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제'도 막지 못한 과로..이틀새 집배원 3명이 숨졌다

2019. 5. 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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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우체국 소속 무기계약직 30대 집배원 13일 숨져
노조 "과중한 업무로 인한 과로사 가능성 커"
12일과 13일 이틀간 우정사업본부 집배원 3명 숨져
우정사업본부 "과로사 여부는 우리가 판단할 사안 아냐"
한 집배원의 뒷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우정사업본부 소속 30대 무기계약직 집배원이 13일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지난 12일과 13일 이틀 동안 이 집배원을 포함해 모두 3명의 우정사업본부 집배원이 숨진 것으로 확인돼 이들의 과중한 노동 강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집배노조)은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정사업본부 산하 공주우체국에서 일하던 무기계약직 집배원 이아무개(34)씨가 13일 새벽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집배노조의 설명을 보면, 이씨는 12일 밤 10시께 집에 귀가해 피곤해 잠을 자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고, 이튿날 아침 이씨를 깨우려 방에 들어간 어머니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재 경찰에서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집배노조는 이씨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며 과로사 의혹을 제기했다. 집배노조는 “무기계약직이던 이씨는 정규직 집배원 근로시간의 120% 가량 일했고 공짜 노동에도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전국공공운수노조와 우정사업본부, 전문가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지난해 9월 낸 ‘집배원 노동조건 실태 및 개선방안’을 보면, 2017년 기준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우정사업본부 추산 2468시간, 노조 추산 최소 2800시간이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이씨는 못해도 연간 2962시간을 일한 것으로, 같은 해 우리나라 평균 노동시간보다 938시간 더 근무한 셈이다. 아울러 이씨는 주 52시간 근로 정책을 형식적으로 준수해야 했던 탓에 퇴근 등록을 한 뒤에도 공짜 노동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법정근로시간은 단축됐지만 우정사업본부가 인력을 늘리지 않아 기존 집배원들이 기록되지 않는 시간 외 근무를 해야 했다는 게 노조 쪽 주장이다.

이씨가 무기계약직이라는 신분 탓에 과로에서 벗어나기 더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씨의 근무형태는 상시계약 집배원으로,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며 연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무기계약직이다. 집배노조와 우정사업본부 등이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을 꾸려 합의한 내용에 따라, 이들은 올해 순차적으로 정규직 전환이 될 예정이었다. 허소연 집배노조 조직국장은 “이씨가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둔 무기계약직인 만큼 장시간 노동 같은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기 더 어려운 처지였다”며 “상시계약 집배원의 경우 전환 시험을 통해 정규직 채용이 되는 것이긴 하지만, 시험 평가위원이 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근무 태도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4일 오전 10시20분 국회 정론관에서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 관계자가 우정사업본부 비정규직 집배원 사망과 관련해 우정사업본부를 규탄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공공운수노조 제공.

앞서 12일 오전 7시께에는 의정부우체국 소속 집배원 박아무개(59)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같은날 정오께에는 보령오천우체국 소속 집배원 양아무개(48)씨가 지난해 9월께 얻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장기 병가를 내고 투병하다 병세가 악화해 숨졌다. 박씨의 경우 정확한 사인 파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요청한 상태다. 허 교선국장은 “이틀간 3명의 집배원이 세상을 떠났는데 이 가운데 두명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떠났다. 다른 한명은 투병 중이었지만 집배원 과로 문제 등을 고려할 때 그의 질병과 근무환경이 무관하다고 단언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집배원의 과로 문제는 매년 논란이 되고 있다. ‘집배원 노동조건 실태 및 개선방안’ 자료를 보면, 매년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근무 중 사고, 뇌출혈, 심근경색 등으로 20명 안팎의 집배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2017년에는 한 집배원이 일손 부족으로 일요일에 출근했다가 사망했고, 또 다른 집배원이 경기도 내 한 우체국 앞에서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충격적인 장시간 노동을 멈추고 과로로 인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 인력 증원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또 정부는 핵심 정책인 근로시간 단축을 현실화하기 위해 집중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돌아가신 분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아직 완전히 근절하긴 어렵지만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과로사 의혹에 대한 부분은 우정사업본부 쪽에서 판단할 사안이 아니며, (이씨의) 업무량은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분들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공짜 노동을 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주 52시간 근로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집배 노동자가 일찍 출근하지 못하도록 관리를 하고 있다”며 “공짜 노동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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