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바이오시밀러 문서' 작성자 미전실서 '삼바 재경팀'으로 조작

김원진 기자 2019. 5. 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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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삼성그룹 차원 개입 숨기려 한 정황…이재용 승계와도 관련
ㆍ2011년 미전실서 콜옵션·가치 등 작성, 삼성전자·물산에 보고
ㆍ금감원, 평가 자료 요청하자 급히 날짜·일련번호 조작해 제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의 핵심 증거 중 하나인 ‘바이오시밀러 사업화 계획’(이하 바이오시밀러) 문건이 조작된 채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삼성이 그룹차원에서 분식회계를 숨기려고 문건을 조작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한다. 이 문건은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이 작성했다.

2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바이오사업팀은 2011년 12월 바이오시밀러 문건을 작성한 뒤 삼성바이오 주주사인 삼성전자, 삼성물산에 보고했다. 바이오시밀러 문건은 삼성바이오가 2012년 2월 미국 바이오젠과 함께 설립할 예정이던 합작사 삼성에피스의 사업성을 분석하려 작성한 것이다. 삼성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개발·상업화를 전담하는 삼성바이오의 자회사다.

바이오시밀러 문건에는 삼성에피스의 기업가치평가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자회사 삼성에피스 설립 전 사업성 분석이나 합작 회사 설립 시 주주별 기대효과 등이 대표 사례다.

삼성바이오 측은 지난해 3월 초 금융감독원이 바이오시밀러 문건을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응하지 않고 버텼다. 이후 삼성바이오 측은 변호사들과 상의한 뒤 문건 조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문건 작성자를 미래전략실 바이오사업팀에서 삼성바이오 ‘재경팀’으로 바꿨다. 작성 시점은 2011년 12월에서 2012년 2월로 조작했다. 그룹 차원에서 삼성에피스 기업가치평가 사실을 숨기려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

삼성에피스 기업가치평가와 관련된 미래현금흐름, 제품별 사업에서 얻을 수 있는 연평균 수익률(IRR) 등 문건 첨부 파일도 모두 삭제했다. 사업성 분석 결과의 타당성·신뢰성 근거로 제시된 매킨지 컨설팅 보고서 인용 문구도 일부 지워졌다. 삼성전자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물적, 인적 자산현황도 삭제됐다. 삼성전자와 경쟁사 간 바이오시밀러 개발 진행단계를 비교한 자료, 바이오신약 평가 전망 등도 빠졌다.

표지 목차에서는 ‘합작 시 주주별 기대효과’와 분문에 나오는 해당 페이지를 삭제했다. 지운 목차, 페이지가 애초 없던 것처럼 전체 목차 번호, 페이지 번호도 수정했다. 삼성바이오 측은 조작된 문건을 지난해 3월 말 금감원에 제출했다.

바이오시밀러 문건 조작과 해당 문건의 금감원 제출은 지난 16일 구속 기소된 양모 삼성에피스 상무가 적용받은 증거위조,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다.

이 문건을 보면,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삼성바이오의 해명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건에 삼성바이오가 2011년 콜옵션 가치를 비롯한 삼성에피스의 기업가치를 평가한 내용이 여럿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가치를 비롯해 삼성에피스의 기업가치를 평가할 수 없어서 2012~2014년 콜옵션을 공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이 문건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여부에 따른 삼성에피스 기업가치평가 내역도 있다.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은 2012년 삼성에피스의 콜옵션을 약정했다. 콜옵션은 원할 때 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로 회계상 부채로 잡힌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바이오젠의 삼성에피스 지분이 49.9%까지 오를 수 있었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여부에 따라 사업에서 얻을 수 있는 연평균 수익률(IRR), 미래현금흐름 자료, 바이오제약사업 가치평가 내용을 담은 매킨지 컨설팅 보고서(2009년 작성) 등 삼성에피스의 기업가치평가 관련 분석자료도 문건에 담았다.

콜옵션 약정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던 2015년 9월 알려졌다. 법대로 2012~2014년 콜옵션이 공시됐다면 적자를 면치 못했던 삼성바이오는 자본 잠식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고의적인 콜옵션 공시 누락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삼성바이오가 콜옵션 공시 누락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유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때문이라는 의혹이 있다. 삼성바이오는 제일모직 자회사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물산보다 제일모직 지분을 훨씬 많이 갖고 있었다.

삼성바이오 기업가치 상승은 제일모직의 고평가로 이어졌고,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삼성물산 주주보다 유리한 합병비율을 적용받았다. 삼성바이오가 콜옵션 공시 누락을 시인하면 합병비율이 부당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이 부회장의 승계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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