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모자라면 물 위로..'재생에너지 틈새전략' 띄우는 대만 [대만 '성큼성큼 탈원전']

타오위안·먀오리(대만) | 남지원 기자 2019. 5. 1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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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상) ‘재생에너지 20% 확보’ 분투기

‘전기 나오는’ 저수지·바다 2025년까지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멈추겠다고 선언한 대만은 전국에 태양광·풍력 발전시설을 늘려가고 있다. 타오위안현의 한 저수지 수면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모습(위 사진)과 먀오리현 해안에서 바라본 해상 시범 풍력단지. 대만 에너지기업 타퉁(Tatung)·대만 총통부 제공

대만의 제1관문인 타오위안 국제공항이 있는 도시 타오위안에는 ‘천 개의 연못이 있는 마을’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이 있다. 평지가 많아 농업이 발달했고 그러다보니 저수지도 많이 생긴 때문에 붙은 말이다. 인구 200만의 이 도시 안에 등록된 저수지만 2800여개다. 최근 들어서는 공업도시로도 급성장하며 인구가 크게 늘었고 2014년 대만의 6대 직할시 중 하나로 승격했다.

논밭의 젖줄이던 저수지들은 이제 도시의 거대한 에너지원이 됐다. 지난 10일 찾은 타오위안 북부의 한 저수지에는 태양광 패널이 수면 위에 떠서 햇빛을 받고 있었다. 이 저수지의 설비용량은 500㎾ 규모로 연간 전력판매 매출은 1억원가량이다. 동행한 타오위안 현청(시청) 관계자는 “저수지는 태양광발전을 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장소”라고 말했다. 태양광발전 효율은 기온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모듈 온도가 25도 안팎일 때 효율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열대 기후인 대만에서는 패널 온도 관리가 까다로운 과제다. 수면 위에 패널을 올리면 온도가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 수면 위에서는 그림자가 잘 생기지 않아 일조량도 풍부하다.

■ 한국보다 반발짝 먼저 “에너지전환”

“한국은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은 데다 일조량과 바람이 적어 재생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이 크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올리는 에너지전환 정책에 쏟아지는 단골 반박이다.

대만은 국토 면적이 한국의 3분의 1 수준, 인구는 2355만명으로 한국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 다른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돼 있지 않은 섬나라로 전력수급 측면에서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아열대에서 열대에 이르는 기후로 일조량이 적은 날이 많다. 전체 면적의 64%는 평균고도 3000m가 넘는 산지이며, 얼마 안되는 평지에 사람들이 몰려 살아 인구밀도도 높다. 모두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근거다.

그런데도 대만의 에너지전환 계획은 한국보다 빨랐고 급진적이었다. 대만은 국민당 마잉주 정부 시절이던 2011년 일찌감치 전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2016년에는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건 민주진보당 차이잉원 정부가 출범해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율을 2025년까지 20%로 끌어올리고 석탄발전 비중은 30%로 낮춘다는 계획도 세웠다. 2017년부터 에너지전환을 시작한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이 20%로 높아지는 시점은 이보다 5년 늦은 2030년이다. ‘원전 제로’ 시점은 2082년으로 비교할 수도 없이 늦다.

■ 저수지에는 태양광, 바다에는 풍력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 같은 태생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만은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태양광발전용 패널을 옥상과 빈 땅뿐 아니라 물 위에도, 길에도 설치해 효율을 높이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타오위안 현청은 지금까지 저수지 8곳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설치 과정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현청 관계자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경치가 망가지거나 농업용수가 오염될까 염려한 주민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현청은 태양광 기업과 주민들이 만나는 자리를 주선하는 등 양측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며 오랜 설득 기간을 거쳤다.

태양광 패널이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생태계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플라스틱 받침대를 이용해 패널과 수면의 거리를 30㎝ 이상으로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수질오염 가능성을 차단했고, 패널 청소는 화학약품을 일절 쓰지 않고 물로만 한다. 저수지의 PH와 산소부존량, 중금속 농도, 엽록소 농도 등은 24시간 측정하고 데이터를 주민들에게 공개한다. 태양광 패널이 덮는 면적은 저수지 면적의 50%를 넘길 수 없도록 돼 있고, 특히 수중생물이 많이 살고 물속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는 저수지에는 수면의 15%까지만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저수지 반경 600m의 곤충과 식물, 새 등 생물종들에 대한 모니터링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현청 관계자는 “1년 이상 관찰한 결과 태양광 패널이 주변 환경과 생물종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결론났다”고 말했다. 현청은 현재 저수지 8곳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더 설치하기 위해 주민들과 협의 중이다.

타오위안 현청은 수상태양광과 함께 공공기관 태양광 패널 설치를 확대하고 일반 주택에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최대 3만대만달러(약 114만원)까지 지원금을 주는 등 소규모 발전시설을 늘리는 데 예산을 쏟고 있다. 이 도시의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2018년 기준 35.4㎿로 전국에서 5번째로 높다. 태양광발전 설비용량은 2014년보다 22배나 늘었다.

