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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의 News 속 인물] '레이와 오지상'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박종원 입력 2019. 05.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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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일 일본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가 적힌 액자를 들어 보이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4월 13일, 일본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왕실 정원인 신주쿠 교엔에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일본 내각이 주최하는 야외 행사인 '벚꽃 보는 모임(を見る)'이 열렸다. 정재계 인사와 연예인 등 1만8200명이 모인 이번 행사에서는 전에 없던 광경이 펼쳐졌다. 바로 '레이와(令和) 오지상(아저씨)'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만든 기다란 줄이었다.

레이와 오지상은 지난 4월 1일 일본의 새 연호 발표 당시 연호(레이와)가 적힌 액자를 들어 올렸던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의 별명이다. 지난 2012년 일본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약 7년 가까이 아베 내각의 얼굴을 대표했던 그는 이제 '차세대 아베'로 국내외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스가는 족벌과 세습으로 가득한 일본 정치계에서 빈손으로 시작해 내각 2인자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1948년 12월 6일에 일본 북서부 아키타현 유자와시에서 태어난 그는 올해 한국 나이로 72세다. 스가의 아버지는 만주국에서 철도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일본 패망후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 어머니는 교사 출신이었으며 누이 2명 역시 교사가 됐다. 유자와시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누이들처럼 교사가 되지 않겠다면 서도 농업 대학에 가라는 아버지의 권유도 뿌리쳤다. 그는 무작정 도쿄로 상경해 이타바시구의 골판지 공장에 취직했고 대학에 가겠다며 2년간 공장일과 공부를 함께해 당시 사립대 중 학비가 가장 쌌던 호세이대학에 들어갔다. 26세가 되던 1973년에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은 스가는 겐덴세비 주식회사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했다.

그는 직장인으로 지내는 동안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정치이며 정치 세계를 체험하고 싶다"고 확신했다. 스가는 무작정 정치인이 되고 싶다며 호세이대학의 취업상담 부서를 찾아갔고 같은 호세이대학 출신인 나카무라 우메키치 중의원(하원) 의장과 그의 비서를 소개받았다. 스가는 나카무라 의장과 같은 파벌이었던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중의원의 비서로 취직해 11년간 일했으며 1987년에 요코하마시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이때부터 중의원 비서 생활 당시 쌓은 인맥을 활용해 요코하마 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됐으며 요코하마의 '그림자 시장'이라고 불렸다.

스가는 1996년 중의원 선거에서 요코하마 가나가와현 제 2구에서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 중앙정계에 첫발을 디뎠다. 그는 자민당 활동을 통해 같은 우익 성향의 아베와 가까워졌다. 스가는 정치 가문에서 엘리트 과정을 밟아온 아베와 배경이 전혀 달랐지만 함께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하며 발을 맞췄다. 스가는 아베가 2006년 처음으로 총리가 됐을 당시 총무상으로 발탁됐으나 이듬해 아베 내각이 사퇴하자 함께 물러났다. 스가는 이후 우익 성향의 아소 다로 내각을 지지하며 당 활동을 이어나갔고 아베에게 다시금 총리 자리에 도전하라고 부추겼다. 스가는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아베에게 져도 좋으니 선거에 나가야 한다며 아베를 설득했고 2012년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지금까지 관방장관만 3연임했다. 그는 정부 대변인과 내각의 관리자 역할을 동시에 맡아 7년간 아베 내각의 국내외 관계를 관리했고 역대 최장 관방장관 재임 기록을 세웠다.

과거 정치 행적을 살펴보면 스가는 리더보다는 참모에 가까운 역할이었다. 그는 이미 지난해 NHK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롤모델이 과거 전국을 통일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닌 그의 동생이었던 도요토미 히데나가라고 밝혔다. 스가는 지난 8일 인터뷰에서 차기 총리 역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당 내에서는 그를 넘어설 인물이 거의 없다. 13일 여론조사에 의하면 스가의 지지율은 7%로 지난해 10월(2%)보다 크게 뛰었으며 이 같은 지지율 급등의 배경에는 그가 연호 발표에 등장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지난 1989년 1월에 헤이세이(平成) 연호를 발표했던 오부치 게이조 당시 관방장관도 '헤이세이 오지상'으로 불렸으며 훗날 총리에 올랐다. 스가는 이달 9일부터 관방장관으로는 이례적으로 미국을 방문해 미 핵심 장관들과 만나 아베의 후계자 입지를 굳혔다. 아베 역시 지난 2005년 자민당 간사장 대리 자격으로 미국을 찾아 주요 각료들과 회동했다.

스가의 정치 성향은 아베와 매우 비슷하다. 스가는 지난 2014년 1월에 중국 하얼빈역 안중근 기념관 개관 당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안중근은 일본의 초대 총리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고 말했다. 그는 뿐만 아니라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자위대 근거 마련을 위한 개헌 등 아베 내각의 주요 정책을 지지하고 있고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전형적인 우파다. 2006년에 총무상에 올랐을 당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매년 다녀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스가는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는 6세 어린 아베가 사석에서 농담을 던지더라도 철저히 존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6년에는 국영 NHK 방송에 납북 일본인 관련 프로그램을 방송하라고 '지시'해 물의를 빚었다. 스가는 2012년 아베 내각 출범 당시에도 각료들을 모아놓고 역사 관련 발언을 내각의 중론과 다르게 함부로 하면 각료직에서 쫒아낼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베의 오른팔이자 '그림자 총리'로 불리는 스가가 정말 차기 총리가 될 지는 불확실하다. 지난 3월 현지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4%는 이미 3연임에 성공한 아베가 4연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일단 스가는 차기 총리 지지율에서 같은 당의 고이즈미 신지로 후생노동부회장(23%)에 밀리고 있다.

만약 그가 총리가 되더라도 현재 일본의 정치 흐름이 크게 바뀔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그가 아베의 충직한 심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베 또한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스가를 또 다른 연임을 위한 디딤돌로 이용할 확률이 높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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