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리기사가 운전" 이 말에 속아 음주 측정 못한 경찰
A씨는 “음주운전이 의심된다”며 서둘러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 경찰관에게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차량의 번호를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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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술 취해 자느라 사고 난 지 몰라?
경찰 등에 따르면 출동 경찰관들은 차적조회를 통해 차량 소유주로 B씨를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사건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1.2㎞쯤 떨어진 아파트에 거주 중이었다. 경찰은 B씨의 집을 찾아가 만났다. 경찰이 “운전한 사실이 있냐”고 물으니 “대리기사가 운전해 집으로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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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연하게 가짜 대리기사 소개
이후 B씨는 경찰에 대리운전 기사라며 태연하게 한 인물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경찰이 직접 통화해보니 수화기 너머 사람도 자신을 대리운전 기사로 맞장구쳤다. “현재 OO역에 있어 거기로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라고도 덧붙였다.
나중에 확인된 바로는 이 대리기사도 물론 가짜였다. 경찰에 자신은 대리운전 기사가 아니고, B씨의 차를 운전하지도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B씨와 지인 사이로 의심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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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차장 CCTV에 찍힌 반전
경찰은 B씨와 함께 대리운전 기사를 기다리면서 CCTV를 확인해보려 했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오후 10시를 넘겼고, 관리사무소에는 직원이 없었다. 나중에 담당 직원과 연결된 뒤 CCTV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확인된 CCTV 영상서 반전이 일어났다. “술 취해 뒷자리서 잤다”는 B씨가 운전석 쪽에서 내리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음주운전이 의심됐지만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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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 두드려도 대답 없는 B씨
경찰은 다시 그의 집으로 올라갔다. 벨을 누르고 문을 수차례 두드렸지만, 결국 B씨는 나오지 않았다.
당시 출동했던 담당 경찰은 “B씨가 ‘집에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지만 주차장 CCTV 확인이 계속 늦어지는 상황에서 B씨를 마냥 붙잡아둘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의수사(동의 등을 받아 벌이는 수사) 원칙상 B씨 집 출입문을 부수지 못했다”며 “음주운전 의심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강제수사를 진행할 상황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B씨의 ‘인권’을 고려한 조치였다는 의미다.
결국 경찰은 B씨가 벽면 등을 들이받고도 아무런 조치 없이 현장을 벗어난 혐의에 대해서만 조사했다. 초기 대응을 잘못해 음주운전 현행범을 풀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경찰 관계자는 “허용되는 법테두리 안에서 사건을 신중히 처리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음주운전 의심 부분에 대해 조사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바로 사고 후 미조치 부분에 대해서는 사건을 지구대에서 경찰서로 접수해 처리토록 했다”고 해명했다.
B씨는 같은달 23일 분당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B씨는 “운전미숙으로 사고를 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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