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체험' 어디에도 교감은 없었다

2019. 5. 1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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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노예 동물들의 섬' 제주
② 쇼·체험에 혹사당하는 돌고래들
마린파크 ‘돌핀 스위밍’은 체험 참가자들이 돌고래의 등 지느러미를 잡고 수조를 헤엄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는 관광지라는 이름 아래 시대착오적인 동물 쇼가 매일, 매 시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끼리, 돌고래, 바다표범, 원숭이, 흑돼지, 거위 등 여러 동물이 쇼에 동원됩니다. 동물들은 길게는 십수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야생에서 하지 않는 행동을 강요받으며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현재 제주 조천읍에는 야생 동물 수천 마리를 곶자왈 인근의 조용한 마을에 들여오려는 대형 사파리 공사가 계획 중입니다. <애니멀피플>은 4월29일~5월1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쇼, 전시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러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노예 동물들의 섬에 가다’를 네 차례에 이어 싣습니다.

[노예 동물들의 섬, 제주]

① 19년 동안, 두발로 서고 구르고…쇼장의 코끼리들

② ‘돌고래 체험’ 어디에도 교감은 없었다

③ 흑돼지·거위들의 아찔한 질주

“여기 보세요, 스마일. 좋아요!”

‘돌핀 스위밍’은 난감한 첫인사로 시작됐다. 수조의 얕은 곳까지 온 돌고래들은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고개를 들어 포즈를 취했다. 체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차례로 돌고래에 다가가 주둥이에 한손을 대고 카메라를 향해 브이 자를 그려 보였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돌고래들은 죽은 물고기 한 마리를 얻어먹었다.

지난 4월30일 낮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마린파크’에 들어서자 강한 소독약 냄새가 풍겨왔다. 로비에서 이어지는 1층 실내 수조 안에는 큰돌고래 낙원이와 달콩이 두 마리가 눈에 띄었다. 체험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돌고래들은 여느 수영장 풀보다 좁아 보이는 수조에서 가만히 잠겨 있다가 이따금 떠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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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친구’가 다칠 수도 있으니…

‘돌고래와의 감동적인 교감’을 느낄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는 돌핀 스위밍에 참가해보았다. 참가자는 기자를 포함한 성인 2명과 8살 안팎의 어린이 2명. 20~30분 정도 이어지는 해당 프로그램은 헤엄치는 돌고래의 등지느러미를 잡고 가로 22m, 세로 18m 크기의 풀을 서너번 돌고, 직접 먹이를 주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체험은 돌고래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시작됐다. 마린파크는 참가자들이 체험 중 찍은 사진을 별도의 비용을 받고 판매하고 있었다.

마린파크가 운영하는 돌고래 체험 프로그램은 모두 네 가지다. 건물 내부에는 환경부가 지정한 ‘서식지 외 보전기관’이란 문구와 ‘생태계 및 해양동물보호의 필요성을 알아보는 학습프로그램’이란 안내문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해양동물 구조 치료나 학습을 강조하지만, 프로그램 중 한 가지만 돌고래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회를 진행할 뿐 나머지는 실제로 돌고래를 만지고, 먹이를 주는 형태로 이뤄져 있었다.

두 명의 조련사와 함께 구명조끼를 착용한 참가자들이 풀에 들어가자 체험이 시작됐다. 조련사가 수면을 탁탁 치며 휘슬을 불자 돌고래가 천천히 참가자들 쪽으로 다가왔다. ‘돌고래 친구’가 다칠 수 있으니 손을 조심하라는 주의와 함께 등지느러미에 매달리자, 돌고래는 속도를 높여 풀의 가장자리를 따라 반 바퀴를 헤엄쳤다.

‘돌핀 스위밍’이 끝난 뒤에는 돌고래 먹이주기 체험이 이어졌다.

