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우편의 '공공성'과 '적자' 사이..스러져가는 집배노동자들

정책사회부 | 정대연 2019. 5. 1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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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집배노동자 과로사는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2017년 6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집배원 과로사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배노동자들의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과로와 근무 중 교통사고, 자살로 숨진 우정사업본부 직원은 157명이다. 올해 들어서도 5명의 집배노동자가 숨졌다.

지난 13일에는 무기계약직 집배원으로 일하던 30대 이은장씨가 다음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잠자다 돌연사했다. 전형적인 과로사다. 이씨는 평소 과중한 업무로 힘들다는 말을 주변에 했다고 한다. 근무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 외 ‘무료노동’도 잦았다. 비 오듯 흐르는 땀 때문에 챙긴 여분의 옷, 짐을 나르다 생기는 상처를 치료할 소독제 등은 필수품이었다. 정규직이 돼 행복을 배달하겠다는 이씨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수십년간 반복되는 집배노동자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지난해 9월 낸 ‘집배원 노동조건 실태 및 개선 방안’에 따르면 연평균 2745시간(한국 임금노동자 평균 2052시간)에 달하는 집배노동자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연 2340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서는 2853명의 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는 정규직 집배원을 1000명 증원하기 위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결국 돈이 문제다. 집배원 증원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부문에서 적자가 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해에는 적자가 1000억원이 넘었다.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기업들이 e메일이나 온라인 메신저 등으로 고지서를 발송하는 경우가 늘어난 탓이다. 민간택배업체들과 낮은 단가로 경쟁하면서 우체국 택배 수익성도 나빠지고 있다.

그러나 우편물량이 준다고 집배노동자들의 업무강도가 낮아진 건 아니다.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택배가 늘어나고,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가구 단위로 이뤄지는 우편 배달 노동강도는 오히려 세졌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연히 돈이 든다.

보편적 공공서비스인 우편을 비용만으로 따지는 게 타당할까. 오지에 홀로 사는 노인도 우편물을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외딴섬에 산다는 이유로 선거공보물, 법원송달물을 받아보지 못한다면…. 이윤이 최우선 가치인 민간기업이라면 손해를 보는 이런 일을 할 리가 없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당장 우체국 수를 대폭 줄일 것이다. 국회가 이 ‘죽음의 행렬’을 거두기 위해서는 인력과 재정 투입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제라도 예산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우편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우편 50g 기준(2017년) 한국 우편요금은 350원으로, 영국(722원), 일본(806원), 독일(976원) 등의 절반 이하다. 공공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한 어느 정도의 요금 인상을 검토해봐야 한다. 기업·정부 등이 우편물을 다량 발송할 때 깎아주는 돈이 연 2500억원에 달하는데 감액률이 타당한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정책사회부 | 정대연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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