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반말 지시에 박근혜 "예, 예"

곽재훈 기자 2019. 5. 17. 17:5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순실-박근혜 녹음파일 공개..정호성에게 "좀 적어라" 호통도

[곽재훈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비선실세' 최순실 씨와 함께 대통령 취임사를 검토한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이 17일 공개됐다. 최 씨가 취임사 등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 및 국정 전반에 관여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지만, 녹음파일 내용을 들어보면 그가 회의를 주도하고 분위기를 끌어갈 뿐 아니라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고 지시까지 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날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은 정 전 비서관이 갖고 있다가 검찰에 넘어간 세 사람의 대화 녹음파일을 입수해 보도했다. (☞시사저널이 공개한 녹음파일 원본 보기) 대화 내용으로 추정해볼 때, 이 녹음이 이뤄진 것은 2013년 2월 2주께로 보인다. 대화 중간에는 정 전 비서관이 "유정복 취임준비위 부위원장이 (취임사 내용을) 21일까지 달라고 한다. 빨리 줘야 한다고 한다"고 말하고, 이에 최 씨가 "그러면 오늘 해놓고, 내일 키(중요 부분. key)를 뽑아서 대통령님하고 얘기를 하고 넘겨야지"라고 하자 정 전 비서관이 다시 "그런데 실무진이 계산한 것으론 19일까지 주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최 씨는 '비선실세'라는 이름 그대로 회의를 주도하며 취임사 내용과 관련한 핵심 지시를 쏟아냈다. 지시를 듣는 것은 정 전 비서관이었다. 최 씨는 "새 팩트를 정확하게 말을 만들어 봐요", "말을 만들고 그걸 워드로 좀 쳐보세요", "취임사는 팩트가 있어야지, 정확하게. 딱 내지르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노트 같은 데 써야 하는데 왜 이상한 데…(쓰느냐)", "빨리 써요 정 과장님", "저거 안 쓰고 있잖아"라고 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를 했다. 회의 중간에 누군가에게 "아줌마, 이것 좀 가져가세요"라며 테이블 위를 정리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최 씨는 특히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참모들이 만들어 올린 취임사 초안에 대해 "이게 공약을 푼 거거든? 내가 보기엔 이거 하나도 써먹을 게 없는 것 같아"라거나 "정 과장님, 이렇게 늘어지는 걸 취임사에 한 줄도 넣지 마", "이거 다 별로인 거 같은데. 거의 저기 뭐야,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그치? 공약을 그대로…(쓴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정 전 비서관이 "공약이 아니라 인수위에서 죽 해온…(새 정부 국정과제)"라고 작은 목소리로 반론하자 최 씨는 "그게 공약이지 뭐야"라고 질책하듯 말했고, 박 전 대통령은 "이게 그런 국정과제를 얘기하기엔 너무 쪼그라들어 가지구…"라며 최 씨의 말에 힘을 실었다. 최 씨는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 하고 한숨을 쉬더니 "이런 게 취임사에 들어가는 게 말이 돼? 너무 말이 안 돼!"라고 반말조로 말한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실제 발표한 취임사의 상당 부분이 이날 최 씨의 구술에서 나오기도 했다. 최 씨는 "경제 부흥, 그 다음에 국민 행복, 세 번째는 '대한민국의 자긍심'"이라며 "세계 속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을 뭐라고 할지 말을 만들고 그걸 좀 워드로 쳐 보라"고 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했다. 정 전 비서관이 "일자리…는…"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듯 반문하자 "그건 부수적인 거고. 꼭지가 몇 개 나와야 하니까"라고 질책도 했다.