낙원이와 달콩이는 번갈아 사람을 태우고 수조를 돌 때마다 두어 마리의 생선을 보상으로 받았다. 이런 쳇바퀴를 얼마나 많이 반복한 것일까. 돌고래는 네 번째 바퀴가 마지막 바퀴인 것을 아는지 이전보다 더 넓게 수조 가장자리에 가까이 붙어 헤엄쳤다.

이어지는 먹이 체험에서 돌고래들은 조련사가 해 보이는 몸짓을 따라 몸을 수직으로 세우거나, 수직으로 점프해 코를 참가자들의 손에 닿거나, 낮은 점프 등을 해 보였다. 먹이를 받아먹지 않는 야생에서라면 할 필요가 없는 자세였다. 동작을 해 보일 때는 돌고래가 수조 모서리나 바닥에 부딪히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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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 횟수가 늘어날수록 돌고래는 느려졌다

교감이나 힐링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프로그램은 대체로 정신없이 진행됐다. 체험 중간중간 사진을 위한 포즈를 취해야 했고, 참가자들은 구명조끼를 입긴 했지만, 물에 떠 있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발을 저어야 했다. 돌고래가 빠르게 헤엄칠 때, 어린이들이 손을 놓치지는 않을까 아찔했다.

야외 수조에서 생활하고 있는 큰돌고래 화순이와 안덕이는 사람 눈에 띄지 않은 구석에서 거의 움직임 없이 떠 있었다.

돌고래의 피부를 만지고 위에 타 본다고 해서 그들과 교감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다만, 회전 횟수가 늘어날수록 60kg이 넘는 성인을 매단 돌고래의 움직임이 점차 무뎌지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린파크 누리집에 따르면, 돌핀 스위밍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정각 시작된다. 회당 최대 예약 가능 인원은 6명. 만약 최대 인원이 체험에 참여한다면 돌고래는 한 마리당 12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날 체험에 이용된 달콩이(큰돌고래)와 낙원이(큰돌고래)의 고향은 잔혹한 포경방식으로 논란이 됐던 일본 와카야마현 다이지다. 지난 2011년과 2015년 마린파크가 전시·체험용으로 수입한 돌고래들이다.

이날 애피와 함께 현장을 찾은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대표는 “돌고래들이 모두 완벽한 정형 행동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실내 수조에서 체험을 맡은 돌고래들의 경우 삶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호흡을 위해 잠깐씩 수면으로 올라올 뿐 대체로 가만히 가라앉아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언제 폐사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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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간 이어지는 아찔한 동작들

여전히 돌고래를 고난도 쇼에 동원하는 곳도 있었다.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퍼시픽랜드’는 돌고래뿐 아니라 원숭이와 바다사자까지 한 무대에 올리고 있었다.

30일 오후 4시30분 퍼시픽랜드 마린스테이지 공연장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 단위 관객들로 전면 좌석이 절반 정도 채워졌다.

1, 2부로 나눠 50분간 진행되는 퍼시픽랜드의 동물쇼. 돌고래 뿐 아니라 일본원숭이, 바다사자 등도 한 무대에 등장한다.

하루 4회 50분씩 진행되는 공연 ‘바다의 꿈’은 주인공 바다가 모험을 떠난 오빠를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쇼로 구성한 내용이었다. 모험의 과정은 모두 동물들의 ‘재롱’으로 채워졌다. 주인공이 바다로 찾아가자 난데없는 일본원숭이가 무대에 올라왔다.

‘왈순이’와 ‘춘삼이’는 회전 점프, 물구나무서기, 줄 넘기, 공 위에서 걷기 등 보기만 해도 아찔하고 힘든 동작들을 연이어 7분가량 선보였다. 이어 무대에 오른 바다사자도 관객의 박수 소리에 맞춰 앞발로 박수를 치는 시늉을 하거나, 한 발로 몸 전체를 들어 올리는 등 의인화된 동작을 해 보였다.

