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초소형 원자로 품은 선박..연료 재주입없이 '40년 항해' 거뜬

원호섭 2019. 5. 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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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순 UNIST 석좌교수 연구팀의 도전
"최대의 파괴력이 전 인류 이익을 위한 엄청난 혜택으로 바뀔 수 있음을 미국은 알고 있다. 평화적인 힘이 미래 꿈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제34대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53년 12월 8일 유엔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 for Peace)'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핵무기의 위력과 참상에 전 세계가 경악한 시기였다. 아이젠하워는 원자력을 안전하게 사용한다면 인류에 엄청난 혜택을 준다고 믿었다. 그는 "원자력은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아는 자들의 손에 있어야 한다"며 "전문가들이 원자력을 농업 의학과 기타 평화적 활동에 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1956년 영국에서 최초의 발전용 원자로가 가동되며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본격 시작됐다. 이후 인류는 원자력을 이용해 만든 풍족한 전기로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키며 번영해왔다.

원전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소형 원전, 차세대 고속로 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래 기술로 불렸던 원자로가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 연구진도 초소형 원자로를 배에 탑재해 디젤엔진을 대체하는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그 주인공은 황일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석좌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으로 극지와 해양·해저를 탐사하는 선박의 추진동력을 생산할 초소형 원자로 개념 설계 연구를 시작했다. 배에 한번 장착하면 40년 동안 연료를 주입하거나 교체할 필요가 없어 배 수명이 다할 때까지 바다에 떠 있을 수 있다. 만에 하나 배에 문제가 발생하면 위험 구역은 오로지 '배' 주변으로만 한정된다.

원자력발전은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한다. 모든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진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로 구성돼 있다.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자핵이 중성자를 흡수하면 원자핵이 분열되면서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등가(E=mc2)' 공식에 의해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 핵이 분열될 때 중성자가 방출되고, 이 중성자가 또 다른 원자핵과 만나면 다시 핵분열이 일어난다.

연쇄반응이다. 핵분열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여기서 발생한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든다. 이 증기가 터빈을 돌리면 전기가 생산된다. 원자력발전소 연료로 사용되는 우라늄235(U235) 1g이 핵분열을 통해 만드는 에너지 양은 석탄 3t, 석유 9드럼에 해당한다.

원전에서 이 같은 핵분열이 일어나는 심장부가 '원자로'다. 배에 싣는 초소형 원자로 역시 원전의 원자로와 같은 원리를 이용한다. 원자로는 우라늄과 같은 연료와 연쇄반응 속도를 조절하는 제어봉, 열을 전달하는 냉각재로 구성돼 있다. 황 석좌교수는 "초소형 원자로 정의에 대한 명확한 국제적인 기준은 없지만 사용 후 핵연료를 저장하는 '캐스크'의 크기보다 작게 설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캐스크는 지름 약 2m, 길이 10m로 커다란 트럭에 실어서 옮길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 짓고 있는 신고리 3·4호기 원자로(지름 4.66m, 높이 14.83m)와 비교하면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자로 내에 증기 발생기와 열교환기 등이 포함돼 있는 만큼 전체 크기는 기존 원자로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초소형 원자로의 출력은 수십 MW급으로 기존 원전 원자로와 비교하면 100분의 1 정도지만 길이 100m의 커다란 배를 이동할 수 있을 만큼 동력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기존 원자로와 연구진이 개발하는 초소형 원자로 간 가장 큰 차이점은 냉각재로, 물이 아닌 액체로 된 금속(납 또는 납과 비스무트 혼합 합금)을 사용한다. 납의 녹는점은 327도, 납-비스무트는 123도다. 납을 사용하는 이유는 기존 원자로와 비교했을 때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원전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수로 원자로는 냉각재에 150기압에 달하는 강한 압력을 줘야 한다.

그래야 물의 끓는점이 낮아져 핵분열 시 발생하는 열로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내부 압력이 높아 자칫하면 원자로 핵연료가 밖으로 새어 나올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경수로 원전은 두꺼운 콘크리트로 원자로를 꽁꽁 싸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반면 납을 이용하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납에 가하던 열만 끊으면 된다. 황 석좌교수는 "열을 가하지 않으면 납이 금방 굳어 원자로를 감싸게 된다"며 "불의의 사고가 발생해도 납이 방사성물질을 감싸 차폐해준다"고 말했다. 기존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반경 수십 ㎞까지 접근이 불가하지만 초소형 원전은 배만 격리시키면 된다. 방사성물질 또한 바다로 새어 나갈 염려가 없다.

연구진은 이렇게 만든 원자로 2기를 쇄빙선 크기 배에 집어넣을 계획이다. 디젤엔진이 존재하던 엔진룸에 2기의 초소형 원자로를 탑재한 배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연료를 추가 주입하기 위해 육지로 이동할 필요가 없다. 일반적으로 배 수명은 40년. 40년이 지나 연료가 모두 소진되면 캐스크에 넣어 중저준위 처리 시설로 옮기면 된다. 현재 쇄빙선 규모 배는 러시아 가스유전에서 생산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싣고 나르는 데 주로 이용된다. 향후 연구진은 일반 배도 초소형 원자로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황 석좌교수는 "미래 원자로는 기존에 있던 안전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동시에 경제성도 혁신적으로 개선된 형태가 돼야 한다"면서 "초소형 원자로는 그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이 기술을 액체 납 냉각 고속로 기술과 접목하면 40년 동안 핵연료 교체 없이 가동되는 해양·해저 탐사선이나 부유식 발전선용 동력원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초소형 원자로는 안전성과 경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과제를 수행하면서 국내외 연구계와 산업계가 다양한 형태로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 특허 확보와 기술 사업화 등 산학 협력을 촉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에 싣는 소형 원자로는 이미 미국, 러시아 등 여러 나라가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원자력 잠수함 또한 이 같은 소형 원자로를 활용한다.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만큼 기술이 완전히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원자력 잠수함에는 가압형 경수로 원자로를 축소시킨 형태의 원자로가 탑재된다.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잠수함은 짧게는 1~2일에 한 번, 길어도 보름 정도에 한 번은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다. 연료를 태우기 위한 공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료통 크기를 늘리는 것이 제한된 만큼 오랜 기간 물속에 있을 수 없다.

반면 원자력을 이용한 잠수함은 수개월 동안 물속에서 생활이 가능한 만큼 작전 범위 또한 넓어진다. 원자력 잠수함이 수개월에 한 번씩 물 위로 올라와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지낼 경우 정신적·육체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만 괜찮다면 원자력 잠수함은 6개월 가까이 물속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러시아는 나아가 배에 작은 원자로를 설치해 일부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해상 원전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난달 영국 인디펜던트는 러시아 영국대사관 트위터를 인용하며 "러시아가 개발한 해상 원전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가 전력 생산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이 건조한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는 러시아 극동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KLT-40C라는 원자로 2기가 설치된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는 총 70MW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인구 20만명이 거주하는 극동지역 러시아 자치구로 이동해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러시아 언론은 올해 말부터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가 극동지역에 전력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한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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