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때 여기서 시신 소각했어"..39년만에 현장 찾은 두 정보요원

허단비 기자 2019. 5. 1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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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장환·김용장씨 옛 505보안부대·국군광주병원 찾아 증언
허장환 전 505보안부대 수사관이 15일 광주 서구 화정동 옛 국군통합병원 보일러실에 붙은 '보안목표'종이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보일러실이 무장군인의 방호를 받은 것은 이 곳에서 시신이 은밀히 소각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씨는 "이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엄청난 팩트"라고 했다. 2019.5.15/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이곳이 80년 5·18 때 시신을 소각했던 곳이야.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엄청난 팩트지."

허장환 전 505보안부대 수사관은 옛 국군광주병원의 낡은 보일러실 입구에 붙은 흰색 종이를 가리켰다. '보안목표'라고 적힌 종이에는 'XXX 비밀문건 정리하기, 비밀 생산 후 폐기'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15일 허 전 수사관과 김용장 전 미육군 501정보여단 요원이 광주 서구 쌍촌동 505보안부대 옛터와 화정동 옛 국군광주병원을 찾았다.

80년 5월 그날의 진실을 증언한 두 전직 요원의 39년만의 현장 방문이었다.

옛 국군광주병원 보일러실은 5·18 당시 희생된 시민들의 시신을 소각했던 장소다. 보일러실에 붙은 '보안목표'는 빛바래고 먼지 쌓인채 39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있었다.

허 전 수사관은 당시 국군통합병원 보일러실에서 5·18 희생자들의 시신을 태웠고 보안목표를 설정해 철저히 비밀을 은폐했다고 말했다.

이 보일러실은 한여름에도 24시간 가동됐다. 보일러실과 굴뚝 등은 '보안목표'로 설정돼 무장군인이 24시간 교대로 감시했다.

보안목표는 반드시 보안조치가 철저히 이행돼야 할 국가 중요시설이다. 보안 승인 인가가 없는 사람은 접근할 수도 없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는 곳이다.

그는 "지문채취를 끝낸 시신들이 정문으로 들어왔고 당시 병원 관계자들은 전혀 몰랐다"며 "병원에 있는 보안과 2곳에서 은밀히 시신 이동과 소각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보일러실과 연결된 굴뚝을 가리키며 "보안목표로 설정될 아무 근거가 없는 시설물이지만 저 곳이 보안목표로 설정돼 무장군인이 24시간 방호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보안목표'라고 쓰인 종이는 움직일 수 없는 엄청난 팩트"라며 "보일러실이 무엇 때문에 보안목표설정이 됐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허장환 전 505보안부대 수사관이 옛 국군통합병원을 찾아 보일러실 굴뚝을 가리키며 "이 곳이 무슨 이유에서 보안설정이 됐겠느냐"고 "저 곳에서 바로 시신을 태워 소각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2019.5.15/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이날 허 전 수사관은 자신이 복무했던 옛 505보안부대도 돌아보며 39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는 옛 505보안부대 내에서는 광주의 모든 정보를 취합하는 정보과, 시민들을 고문했던 지하실, 광주 시나리오를 계획했던 수사과 사무실 등을 찬찬히 설명했다.

허 전 수사관은 수사계 사무실에서 "열흘간의 '광주 시나리오'가 이곳에서 엮어지고 기획됐다"고 말했다.

또 방 내부를 가리켜 "당시 고문하고 학살했던 악행을 한 사람들이 이 한 방에 다 있었다"며 "5·18의 주역들이 있던 곳"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통신실에서 전두환의 '사살 명령'에 대한 더 구체적인 증언을 했다.

허 전 수사관은 "통신실은 광주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송전되는 TT(Teletype,텔레타이프)가 있었고 광주에 전두환이 오기 전날 발포 사살 명령이 내려졌다는 전문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고 말했다.

TT는 문자를 치면 자동으로 전신 부호(電信符號)로 번역돼 송신되고, 수신측에서는 반대로 수신된 전신 부호가 문자로 번역돼 나오는 전신 장치다.

허 전 수사관은 당시 통신병이 전화연결을 해주면 통화 내용을 듣기 때문에 집으로 통화할땐 통신방으로 직접 찾아와 연결하라고 명령했고, 통신병이 TT를 보지말라고 하자 꿀밤을 때렸다고 하는 등 당시 상황을 꽤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증언했다.

그는 "20일 전두환이 다녀가기 전에 자위력 구사가 회의에서 결정됐다는 것이 사령부 TT전문으로 올라가는 것을 내가 봤다"며 "그때 이미 자위력 구사 차원에서 발포 사살 명령이 결정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1일날 '사령관님이 다녀가셨다. 광주 시내에 발포, 사살 명령이 내려질 것'이라고 들었다. 이는 공식 회의 석상에서 거론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장환 전 505보안부대 수사관이 옛 505보안부대 고문실로 들어가는 문을 가리키고 있다. 허 수사관과 김용장 전 미 501 정보여단 요원은 전날 '5·18증언회'에 이어 이날 오전 광주 서구 쌍촌동 505보안부대 옛터를 찾아 당시의 생생한 증언을 이어갔다.2019.5.15/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허씨는 부대 밖으로 나와 "이 곳은 들어가면 걸어서 나온 사람이 없었다"며 5·18당시 고문이 자행됐던 지하실을 가리켰다.

"이 앞에 차를 세우고 두건을 씌운 사람들을 지하실로 끌고 갔던 곳"이라고 덧붙였다.

약 2시간30분동안 옛 부대와 병원 일대를 둘러본 허 전 수사관은 39년의 깊은 회한에 잠긴듯 짧은 탄식을 하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5·18의 시작은 505보안부대이고 5·18의 끝은 망월묘역인 거지."

이날 옛 5·18사적지를 모두 둘러 본 김용장씨는 "약인작불선 천필육지(若人 作不善 天必戮之)다. '하늘은 옳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죽인다'는 뜻"이라며 "전두환씨에 대한 마땅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두 요원은 5·18기념식과 전야제에도 참석해 광주 시민들과 함께할 예정이다.

beyond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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