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외교관 알렌 "고종은 끔찍할 정도로 나약한 사람"

입력 2019. 5. 2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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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양대 알렌연구소, 알렌 문서 데이터베이스 작업 진행
"알렌이 우호적으로 평가한 인물, 나중에 을사오적 돼"
알렌 문서 [건양대 알렌연구단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인들은 약속을 곧잘 하지만 약속을 지키는 데는 취약하며, 고종은 끔찍할 정도로 나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그를 손쉽게 협박할 수 있다."

미국 선교사 겸 의사로 조선에 건너와 고종 정치고문으로 활동한 호러스 알렌(1858∼1932)은 1905년 12월 14일 전직 미국 육군 소장 윌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보필한 대한제국 황제를 이렇게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 18일 사업가 보스트윅에게 부친 서한에서는 "고종 때문에 너무 큰 짐을 지지 말고 조금은 냉정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알렌의 이 같은 생각은 건양대 충남지역문화연구소 알렌연구단이 2016년 9월부터 오는 8월까지 진행하는 뉴욕 공립도서관 소장 '알렌 문서'를 수집·정리·해제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작업을 통해 알려졌다.

연구단이 DB에 축적한 문서는 약 1만3천여장으로, 각종 서한과 문서를 비롯해 사진, 회계장부, 저서, 신문, 일기 등으로 구성된다.

알렌연구단은 이화사학연구소와 지난 17일 이화여대에서 개최한 '알렌 문서로 보는 개화기 조선' 학술대회에서 알렌 문서 DB 작업 성과를 발표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알렌은 1884년 내한해 그해 민영익을 치료한 것이 계기가 돼 왕실 의사 겸 정치고문이 됐고, 1887년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이어 1889년 한국에 다시 들어온 뒤 이듬해 주한 미국공사 서기관으로 임명됐고,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알렌은 동아시아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문화를 알린 친한파 인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부와 미국 이권을 챙기려 한 지한파 인사로 분류되기도 한다.

알렌이 민영익을 치료하는 모습 [세브란스병원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번에 공개된 알렌 문서를 보면 알렌은 당시에 고종의 친구로 대접받고 대한제국도 미국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고종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다.

한국근세사를 전공한 장영숙 상명대 교수는 "알렌은 을사늑약이 체결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천세에 남을 한이라고 했다"며 "적극적인 대처와 행동력이 결여된 데에서 고종의 안이하고 나약한 면모를 엿본 듯하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이어 "알렌은 고종이 선물을 밝히고 뇌물을 좋아해 물량공세만 하면 어떤 일이든지 어려울 것이 없다고 봤다"며 "동시에 외적으로 자기 생각을 선명하게 밝히지 않으면서 매사에 신중하고 고집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알렌은 고종 측근으로서 황실 재정을 담당한 이용익(1854∼1907)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고 한국의 국익이나 합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며 "이용익의 지배를 받느니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알렌은 대한제국 관료와 관련해 많은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미국 외교관 스티븐스에게 전달한 자료에는 관료 97명에 대한 평이 있다.

그는 박제순을 "상당히 강직하고 명예롭고 좋은 사람"이라고 했고, 권중현에 대해서는 "똑똑하나 조심스러운 접근과 감독이 필요한 인물이며, 그런 경우 유용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했다. 이지용은 "부친이 황제의 사촌으로, 상당히 심약한 편"이라고 적었고, 이근택은 "이용익의 정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흥미로운 내용은 이완용 인물평이다. 알렌은 이완용에 대해 "박정양과 함께 지난 20년간 정부가 임명한 외무대신 중 가장 뛰어난 대신으로 꼽히고 있고, 특별한 판단력과 용기를 지니고 있다"며 "황제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 눈 밖에 나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알렌연구단은 "알렌이 우호적으로 평가한 인물, 혹은 약점을 들춰낸 인물 중 상당수는 훗날 을사오적이 됐다"며 "스티븐스는 알렌의 비책을 바탕으로 대한제국 관료를 파악하고 장악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책임자인 김현숙 건양대 교수는 "알렌은 악필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고 문서 양이 많아 그가 남긴 자료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알렌이 한국어 학습을 위해 남긴 172쪽짜리 어휘책 등 재미있는 사료가 많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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