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진 교권, 떠오르는 학생 인권..같이 갈 길은 없나요

송진식 기자 2019. 5. 15. 0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차라리 “스승의날 없애자” 청원하는 교사들

제38회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올해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스승의날을 없애자”는 취지의 청원이 올라왔다. “스승의날을 없앨 수 없다면 차라리 ‘교육의날’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청원자는 다름 아닌 교사다. 이미 수년 전부터 젊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스승의날 폐지 움직임이 있어왔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설명을 보면 스승의날은 ‘스승 존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교권 확립에 관한 국민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법정기념일 중 군경 직군을 제외하고 특정 ‘직업’을 기리는 날은 스승의날이 유일하다. 정부는 올해 스승의날을 맞아 우수 교원 2967명을 포상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앞장서서 스승의날 폐지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선인 인천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교권침해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스승’이라는 의미가 주는 현실과의 괴리와 무게감을 교사들 스스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최근 교권침해 문제에서 자주 등장하는 게 ‘학생인권’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보수 시민단체들은 교권침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과 같은 학생인권 신장 문제를 들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도 수년째 도교육청과 이들 단체 간 마찰이 빚어지는 중이다. 교총 등의 주장대로 교권과 학생인권은 양립하기 어려운 존재일까.

■ 학생인권조례 놓고 찬반 갈등

한국교총과 보수 시민단체 교권침해의 주요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들어 일부 교사들도 부담감 호소

지난 8일 경남도교육청에서 박종훈 도교육감, 김승환 전북도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이 ‘경남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교육감은 성명서를 통해 “조례를 먼저 시행한 지역은 학생 체벌과 폭력이 눈에 띄게 줄고 교내 배려와 존중의 문화가 싹트는 등 긍정적 변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학교 생활을 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인권을 보장하자는 차원에서 마련된 지방자치 조례다. 2010년 경기를 시작으로 2011년 광주, 2012년 서울, 2013년 전북 순으로 조례가 제정됐다. 경남에서는 2009년부터 학생인권조례 제정 논의가 있어왔지만 반대 목소리에 부딪혀 번번이 제정에 실패했다. 올해는 더불어민주당이 경남도의회의 다수당이고, 정의당도 조례 제정에 적극적이어서 조례 제정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튿날 조례 제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남도교육청은 지난달 26일 도의회에 조례안을 제출했다.

교총과 보수 단체들은 이번에도 조례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경남교총은 지난 13일 성명을 내고 “학교 구성원 간의 갈등과 교육 현장의 혼란을 조장하는 나쁜 학생인권조례”라며 “학생인권과 복지는 교육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수많은 법령에서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보수 단체는 조례안이 학력 저하와 동성애를 부추긴다고 주장하고 있고, “좌파 교육감들이 조례를 주도한다”며 색깔론을 들먹이는 단체들도 있다.

일선 교사들 중에서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있다. 경기 지역의 한 교사는 “교권을 세우려면 학생들에 대한 교내 생활지도가 필수적인데, 학생인권이 강조되다보니 갈수록 지도가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선생님 말을 안 듣고 ‘대드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뜻이다. 교총의 ‘2018년 교권침해 상담 결과’ 자료를 보면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상담 비중은 2016년 10.14%에서 2017년 11.81%, 2018년 13.97%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 교권 붕괴 주요 원인은 ‘학부모와의 갈등’

실제 교권침해 상담 결과는 과도한 요구나 민원 제기 등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절반

하지만 학생들이 교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게 학생인권 신장에 따른 결과인지는 불분명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 지역교육청 관계자는 “과거 수직적이었던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점차 수평적인 관계로 이동하면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며 “학생보다는 학부모와의 관계나 문제 학생에 대한 지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교사가 훨씬 많다”고 밝혔다.

실제 교총의 교권침해 상담 결과를 보면 교권침해 사례 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48.50%가 자녀 문제를 놓고 악성 민원이나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학부모에 의한 피해’였다. ‘학생에 의한 피해’(13.97%)는 ‘처분권자(인사권자)에 의한 부당한 신분피해’(15.97%), ‘교직원에 의한 피해’(15.47%)보다도 비중이 낮았다. ‘교사생활 중 가장 힘든 사안’을 묻는 설문에서도 교사의 절반가량이 학부모와의 관계 문제를 꼽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이날 전국 시·도교육청 중 최초로 ‘교원 업무용 휴대전화 지원’ 사업을 올 2학기부터 시범운영키로 한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사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근무시간 이후까지 이어지는 민원 차단을 위해 1학년 담임교사 중심으로 업무용 휴대전화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사들이 악성 민원에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학교 민원처리 시스템’을 구축해 시범도입하기로 한 것 역시 학부모와의 갈등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시도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교사와 학부모 간 소통은 필요하지만 드물게는 과도한 요구나 민원을 하는 학부모가 있고, 특히 젊은 교사들이 이 문제로 큰 좌절을 겪는다”며 “교육기본법에서는 보호자에게도 교육의 책임을 부여하고 있는 만큼 학부모도 교사와 같은 교육자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학교장들이 이날 ‘학교폭력’ 대응체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 중 상당수가 학폭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에서다.

한국초등교장협의회는 “학교폭력 사안이 교육활동 침해로 이어져 학교가 교육 본래의 역할에 충실하기 어렵게 되고 있다”며 학폭 문제의 교육청 이관, 초등학교 1~3학년 및 학교 밖 폭력 문제에 대한 학폭 제외 등을 요구했다. 다만 교육청들이 학폭 이관에 반대하고 있고, 저학년 학폭에 대해선 학부모들의 의견이 엇갈려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불투명하다.

■ 교사와 학생, 관계 ‘재설정’ 필요

완벽한 ‘성체’인 스승이 아닌 가르치면서 함께 성찰하는 ‘동행자’로 관계 재설정 필요

전문가들은 교권과 학생인권이 공존하기 위해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부터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지역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학생들의 정체성이나 자존감, 인권의식이 계속 성장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교권’ 개념으로만 학생을 대할 경우 당연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시대의 흐름에 맞게 교사들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선인 교수는 “스승은 완벽한 ‘성체’가 아니라 스승으로 일을 해나가면서 학생을 만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함께 성찰해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며 “학생을 가르치는 대상만이 아닌 ‘동행자’로 보고 관계를 재설정해 나간다면 교사라는 직업 이상으로서의 의미를 교사 스스로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교수는 “이런 점에서 스승의날은 폐기하거나 이름을 바꿀 대상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그 의미를 재건하는 게 더 타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