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막으려면 제대로 비용 지불해야

주영재 기자 2019. 5. 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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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멸종저항’운동 활동가들이 지난 4월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의회 광장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영국 정부가 지금 당장 탄소배출 제로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 EPA|연합뉴스

우리는 크든 작든 기후변화와 생물 멸종의 원인 제공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온실가스 배출에 큰 책임이 없는 저위도의 빈곤국 주민들은 해수면 상승과 기후변화로 강도가 더 세진 가뭄과 홍수, 태풍의 피해를 받고 있다. 기후변화와 대멸종의 위기를 피하려면 경제·사회·정치적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

먼저 식량 소비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해 6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인간의 식량 시스템은 동식물 생산·가공·포장·운송 과정에서 전체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발생시킨다. 일례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음식물은 소고기다. 50g의 소고기 단백질을 얻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17.7㎏을 배출한다. 소가 먹을 사료를 생산하고, 고기를 가공·운송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모두 합한 수치다. 같은 양의 양고기 단백질은 9.9㎏, 치즈는 5.4㎏, 달걀은 2.1㎏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두부와 콩, 견과류 단백질은 각각 1.0㎏, 0.4㎏, 0.1㎏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식물성 단백질에 비해 동물성 단백질이, 그 중에서도 붉은 고기일수록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다. 콩과 보리·간장처럼 기후변화에 영향을 덜 미치는 기후친화적 식단을 더 많이 이용하고, 우유도 두유 등으로 대체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고기가 빨갈수록 투입된 에너지와 사료, 물의 양이 많아지기 때문”이라면서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 끼라도 바꿔보자는 차원에서 기후친화적 식단을 시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음식물이 어디에서 생산돼서 나에게 왔나 그 거리를 따지는 푸드마일리지도 생각해야 한다”며 “수송에 투입된 에너지양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먹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은 식단을 개선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생산과 투자, 고용과 일자리 등 경제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주에 한 끼라도 기후친화적 식단을
<월스트리트저널>의 지난 5월 7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지난 4월 민주당의 한 상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기후변화가 미국 경제와 은행에 미칠 충격에 대비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실제 기후변화는 1차 생산물 가격의 변동성을 키워 식량 선물시장에 미칠 영향이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보험산업도 비슷하다. 기후변화는 태풍과 호우, 가뭄의 피해를 키운다.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구실 실장을 맡고 있는 송홍선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미국에서 허리케인이 왔을 때 기존 통계치에 기반해 리스크 평가를 하던 보험사들의 손해율이 높아져 재보험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관련된 재난채권의 수익률이 떨어져 국내에서도 손해를 보기도 했다”며 “보험업계가 향후 기후변화 변수를 리스크 평가에 반영하면 보험료가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화석연료산업에 대한 시장의 부정적 평가가 강해지면서 노르웨이 국부펀드 등은 수년 전부터 관련 산업 투자를 중단하거나 줄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내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도 ‘탈석탄 투자’를 선언했다. 기관투자자들의 이런 선언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송 연구위원은 “공적 연기금은 50~100년의 장기투자를 하는 경향이 강하고 국부펀드의 투자기간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며 “50년 이상을 보는 입장에서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각국에서 탄소총량제 등의 규제가 도입되고, 탄소배출권 시장도 만들어지면서 전반적으로 이산화탄소를 줄이려고 하는 시장의 흐름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 과정의 핵심에는 그간 무시됐던 온실가스 배출 등 화석연료의 환경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기업에 탄소배출권을 할당한 뒤 할당받은 양보다 탄소 배출을 줄이면 남은 배출량을 시장에 팔 수 있는 탄소배출권 시장이 대표적인 예다. 실효성 논란이 있지만 온실가스를 줄이는 효과가 유럽의 경우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다는 평이다.

RE100 대응 등 중요 에너지법 국회 계류 중
글로벌 기업의 시장가치는 장기 투자자들이 얼마만큼 주식을 사는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장기 투자자들이 탄소산업의 비중을 줄이면 결국 이들 기업으로서는 변화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전망 속에서 글로벌 기업 사이에서는 제품 생산과 서비스에 투입되는 에너지를 모두 재생가능에너지로 쓰겠다는 ‘RE100 이니셔티브’가 부상하고 있다. 5월 16일 기준으로 175개의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다음달 RE100 참여를 선언하고 2020년까지 미국과 유럽, 중국 사업장의 전력 사용을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할 것을 약속했다.

RE100에 참여한 구글과 마이크로소트프, 애플은 이미 100% 재생가능에너지 목표를 달성했다. 이들은 추가로 자사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들도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BMW나 볼보의 경우 내연기관차 생산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고 전기차로 방향을 전환했다. 여기 들어가는 배터리를 납품하는 업체들은 재생가능에너지만 써야 하는 상황이다. LG화학과 삼성SDS 등도 이런 요청을 받은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 전력 판매시장은 한전이 독점하고 있어 기업들이 재생가능에너지를 민간사업자로부터 직접 구매할 수 없다. 한전은 민간 태양광 발전 사업자에게서 전기를 공급받지만 재생에너지 전력이 전력망에 들어오는 순간 화석연료 발전과 섞여 구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일반 전기요금보다 비싼 재생가능에너지 가격을 따로 책정해 이를 구매할 경우 재생가능에너지를 쓴 것으로 인정해주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윤순진 교수는 “만약 국내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구매할 수 없으면 결국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 국내 생산과 일자리가 줄어들게 된다”며 “탈원전을 비판하지만 원전으로 생산한 전기도 안 된다”고 말했다. 수출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상황에서 이젠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이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된 셈이다.

전기요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데도 비싸다고 여기는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전기료가 싼 것은 애초 화석연료 발전의 환경 비용을 감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기후변화 위험이 줄어든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제대로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며 “경유세 인상을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비판받을 부분”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을 올릴 때의 저항을 줄이고, 에너지 기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요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에너지 가격을 올릴 때 서민을 위한 적정 필요 에너지를 보편적 에너지 기본권 차원에서 보장하고, 그 이상의 경우 누진제를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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