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에 걸린 오스트리아 극우 부총리 부당거래..연정 붕괴

입력 2019. 5. 19. 16:36 수정 2019. 5. 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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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휴양지서 '러시아 사업가'와 검은 거래 모의
"유력 신문 사서 돕고 정치자금 주면 공사 밀어주겠다"
"헝가리 오르반처럼 언론 장악"·"동유럽하고 붙어야"
여론 '발칵'..대통령·총리 "부끄럽다" 조기총선 선언
2017년 7월 스페인 이비자섬의 빌라에서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오스트리아 부총리(오른쪽)가 러시아 여성 등과 만나고 있다. 사진 속의 다른 2명은 요한 구데누스 전 자유당 부대표와 그의 세르비아계 아내다. 사진 출처: 슈피겔

2017년 7월24일 밤, 스페인 휴양지 이비자섬의 빌라에서 오스트리아인 남성 3명과 러시아인 여성, 세르비아계 오스트리아인 여성이 참치 타르타르와 스시를 놓고 샴페인을 마셨다. 몰래카메라의 존재를 모르는 한 오스트리아인은 연신 담배를 피우면서 한마디 한마디가 폭탄급인 말을 뱉었다.

2019년 5월17일, 독일 <슈피겔>과 <쥐트도이체 차이퉁>이 동영상을 폭로했다. 영상 속 핵심 인물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오스트리아 자유당 대표 겸 부총리는 이튿날 사임을 발표했고,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자신이 이끄는 국민당과 자유당의 연정이 붕괴했음을 선언하고 조기 총선을 발표했다. 동영상 내용은 “부끄럽다”(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참을 만큼 참았다”(쿠르츠 총리)는 탄식이 나올 만큼 충격적이었다.

촬영 시점은 극우 자유당이 27.4%를 득표해 제2당으로 연정에 참여하고 슈트라헤가 부총리에 오르는 기회를 잡기 3개월 전이었다. 그는 러시아-라트비아 이중국적자로 올리가키(재벌)의 조카라고 밝힌 알료나 마카로바에게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처럼 언론을 손아귀에 쥐고 싶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인 25%가 보는 타블로이드 <크로넨 차이퉁>을 인수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선거 전에 <크로넨>을 인수해 우리를 1등으로 만들어주면 뭣이든 얘기해볼 수 있다”고 했다.

마카로바가 <크로넨>의 상속자 4명과 접촉 중이라며 대가를 묻자, 슈트라헤는 고속도로 공사 등을 많이 따내는 대형 업체를 배제시키고 공사를 몰아주겠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큰 이윤까지 보장할 것이냐는 질문에 “공공 계약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선거자금 감사를 받지 않고 거액을 받는 방도를 마련했다며, 200만유로까지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있으까 당신도 거액을 대라고 요구했다.

슈트라헤는 언론인들을 성매매 여성들에 비유하며, 시청료를 없애고 세금으로 공영방송을 운영해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 오스트리아를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연대 조직인 ‘비셰그라드 그룹’에 가입시키겠다고 했다. “서유럽에서 우리는 타락한 존재이지만, 동유럽에서는 정상적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슈트라헤와 검은 거래를 얘기한 상대의 실체나, 누가 어떤 목적으로 몰래카메라 여러 개를 설치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 러시아인은 딸과 함께 오스트리아로 이주해 2억5천만유로(약 3337억원)를 투자하겠다며, 이 돈은 “순전히 합법적인 게 아니라” 은행에 넣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동석한 전 자유당 부대표 요한 구데누스는 집안 농장을 팔려는데 그가 시가의 5배를 제시했다고 자랑했다.

가뜩이나 자유당과 러시아의 관계를 의심하던 오스트리아인들은 수천명이 총리 공관 앞으로 몰려와 내각 해산을 요구했다. 슈트라헤는 2007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고, 자유당은 2016년 러시아의 사실상 여당인 러시아연합당과 제휴 관계를 맺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카린 크나이슬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의 결혼식에 참석해 그와 춤을 추기도 했다. 1950년대에 나치 전력자들이 참여해 만든 자유당은 유럽에서 영향력 높은 극우 정당으로, 2017년 연정에 참여하며 내무·외무·국방장관 등 요직을 꿰찼다. 최근에는 자유당이 장악한 내무부가 극우 조직을 감시하는 망원들에 대한 정보를 내놓으라고 정보기관에 요구해 논란이 일었다.

슈트라헤는 “전형적으로 술 탓에 하는 마초적 행동”이었다고 해명했다. 또 “매력적인 여성” 앞이라 잘난 척을 했을 뿐 진의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가짜 뉴스를 이용한 러시아 쪽의 개입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23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불거졌다. 18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가 주도하고 유럽 12개 극우 정당들이 참가해 선거 승리를 다짐하는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유럽 극우의 핵심들 중 하나인 슈트라헤의 몰락은 부정적 효과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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