바다에서는 해안이 아니라 바닷속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지난 9일 타이베이 남쪽의 해안도시인 먀오리현의 한 해변가에 도착하자 바다 멀리 희미하게 풍력발전기 두 대가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안에서 4㎞가량 떨어진 대만의 첫 번째 해상풍력 시범단지다. 대만 정부는 2015년부터 이 지역에 관측탑을 세워 기후와 생태 조건을 살핀 뒤 4㎿ 규모의 풍력발전기 2기를 세웠다. 해상풍력발전은 해안가에 주로 세우는 육상풍력보다 훨씬 효율이 좋고 소음 등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며 대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만 정부는 이 지역에 올해 말까지 8㎿ 규모의 해상풍력 20기를 더 건설할 계획이다.

풍력발전에서도 가장 큰 고려사항은 주변 생태계와 어민들의 반발이다. 특히 이 지역에는 대만에서도 보호종인 돌고래가 산다. 사전 관측 때도 주변 생태계 정보를 모으는 데 가장 집중했고, 건설 과정에서는 발전사가 지역 어민들에게 3억5000만대만달러(약 134억원)를 배상했다. 현장에 함께 간 대만 그린에너지랩 관계자는 “아직은 2기밖에 설치되지 않아 어업에 끼치는 영향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이 지역에서 저인망 방식의 어업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탈원전 중단’의 진실은

대만의 에너지전환도 부침을 겪었다. 2017년 대만에서 발전소 직원 실수로 LNG발전소 6기가 가동 중단되면서 대정전이 발생하자 원전 지지자들이 탈원전을 그만둬야 한다며 국민투표를 청원했다. 지난해 11월 국민투표 결과 총유권자 대비 찬성률 29.8%로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는 전기사업법 95조 1항이 폐지됐다. 한국에서 “대만에서 탈원전 정책이 끝났다”고 알려진 이유다.

하지만 법령에서 관련 조항이 삭제됐을 뿐 탈원전 시점이 이보다 늦어질 가능성은 낮다. 대만 내 모든 원전 설계수명이 2025년 전에 끝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 원전 6기 중 진산 1·2호기는 폐쇄 절차를 밟고 있으며 궈성 1·2호기는 2023년, 마안산 1·2호기는 2025년 설계수명이 모두 끝난다. 설계수명이 5년 이상 남아 있어야 가동허가 연장신청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궈성원전의 경우 수명연장도 불가능하다.

다만 제3원전인 마안산 1·2호기는 수명연장이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에 올해 말 총선, 내년 총통 선거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 일단 현시점에서 민진당 정부는 수명연장 계획이 전혀 없다. 지난 9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과 대만 그린에너지랩의 업무협약식에 참석한 리춘리 대만 경제에너지국 부국장은 “2025년까지 원전 6기 전체를 완전 정지하는 게 정부의 계획”이라고 재확인했다.

“2025년 재생에너지 비중 20%, 허무맹랑한 목표? 과학적으로 달성 가능” 후야오쭈 대만 그린에너지랩 소장

“대만의 재생에너지 목표를 2025년까지 20%로 선정한 데는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고 보고 있습니다.”

후야오쭈(胡耀祖) 대만 그린에너지랩 소장(사진)은 지난 9일 대만 신주현에 있는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대만 공업기술연구원 소속인 그린에너지랩은 에너지정책과 재생에너지, 수요관리 등을 연구하며 에너지전환 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핵폐기물 처리 등 비용 등 따지면 원자력, 저렴한 에너지 절대 아냐”

후 소장은 “에너지 수요를 만족시키면서도 지속가능한 환경보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설정한 게 2025년 석탄발전을 30%로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20%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라며 “재생에너지 목표치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토가 작고 산지가 많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발전을 위한 부지 등을 확보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후 소장은 “태양광발전이 가능한 부지를 3만1000㏊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2025년까지 목표치인 지상 17GW를 채울 수 있다”며 “주민 의견수렴과 소통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긴 한데 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풍력발전의 경우 이미 육상에서는 2025년까지 목표인 1.2GW 중 800~900㎾를 확보한 상태다. 후 소장은 “국토가 좁은 대만에서 육상풍력보다 더 경쟁력 있는 해상풍력의 경우 목표치를 초과달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에 대해서 후 소장은 “현재 대만에서 원자력발전은 확실히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후 소장은 “핵발전에 대한 국민 여론은 양극화돼 있지만 현 정부의 2025년 탈원전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며 “또 노후 석탄발전소를 줄이고 신규 석탄발전소를 건설하지 않는 방식으로 석탄발전을 줄이고 있고,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이를 대체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값싼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이면 비용부담이 커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후 소장은 “석탄발전과 원자력발전 비용은 환경비용을 고려하면 싸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도 가스를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에 발전비용이 석탄보다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석탄발전소도 공기오염 정화 설비에 투자하고 나면 원가가 훨씬 비싸질 수 있는데 이 비용이 원가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도 “보통 원자력발전을 저렴한 에너지라고 생각하지만 추후 핵폐기물 처리에 투입되는 비용을 계산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린에너지랩은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과 에너지정보 공유 및 시민 소통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앞으로 공동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협력사업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경향신문·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공동기획

타오위안·먀오리(대만)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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