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호들갑, 이제는 그만하자"

박지훈 기자 2019. 5. 18.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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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장재연 지음/동아시아, 324쪽, 1만6000원
한 시민이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이던 지난달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마스크를 쓴 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런데 마스크는 미세먼지 차단에 효과가 있을까. 장재연 아주대 의대 교수는 “나중에 마스크 착용이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는 공감이 확산되면 그동안 국민을 속인 언론사, 환경부와 식약처, 마스크 판매 회사들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뉴시스


“평생 미세먼지 기준 강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왔는데, 미세먼지 기준이 너무 강하다는 글을 쓰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저런 말을 내뱉는 주인공은 이 책을 펴낸 장재연(62) 아주대 의대 교수다. 장 교수는 국내 미세먼지 연구 권위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첫손에 꼽히는 학자다. 책에 담긴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는 “가장 운동성이 강한 전문가이자 가장 전문성 높은 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장 교수는 1980년대에 미세먼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여러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다. 현재도 환경운동연합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런 이력의 주인공이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보다 미세먼지를 둘러싼 호들갑이 지나치다고 말하고 있으니 호기심이 동하게 된다. 장 교수는 왜 이런 책을 내놓았으며 그가 제시하는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미세먼지 가짜뉴스 파헤치기

‘삼천리 먼지강산’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가 되니 요즘 시장에서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활개를 치고 있다. 시민들의 ‘미세먼지 공포’를 건드려 지갑을 열게 만들려는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분위기다. 미세먼지 차단에 탁월하다고 선전하는 수소수(水素水)부터 ○○지역의 맑은 공기를 한가득 담았다고 광고한 산소캔까지 관련 상품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즉, 한국은 바야흐로 ‘공기 파는 사회’가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장 교수는 단언한다. “미세먼지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 게 아니라 공포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고, “공포만 있고 대책은 없다”고 말이다.

일단 미세먼지 관련 용어를 정리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공기에는 온갖 먼지가 섞여 있는데, 입경이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인 것만 따로 모아 측정한 것을 ‘PM10’이라고 부른다. 크기가 2.5㎍도 되지 않으면 ‘PM2.5’라고 적는다. 환경부나 언론에서는 이들 용어를 앞세워 미세먼지 위험성을 경고하는 발표나 보도를 쏟아낸다. 그런데 장 교수는 정부나 언론이 퍼뜨린 미세먼지 정보 대다수가 엉터리라는 점을 각종 데이터를 깁고 엮어 증명해낸다. 책에 담긴 내용을 바탕으로 간단한 미세먼지 속설 테스트를 한다면 이런 문제들을 만들 수 있겠다.

①요즘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1980년대에 비해 어떤 수준일까.

A. 증가했다 B. 비슷한 수준이다 C. 감소했다

②한반도를 뒤덮는 미세먼지 상당수는 중국에서 날아온 것이다.

A. 그렇다 B. 국내와 국외 영향이 비슷하다 C. 그렇지 않다

③ 고농도 미세먼지가 습격한 날이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A. 그렇다 B. 그렇지 않다 C.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들 문제의 답을 구하는 풀이 과정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우선 ①번 문제의 정답은 C. 장 교수는 86년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서울의 미세먼지(PM2.5) 수준을 측정했는데, 당시엔 미세먼지 농도가 지금보다 약 4배나 높았다. 서울의 공기는 그 시절보다 확실히 좋아졌으며, 현재 대기오염 수준은 나쁘긴 하지만 ‘역대 최악’은 아니고 ‘세계 최악’은 더더욱 아니다. 서울의 대기 질이 최근 들어 악화됐다고 여기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는 발언이다.

②번 문제도 많은 독자는 정답이 A일 거라고 넘겨짚을 듯하다. ‘미세먼지=중국발’이라는 공식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우리 주변(국내)에서 발생하는 오염이 우리에게 가장 큰 악영향을 준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다. 확실한 정답이 무엇이라고 콕 집어 설명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A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환경부는 한반도 대기 질에 미치는 중국 미세먼지의 ‘기여율’이 높게는 86%에 달한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내놓기까지의 조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중국 탓이라고 말하려면 중국의 미세먼지 발생원 자료와 그들의 세밀한 기상 자료를 갖춰야 하는데, 이런 데이터가 환경부엔 없었다(심지어 우리 정부가 중국의 미세먼지 데이터라면서 활용한 수치가 오래전인 2010년 자료였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③번의 답도 뜻밖일 수 있겠다. 마스크는 미세먼지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데 별무소용이거나,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N95’ 같은 산업용 마스크가 미세먼지 차단의 요술봉처럼 여겨지고 있다. 분명한 건 임산부나 노인, 만성폐질환자가 미세먼지 차단을 이유를 마스크를 차면 위험할 수 있다는 거다. 마스크는 숨을 쉬기 힘들게 만들어 인체에 부담을 준다. 국제 의학계에선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독려하는 분위기다.


왕도는 없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 책은 미세먼지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거나, 한반도 미세먼지에 중국의 책임이 없다고 잘라 말하는 작품이 절대 아니다. 인류의 90%가 안전하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 있을 정도로 지구촌의 대기오염은 허투루 여기기 힘든 수준이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더러운 공기가 한반도 대기에 악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점도 확실하다.

장 교수의 당부는 과학의 렌즈로 냉정하게 문제를 직시하고 엄밀하게 상황을 판단하자는 거다. 언론이 야단법석을 떨고, 책상물림 공무원들이 안일한 대책을 쏟아내면 본질은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책에는 ‘사이다 발언’ 처럼 여겨지는 문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금이 최악의 상황인 것처럼 선동하면서 이미 과거에 실행했던 이런저런 정책이나 대안 또는 황당무계하고 효과 없을 대책을 마치 대단히 새롭고 기발한 것처럼 마구잡이로 들이밀곤 하는데, 그래서는 정책 혼란을 가중시켜 문제 해결에 방해만 된다.”

“우리나라 미세먼지는 줄여야 한다. …하지만 언론이나 일부 학자들이 쏟아내는 말처럼 공포스러운 오염 수준은 아니다. 마스크 회사와 공기청정기 회사의 영업사원이 아니라면, 마치 곧 죽기라도 할 듯한 협박은 이제 그만하길 바란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학계, 정계, 언론, 그리고 시민들까지 신봉하고 있는, 미세먼지를 설명하는 과학은 마치 천동설과 같다. …(미세먼지는) 모두 이웃나라에서 온 것이며 우리는 피해만 보고 있다고 믿는다. 지난 5년간 미세먼지 천동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지긋지긋한 논쟁을 끝내고 맑은 하늘을 되찾을 해결책은 무엇인가. 장 교수가 제시하는 처방전은 심플하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청정연료에 관심을 쏟으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지금처럼 언론이 검증 안 된 헛소리나 지껄이고, 정부가 헛발질만 반복한다면 미세먼지 문제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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