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줄어든 임금 격차, 더 커진 소득 격차.. '두 얼굴' 최저임금

세종=정현수 기자 2019. 5. 22.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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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첫 영향·실태 조사 결과 공개.. 일자리 감소 '속도조절론에 무게'

최저임금의 빛과 그림자가 드러났다. 정부가 처음으로 최저임금의 영향과 실태를 조사해 공개했다. 지난 2년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예상했던 ‘좋은 효과’와 예상치 못한 ‘나쁜 효과’를 동시에 낳았다.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처음으로 20% 아래로 떨어지고 임금 격차는 줄었다. 하지만 일자리 감소라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최저임금 영향을 많이 받는 도소매·숙박업체나 중소기업은 고용 감축, 근로시간 단축으로 대응했다. 최저임금이 지난해 내내 이어진 ‘고용 참사’의 불씨였던 셈이다. 이에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논의 과정에서 ‘속도 조절론’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최저임금 인상이 지난해 근로자 임금, 고용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분석해 발표했다. 우선,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고용정보원 김준영 고용동향분석팀장은 ‘2018년 최저임금 인상 이후 임금 분포의 변화’를 발표하며 “지난해 임금 불평등도가 큰 폭으로 개선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저임금(중위임금의 3분의 2 미만) 근로자 비중은 19.0%에 그쳤다. 2017년 6월과 비교해 3.3% 포인트나 줄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으로 20% 선을 밑돌았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을 끌어올렸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임금 5분위 배율(하위 20% 평균임금 대비 상위 20% 평균임금)도 4.67로 떨어졌다. 이 배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지기는 처음이다. 그만큼 근로자 사이의 임금 격차가 줄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수치를 마냥 좋게 보기는 어렵다. 일자리에서 밀려난 구직자·실직자나 자영업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한계 때문이다. 오히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47로 4분기 기준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였다.

이날 토론회에 발표자로 나선 서울과기대 노용진 경영학과 교수의 ‘최저임금 현장 실태 파악 결과’는 엇갈리는 수치 사이에 숨은 현실을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

노 교수는 고용부 의뢰를 받아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최저임금 영향을 많이 받는 사업체의 대응 실태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조사 결과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높은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사업주는 근로시간을 단축하거나 아예 고용을 줄였다.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부작용을 정부가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사업주들은 손님이 적은 시간대를 휴식시간으로 정해 근로시간에서 빼고, 바쁜 시간대에 단시간 근로자를 활용했다. 고용을 줄인 만큼 사업주가 일을 더 하거나 사업주의 가족이 무급으로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

공단 내 중소 제조업체들은 근로시간 감축을 택하는 사례가 많았다. 숙련 근로자 확보가 어려운 만큼 기존 근로자를 줄이는 경향은 덜했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역시 조업시간을 줄이면서 초과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식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했다.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바꾸는 등 임금구조 개편을 꾀하는 업체도 많았다. 결국 근로자 입장에서는 일자리를 잃거나 줄어든 근로시간 때문에 총임금 상승률이 최저임금 인상률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노 교수는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할 때 경제 전반 환경, 취약 업종과 영세기업의 여건 등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용 감소 효과를 과잉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나왔다. 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부소장은 “이미 음식·숙박업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어려웠는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감소가 나타났다고 과잉 해석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의 논의 내용은 이달 말부터 시작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2020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참고자료로 활용된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심의 착수를 앞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다. 경영계는 ‘부작용’에 주목해 최저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폭을 물가상승률 이내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입장은 경영계 요구에 더 가깝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KBS와의 대담에서 “최저임금을 내년까지 1만원으로 올린다는 공약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노총 송명진 정책국장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도 있어 노동계 위원들이 사전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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