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삼성 수뇌부, '증거인멸' 임원 구속 심사 전날 "네 선에서 처리하라"

문동성 기자 2019. 5. 24. 15: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모 삼성 부사장, 백모 상무 만나 회유.. "김태한 사장도 회유 공모"· 김 사장 등 구속 여부 오늘 밤 결정
분식회계 의혹 관련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 박모(왼쪽부터) 부사장, 삼성바이오로직스 김태한 대표, 삼성전자 사업지원TF 김모 부사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2019.05.24. 뉴시스

삼성 수뇌부가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소속 임원을 영장실질심사 전날 밤 만나 “네 선에서 증거인멸을 한 것으로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수사가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인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사장의 턱밑까지 조여오자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해 지난 22일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사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사장 등은 24일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모 사업지원 TF 소속 부사장은 지난 9일 밤 백모 사업지원 TF 소속 상무를 만나 ‘회사 서버 은닉 등 증거인멸은 네 선에서 처리한 것으로 검찰에 진술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김 부사장은 이 같은 지시에 대해 ‘윗선의 뜻’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김 부사장은 백 상무와 만난 뒤 그 결과를 김 사장과 박모 삼성전자 부사장 등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수뇌부가 피의자를 회유하는 등 증거인멸을 공모·실행한 정황이 나온 것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백 상무 등 삼성전자 임원 2명은 다음날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돼 있었다. 백 상무 등은 지난해 중반 삼성바이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 직원들을 상대로 회사 서버, 노트북 등을 숨겨 놓으라는 등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수뇌부 지시는 백 상무 등이 구속되더라도 검찰 조사에서 증거인멸에 대한 상급자 지시 사실을 언급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수뇌부가 백 상무 등 하급자들이 모두 책임지는 식으로 범죄를 은폐하려 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백 상무 등은 처음엔 지시 사항을 충실히 이행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삼성바이오, 삼성에피스의 요청에 따라 직원들의 파일을 삭제해준 것이다’ ‘개인적 친분에 따라 조언을 해줬을 뿐 조직적 증거 인멸 지시는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속되자 증거인멸에 대해 김 사장 등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을 바꿨다. ‘영장심사 전날 김 사장 등이 꼬리 자르기를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나왔다.

검찰은 최근 김 부사장과 박 부사장을 수차례 소환해 ‘9일 밤 회동’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은 김 사장도 회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진술했으나 김 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등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 22일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김 사장과 김 부사장, 박 부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백 상무 등 하급자들에게 삼성바이오, 삼성에피스 서버를 숨기고 ‘부회장 통화결과’ ‘바이오젠사 제안 관련 대응방안’ 등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된 폴더 속 파일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날 김 사장 등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하급자를 회유한 사실을 언급하며 증거인멸 우려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또 증거인멸 지시가 그룹 수뇌부에서 내려왔다는 핵심 정황인 ‘프로젝트 오로라’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젝트 오로라는 미국 바이오젠이 갖고 있었던 삼성에피스 콜옵션 행사 권리에 대응하려고 만들어진 그룹 내 프로젝트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해 에피스 주식을 대거 확보할 경우 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 에피스 지분 재매입을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프로젝트 오로라에 대해 아는 인물은 그룹 내에서도 극소수였다고 한다. 그런데 삼성이 검찰 수사에 대비해 에피스 직원들의 노트북 자료를 삭제하면서 넣은 키워드에는 ‘오로라’가 있었다. 프로젝트 오로라의 존재 자체도 몰랐던 하급자가 삭제 키워드에 오로라를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김 사장은 심사에서 “나는 증거인멸을 지시한 적이 없다. 하급자들이 알아서 한 것”이라며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빈소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문을 마치고 나서고 있다. 2019.04.13. 뉴시스

김 사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이날 밤 결정된다. 검찰은 이들의 신병을 확보해 분식회계 의혹도 규명할 방침이다. 김 사장은 분식회계를 진두지휘한 핵심 인물로 거론된다. 또 검찰은 ‘부회장 통화 결과’ 폴더 내 파일 등 삼성이 삭제한 파일들을 복구해 이 부회장이 분식회계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단서를 확보한 상태다. 법조계에서는 이제는 검찰 수사 대상이 분식회계 의혹에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으로 확대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장이 기각될 경우 속도전을 펼치던 검찰의 기세도 한풀 꺾일 수 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