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마이크로소프트가 비트코인에 올라탄 이유

2019. 5. 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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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A to Z]
-비트코인 메인넷 활용한 ION 플랫폼 구축 발표…범지구적 ‘분산형 ID 프로젝트’ 일환



(사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AP연합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으면 회의론도 거세진다. “블록체인은 좋은 기술이지만 비트코인은 쓸모가 없다”며 “쓸모가 있더라도 암시장에서 불법적인 거래에 활용될 뿐”이라는 공격이다. 대중을 보호하려는 엘리트들의 훈계에 가깝지만 일반인들은 물론 블록체인업계에 있는 사람들조차 이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비트코인의 핵심 인력들은 완고하며 시스템은 전기를 낭비하는 데다 속도는 느리고 가격은 투기심만 조장할 뿐 기술적으로는 퇴물이라는 비난을 블록체인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도 입에 올린다. 하지만 블록체인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애플리케이션이기도 한 비트코인이 블록체인 전체에서 압도적 지위를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최근 더 높아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ION(Identity Overlay Network)으로 알려진 플랫폼을 비트코인 메인넷 위에 구축한다고 5월 13일 발표했다. ION은 분산형 ID(DID)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방형 표준을 따른다. 분산형 ID는 네트워크상에서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개인이 지배하는 신원 정보 확인 키를 말한다. 공인인증서나 e메일 혹은 전화번호를 대신하는 신원 확인 시스템이다.

블록체인이 등장한 이후 많은 엔지니어들은 인터넷이 진정으로 분산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비트코인 자체가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화폐이기 때문에 국가가 통제하는 금융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전자 상거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원 정보를 개인들이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기도 했다.

인터넷은 원래 분산 시스템으로 발명됐다. 모든 노드가 평등하기 때문에 지배적 위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인터넷 설계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착오가 있었다. 인터넷은 자신만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에 나왔다. 개인이 완전하게 소유하는 신원 정보 기능도 없었다. 이 신뢰의 틈을 기업들이 채웠기 때문에 인터넷은 급속히 중앙화됐다.

‘신뢰’ 문제를 대기업이 해결했던 인터넷

인터넷 초창기에 네티즌들은 새로운 사이트에 접근할 때마다 개인 정보를 입력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이 때문에 한 번 정보를 입력한 사이트를 반복해 방문하는 패턴으로 이어졌다.

자연히 포털처럼 개인 정보를 빨아들이는 중앙이 만들어졌다. 돈이 많은 업체가 이런 포털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포털에 사람과 돈이 몰리는 순환 고리가 무한 반복되면서 급기야 굴뚝 기업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독점적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이에 더해 전자 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인터넷은 정부기관보다 강력한 공적 지위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결제 승인을 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금융 기록까지 확보하므로 그야말로 인터넷은 개인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기관이 됐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가 보관해 주는 ‘개인의 신상 정보’야말로 그가 누구인지를 가장 폭넓고 객관적으로 증명해 준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의 신원 정보가 네트워크에서 범용적으로 쓰이면서 이들의 지배적 지위는 더욱 강화된다. 사실상 온라인 세상에서 페이스북과 카카오는 개인의 신원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정부를 대신하고 있다.

DID는 중앙에서 신원 확인을 해주지 않는다. 개인은 자신의 신원 정보나 DNA, 혹은 지문 같은 정보를 개인 기기에만 보관한다. 이 정보들의 암호화된 코드만이 네트워크를 통해 이동하며 비트코인 장부는 이 이동이 실제의 주인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요약하면 개인 정보를 받고 이를 보관 중인 원래의 정보와 대조해 검증하느라 개인 정보를 서버에 모아 두는 주체가 없다.

MS가 이 시스템을 오픈 소스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이유는 상호 운용성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ION의 ID를 활용해 정보를 입력하는 번거로움 없이 다른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MS가 지배하는 플랫폼이라면 다른 업체들이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사용자들에게 상호 운용성을 제공할 수 없다.

이더리움을 비롯해 기술적으로 앞선다는 수많은 블록체인이 존재하는데 비트코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공룡 기업들 간의 역학 구도를 확장하면 추론이 가능하다. 비트코인은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는 블록체인이다. 리더십의 부재는 비트코인의 단점으로 보이지만 변화를 합의하거나 이끌 수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시스템의 미래가 예측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트코인 시스템이 인터넷 DID 트랜잭션을 보관하는 등기부등본으로서 쓸모를 갖는다면 비트코인 가격은 어떻게 될까. 이 등기부등본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1만 개의 서버가 동일한 사본을 보관하며 기록의 진위를 판별한다. 승인이 바로 채굴인데 승인의 진실성을 위해서는 채굴자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비트코인이 가치가 있어야한다. 즉 비트코인이 비쌀수록 DID의 등기부등본으로서 시스템의 안전성도 강화된다. MS가 비트코인을 선택한 이유의 대부분은 비트코인의 비싼 가격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분리해 바라보려는 시도가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쓸모가 없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 주는 뉴스다.

[돋보기]  개인 정보와 페이스북의 수난

분산형 ID(DID) 포럼에 페이스북 관계자가 참여하거나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페이스북이 범용 ID를 독자적으로 구축하려고 한다는 의혹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주기 때문이다. 개인 정보를 가장 많이 확보한 1등 기업으로서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범용성을 핵심으로 하는 DID 프로젝트가 순항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페이스북은 지배적 지위 때문에 ‘해체’ 논란에 휩싸였다.

마크 저커버크 페이스북 창업자의 기숙사 동기이자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이기도 한 크리스 휴즈가 ‘지금은 페이스북을 해체할 때’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페이스북이 지배적 지위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회사의 존재가 사회 전체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의 정치권이 가세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대선 주자들이 개인 정보 침해와 취약한 보안, 가짜 뉴스 유통, 저임금 노동을 이유로 해체론에 합류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은 블록체인을 활용해 스테이블 코인, 일명 리브라를 발행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는 서한을 통해 이 프로젝트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모든 의혹은 페이스북이 확보한 개인 정보를 남용해 지배적 지위를 더욱 강화한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

페이스북으로서는 누구도 지배할 수 없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보다 자기가 이미 지배하는 세계를 확장하는 선택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지배적 지위 때문에 가능한 이런 야심이 바로 그 지배적 지위 때문에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것은 역설이다. 한때 지배적 지위 때문에 회사가 쪼개질 위기에 처한 바 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비트코인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단순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5호(2019.05.20 ~ 2019.05.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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