최 씨는 이어 "그러니까 경제 부흥을 일으키려면 키, 핵심이 IT하고 미래성장(박근혜 전 대통령 : 창조경제), 네 창조경제하고, 빌 게이츠 같이 한 사람이 나라 경제를 프리미엄에 올렸듯이 미래의 도전적이고 창의력 있는 사람을 끌어내고, 그런 사람이 얼마든지 대한민국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창출하는 역할을 정부가 할 것이다"라고 불러주듯 말했고, 정 전 비서관은 이를 타자로 받아쳤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실제로 발표한 취임사에서 이 부분은 "경제 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가겠다. (중략) 창조경제의 중심에는 제가 핵심적인 가치를 두고 있는 과학기술과 IT산업이 있다. 저는 우리 과학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기술들을 전 분야에 적용해 창조경제를 구현하겠다. (중략) 창조경제는 사람이 핵심이다. 이제 한 사람의 개인이 국가의 가치를 높이고, 경제를 살려낼 수 있는 시대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우리 인재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겠다. 또한 국내의 인재들을 창의와 열정이 가득한 융합형 인재로 키워 미래 한국의 주축으로 삼겠다"로 반영됐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이 최 씨에게 지시를 받는 듯한 모습도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 앞 부분(실제 취임사 기준)의 국정기조 제시 부분을 최 씨에게 설명하며 "(핵심은) 부국(富國), 정국(正國), 평국(平國)이에요. 부국은 부자 나라, 정국은 바르게 해야 한다, 부패 안 하고 신뢰가 쌓이고. 그 다음은 편안한, 평국. 그 세 가지가 여기 적어 놨어. 부국 정국 평국, 강국(强國)이 아니라. 발라야 하고, 잘살아야 하고, 편안하고 그래야 한다…"고 말하자 최 씨는 반말로 "그럼 뭐… 자존심은?"이라고 되묻는다. 박 전 대통령이 존댓말로 "자존심이요?"하고 반문하자 최 씨는 다시 반말로 "그게 제일 중요하지. 그걸 뭐라고, 부국 정국 평국. 또 하나는 그럼 뭐라고…(해야 하나)"라고 한다. 이어진 대화에서도 한 사람은 말끝이 없는 반말을, 두 사람은 존댓말을 썼다.

박근혜 : 이건 꼭 할 건 아니고….
최순실 : 정국이 평국 아닌가?
박근혜 : 정국이 바른 거죠, 바른 거.
최순실 : 평국은?
박근혜 : 어…
정호성 : 문화나 이런 것은 좀 평국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최순실 : 평국을 좀 다른 말로 해 가지고. 부국 정국…. 하여튼 이건 좀 상의를 해 보세요.
박근혜 :예, 예.
정호성 : 네.

또 연설문 분량과 관련해 최 씨가 '경제 부흥 관련 내용을 2.5페이지, 어떤 부분을 2.5페이지…' 등으로 하라고 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하는 대목에서, 박 전 대통령은 "아. 내가 또 노트를 안 갖고 왔네"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최 씨가 취임사의 표현과 관련해 "같은 말을 하더라도 꽂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박 전 대통령이 "몇 가지는 마음에 꽂히는 표현이 들어갔다"고 정 전 비서관을 두둔하는 듯한 대목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파면(탄핵) 결정을 내릴 때,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이렇게 썼다. 이날 공개된 녹음파일의 내용이 상기시키듯, 그가 왜 탄핵됐는지를 다시 곱씹게 한다.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에게 공무상 비밀이 포함된 국정에 관한 문건을 전달했고, 공직자가 아닌 최순실의 의견을 비밀리에 국정 운영에 반영했다. 피청구인의 이러한 위법행위는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때부터 3년 이상 지속되었다. (중략)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고 주권 행사를 위임받은 대통령은 공무 수행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면서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의혹 제기 행위만을 비난했다. 따라서 권력분립 원리에 따른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 등 민간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피청구인의 일련의 행위는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한 것으로서 대통령으로서의 공익실현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 결국 피청구인의 이 사건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곽재훈 기자 (nowhere@pressian.com)

▶독자가 프레시안을 지킵니다 [프레시안 조합원 가입하기]

[프레시안 페이스북][프레시안 모바일 웹]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