디오 등도 분홍색 남성복을 내놨다.

이런 분위기 탓일까? 미국 인스타그램 쇼핑 앱 라이크투노잇(LIKEtoKNOW.it)에 따르면 올해 분홍색 옷의 검색량은 3600% 증가했다.

핑크 슈트를 입은 배우 주지훈(왼쪽)과 힙합 가수 에이셉 라키./연합뉴스, 핀터레스트

국내 남성복 업계도 밝은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남성복 코모도는 2017년부터 파스텔 색 계열 슈트 비중을 늘렸는데, 올봄에는 슈트 상품의 52%를 파스텔 색으로 출시했다. 회사 관계자는 "봄·여름의 경우 짙은 색보다 밝은 파스텔 톤의 슈트가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핑크가 갑자기 뜬 건 아니다. 최근 3~4년 사이 핑크는 텀블러 핑크, 스칸디 핑크, 로즈 핑크, 밀레니얼 핑크라는 이름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모두 밝은 파스텔 계열의 핑크다. 2015년 애플이 아이폰 6S의 로즈 골드를 출시했을 때, 전체 예약 주문의 40%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끈 것은 유명한 일화다.

◇ 성 중립·인스타그램 열풍...핑크 전성시대

핑크의 유행 뒤에는 우리 사회 전반에 부는 성 중립 바람이 있다. 최근 패션 시장에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남녀 구분 짓지 않고 입는 ‘젠더리스’ 패션이 부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색으로 여겨졌던 핑크는 ‘성중립을 상징하는 색’으로 선택되고 있다.

실제로 10~20대 소비자가 주 고객인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의 경우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입는 유니섹스 룩이 유행하면서 핑크와 파스텔색, 원색과 같이 밝은 색상의 옷의 수요가 늘었다. 뷰티 업계에는 남녀가 함께 바르는 립스틱이 출시됐다.

인스타그램의 영향으로 핑크색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해석도 있다.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은 분홍색 가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소품을 찍어 올리면 ‘좋아요’가 많아진다고 한다.

‘핑크 호텔’을 콘셉트로 핑크색 인테리어를 선보이는 스타일난다 매장의 경우,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하는 인스타그램 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19 봄여름 패션쇼에 등장한 핑크색 남성복./디올, 버버리, 아크네스튜디오

역사적으로 핑크는 남자의 색이었다. 18세기에는 남녀 상관 없이 상류층이 권력을 표시하기 위해 입었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야망을 드러내기 위해 밝은 핑크색 슈트를 입는다.

남자아이들에게도 핑크색 옷을 입혔다. 1918년 발간된 미국 아동 패션잡지 ‘언쇼스 인팬츠 디파트먼트’는 "분홍색은 힘찬 색깔이기 때문에 남자아이에게 어울리고, 여자아이들은 연약하고 앙증맞은 색인 파랑을 입었을 때 더 예뻐 보인다"고 했다. 핑크가 여성의 색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로 인해 값싼 염료가 나오면서, 기업들이 여성을 타깃으로 마케팅을 펼쳤기 때문이다.

미국 색채 전문기업 팬톤은 올해의 색으로 살굿빛이 도는 핑크색 ‘리빙 코랄’을 내놨다. 따뜻함을 찾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활력과 편안함을 준다는 게 이유였다. 핑크는 남자의 색도, 여자의 색도 아닌 낙천적인 에너지를 가진 색으로 현대인들에게 안식을 준다.

핑크가 대세라지만, 여전히 핑크 입기를 주저하는 남자들이 있다. 회사원 김모 씨(33)는 "분홍색 옷이 예뻐 보여 샀지만, 시선이 부담돼 한 번도 입지 못했다"고 했다. 얼굴에 잘 받지 않는다는 것도 핑크색 옷을 입지 못하는 이유다.

스타일리스트 박만현 씨는 "선명한 색조보다 명도나 채도가 낮은 애시드 핑크나 페일 핑크를 선택하는 게 안전하다"라면서 일상에서 쉽게 핑크를 입는 방법으로 ‘원 포인트 컬러 매칭’을 추천했다. 핑크 셔츠를 입었다면, 하의는 화이트나 베이지 등으로 색을 중화시키는 식이다. 옷이 부담스럽다면 핑크색 신발이나 액세서리로 시도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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