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빛 1호기'가 안전하다는 궤변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경제학부 2019. 5. 2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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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빛원전 1호기의 제어봉 과다 인출에 따른 ‘출력 급상승(반응도사고) 사건’을 둘러싸고, 원전의 안전성 및 한수원의 안전불감증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한편 보수언론은 문제사실의 분석·검증이라는 기본자세조차 버린 채, 이미 붕괴된 ‘안전신화’를 앞세우는 핵마피아의 홍보기관지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특히 핵공학 전공교수들이 안전문화 결여에 대한 반성과 대책수립을 논의하기는커녕, 전문가라는 권위(?)를 앞세워 불안감을 가지는 시민들을 무지몽매한 집단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조선일보 인터넷 기사(5월23일자)의 경우 핵공학 전공자들이 총출동하여, 체르노빌 원전과 국내 경수로는 구조가 다르며, 또 여러 안전장치가 구비되어 있으므로 중대사고가 일어날 수 없다는 궤변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한국경제의 인터넷 기사(5월22일자)에 따르면, 사건 당사자인 한수원 정재훈 사장이 “체르노빌 운운하며 이번 1호기 사태의 위험을 부풀린 환경단체 등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 또 원자로를 “정지하는 지침을 어긴 점이 있어도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처럼 원전의 안전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하는 당사자들의 적반하장인 대응자세에서, 국내 원전의 안전문화 결여(안전불감증)라는 참담한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공포심을 떠나 분노조차 떠오른다. 궤변의 몇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원전의 중대사고(노심용융 또는 핵폭주)는 단일 원인이 아니라, 천연재해·조작 실수·설계 오류·안전장치 고장 등의 복수 원인이 겹쳐 발생한다. 원전에는 자동정지 장치가 있어 25% 이상의 출력 상승에도 안전하다는, 한수원을 비롯한 핵마피아의 설명은 맹목적 안전신화론, 즉 자의적 및 단락적인 설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5%의 열출력 상승이라도 안전하다는 프로파간다는, 마치 주행속도 60㎞의 도로를 100㎞로 달려도 에어백이 있으니 안전하다는 식의 논리이다. 이는 현행 원자력안전법의 존재조차 필요없다는 논리로 이어지며, 이해관계에 따라 현행 사회규범 및 법제도까지 모두 부정해도 상관없다는 꼴이 된다.

둘째, 경수로의 자기제어기능이 작동하여 안전하다는 주장의 경우, 원자로 내의 냉각수가 없다면 무용지물의 논리이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지진발생이 겹쳐 제어봉 재삽입 및 보조급수펌프 작동의 불능 등과 같은 복수원인이 겹쳤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 2012년 고리 1호기 원전 교류전원 상실사태에서 실패사례를 직접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벌써 망각한 것 같다. 이런 복수원인 발생에 대비하여, 국내 핵마피아도 확률적 리스크평가(PRA) 연구 및 안전대책설비의 증설을 추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박한 안전의식 수준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셋째, 여전히 격납용기의 유무 및 크기를 내세워 국내 원전의 우위성을 강변하려는 케케묵은 논리가 또다시 나왔다. 체르노빌사고의 폭발력에는 국내 원전의 격납용기도 견딜 수 없으며, 후쿠시마에 비해 약 7배 큰 국내 원전(경수로)의 격납용기도 폭발시간이 조금 늦추어진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기본상식조차 외면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아직 드러난 피해(예, 핵연료 손상)는 없지만, 국내의 역대 원자력 사고원인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중대사고의 하나인 핵폭주사고(반응도 사고)는 순식간에 발생하는 탓에 미처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사고는 40초간의 터빈 관성력 시험에서 출력 상승이 나타나 제어봉을 긴급히 삽입한 후 겨우 8초 만에 폭발했다.

안전성의 확인과 향상은 이렇다 할 성과도 나타나지 않지만, 미완성 기술인 원자력을 이용하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작업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및 당사자들은 대오각성과 함께 철저한 대책수립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우려를 그저 불안감 조성으로만 몰아붙이는, 안전신화 맹신자를 국가존망을 좌우할 원전사고의 방지 책임자(사장)로 맡긴 현 정권의 인사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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