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비웃는 '어린이집·유치원 녹음기'

이재은 기자 2019. 5. 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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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보육시설 내 아동학대 사건에 '어린이집·유치원 녹음기' 인기.. "교사와의 신뢰 관계 깨뜨려 아이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 끼칠 수 있어"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중인 뱃지형 소형 녹음기. 녹음기 위에 스티커를 붙여 눈에 띄지 않도록 한 녹음기다.

"요즘 다들 소형 녹음기 애들한테 몰래 넣어서 등원 보내신다던데 어떤 종류가 좋을까요? 그리고 혹시 교사가 알게 되면 어쩌죠?"
"담임이 알면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불안하니까 녹음하시는 게 나아요. 애한테 시계형 녹음기 사서 보내봤는데 좀 크고요, 옷 밑단 뜯어서 소형 녹음기 집어넣는 게 귀찮긴 하지만 괜찮아요."(온라인 육아 카페에 게시된 글과 댓글)

최근 전해진 어린이집·유치원 아동 학대 사건에 소형 녹음기를 구입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녹음된 음성을 확인해 아동 학대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5일 온라인 육아 카페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소형 녹음기를 구매해 아이가 등원할때 같이 보냈다'거나 '어떤 종류의 녹음기가 좋냐' 등의 글이 다수 게시돼있다.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 사진=임종철

특히 학부모들의 '소형 녹음기' 관련 글은 최근 '서울 목동 어린이집 학대사건'이 불거진 뒤 집중적으로 게시됐다. 지난 7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들이 아동의 머리를 때리고 팔로 몸을 짓누르는 등 학대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선 사건이다.

학부모들은 지속적으로 보육기관 내 아동 학대사건이 이어지는 만큼 아이를 위해서 녹음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본인을 29개월, 15개월 두 아이의 부모라고 소개한 한 학부모는 온라인 육아 카페에 "'목동 학대사건'을 보니 나 역시 걱정되는 맘이 크다"면서 "두 아이를 함께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아이가 언젠가부터 본인 머리를 때린다. 이게 혹시 어린이집 학대 때문인지 궁금해 녹음기를 몰래 보내고 싶다"고 썼다.

3살 딸을 둔 학부모 A씨는 "딸이 12월생이라 더 어리고 작아 고민이 많다"면서 "어린이집 폭행 영상 같은 걸 볼 때마다 우리 딸 아이에게도 녹음기를 쥐어 보내야할지 고민이 많다"면서 "이 같은 고민을 안 해본 학부모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보육시설 내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도 학부모들은 소형 녹음기를 찾았다. 소셜커머스 위메프에 따르면 지난해 7월16일~8월15일 '소형 녹음기' 판매량은 2017년 동기 대비 30.76% 증가했다. 지난해 8월6일 JTBC가 부산 북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집 교사가 낮잠을 안 자고 보채는 3세 아이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한 내용이 담긴 녹음기 속 음성을 보도한 데 따라 판매량이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녹음기'라는 이름으로 절찬리에 판매중인 소형 녹음기들.


이 같은 목적으로 소형 녹음기를 찾는 학부모가 늘자, 일부 온라인쇼핑사이트는 아예 '어린이집·유치원 녹음기'라는 이름을 붙인 뒤 소형 녹음기를 판매하고 있다. 목걸이형, 뱃지형, 유에스비(USB)형, 펜형 등 형태도 다양하다.

특히 학부모가 몰래 녹음기를 보내 녹음한 보육시설 내 아동 학대 녹음 파일이 법정에서 아동 학대 유죄 선고의 증거로 인정된 바 있는 만큼 판매자들 역시 이를 홍보에 이용하고 있다.

한 판매자는 "최근 아이에게 몰래 녹음기를 넣어 어린이집에 보낸 학부모가 녹음된 음성에 선생의 욕설이 담겨 있자 아동 학대로 선생을 고소했는데, 1차 판결에서는 위법한 증거로 해당 녹음파일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2차 판결에서는 증거 능력이 인정됐다"면서 "그래서 녹음된 음성이 필요하고 녹음기가 필요하다"고 홍보했다.

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들은 아이에게 몰래 녹음기를 넣어 보내는 행위는 실질적 예방 효과는 없고, 단지 부모와 교사간 신뢰만 무너뜨릴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 교사 B씨는 "요즘 맘카페 등에서 '소형 녹음기'를 아이 편에 몰래 넣어 등원시켰다는 글이 많더라"면서 "이제 아이들이 새물건만 가지고 와도 불안하고 녹음기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정당한 훈육도 못할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보육교사 신모씨도 "학부모가 아동 학대하는 사례가 전부가 아니듯 일부 교사들이 아동 학대하는 것 역시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라면서 "믿고 맡겨줘야 아이들을 잘 맡을 수 있는데, 몰래 녹음기를 보내는 건 신뢰가 깨지는 일"이라고 밝혔다.

한 판매자가 '소형 녹음기'에 '어린이집 유치원 녹음기'라는 이름을 붙여 홍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건은 근절돼야 하지만 녹음기를 몰래 보내는 건 교사와 학부모의 신뢰관계가 깨져 장기적으로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욱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교육 현장에 몰래 녹음기를 보내 녹음하는 행위는 교사에 대한 인권침해·교권침해"라면서 "일단 기관을 믿고 아이를 보냈다면, 끝까지 기관과 교사를 신뢰해주는 편이 아이의 교육적 측면에서 좋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몰래 녹음기를 보낸다면 아이에게도 정서적·심리적으로 부모의 불안감이 전달되고, 아이 역시 '내가 부적절하게 교육받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불안해진다"면서 "아이가 잘 교육받고 있는지 불안하다면, 보육시설 교사와 아이의 상태에 대해 자주 대화하고 아이를 더 세심하게 관찰해 점검하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한편, 최근 경찰청은 잇따른 어린이집 학대사건과 관련해 어린이집 CCTV 영상에 대한 열람 절차를 마련해 피해 의심 학부모들의 요구가 있을 경우 공식적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어린이집 CCTV 영상은 원칙적으로 비공개지만 '정보공개청구' 방식으로 경찰서에 열람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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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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