퍼시픽랜드의 돌고래쇼는 조련사가 돌고래의 등에 타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등 고난도의 동작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공연이 시작된 지 30여분이 지나자 돌고래 세 마리가 수조에 모습을 드러냈다. 돌고래 공연은 1, 2부로 약 10분간 이어졌다. 수직 점프로 시작된 1부 공연은 돌고래들이 빙글빙글 돌며 물장구를 치거나, 꼿꼿이 서서 사람과 악수하고, 세 마리가 방향을 맞춰 연달아 서너번씩 크게 점프하는 등의 동작들로 이어졌다. 2부는 조련사가 수조에 들어가 돌고래와 함께 동작을 선보였다. 조련사들은 돌고래와 헤엄치며 관객석을 향해 물을 튀기도록 유도하거나, 지느러미를 잡고 좁은 수조를 빠른 속도로 헤엄치도록 지시했다. 돌고래 등에 서서 수조의 좌우를 전속력으로 오가는 동작은 무려 4번 이상 반복됐다. 지켜보기만 해도 힘든 이 동작들 뒤에는 관객들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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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번 공연…쇼 파업하는 돌고래

이날 마지막 회차였던 이 공연에서는 돌고래가 쇼를 거부하는 듯한 행동도 계속 목격됐다. 수조 밖 무대에 오른 ‘대니’는 다시 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 조련사의 손에 밀려들어 갔다. 공연 후반부로 가자, 아예 수조에서 사라진 돌고래도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돌고래 친구들이랍니다. 가끔 이렇게 하기 싫을 땐 안 하거든요.” 조련사는 동물도 감정이 있다는 말을 전하면서도 동작을 위해서 “더 많은 박수 소리가 필요”하다는 모순된 주문을 외치고 있었다.

아쿠아플라넷 제주 또한 하루 네 차례 동물들이 출연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조약골 대표는 “쇼 동물들도 파업을 한다. 세계 어느 돌고래 쇼든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실제로 공연 중간에 쇼를 거부해서 10분 동안 중단됐던 사례도 목격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돌고래에게는 쇼가 바로 식사시간이다. 그 외 시간에 따로 먹이를 챙겨주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야생에서 처음 포획됐을 때 죽은 생선을 받아먹을 때까지 몇달씩 굶겨가면서 묘기를 부리도록 유인한다”고 설명했다.

전날 찾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아쿠아플라넷 제주’ 또한 하루 네 차례 동물들이 출연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실제 동물이 등장하는 시간은 10여 분 내외로 앞선 두 곳에 비해 훨씬 짧지만, ‘쇼’에 바다사자, 돌고래 등의 동물이 등장해 묘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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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체험’ 3곳 중 2곳이 제주에 위치

지난달 29~30일 이틀간 찾아간 수족관들은 모두 동물의 생태와 교육, 교감을 내세웠다. 과연 이러한 동물쇼가 야생동물의 생태를 잘 전달해 주고 있을까? 국제환경단체인 ‘고래와 돌고래 보존협회’(WDCS)는 <2011 유럽연합 돌고래 수족관 보고서>에서 유럽연합 내 18개의 돌고래쇼장의 공연 내용을 분석했다.

교육용이라고 포장을 두른 돌고래쇼는 전혀 교육적이지 않았다. 조사 대상의 70%는 돌고래의 신체 부위를 설명했지만, 멸종위험도를 알려준 쇼는 하나도 없었다. △돌고래의 종 △임신과 출산 △사회생활 양태 등도 설명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애피가 찾아간 세 곳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항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동물쇼는 사람이 동물을 길들여 애완동물처럼 삼아도 된다는 잘못된 소유욕을 부추길 수 있다”고도 말한다.

2019년 현재 국내 고래류 사육시설은 모두 7곳으로 이 가운데 3곳이 제주에 있다.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고래를 만지거나 사진 찍고, 먹이를 주는 국내 수족관은 3곳(거제씨월드, 마린파크, 퍼시픽랜드) 중 2곳 또한 제주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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