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자리에 콘센트가 없네".. '카공족'으로 뜬 스타벅스, 마음 변했나?

권승준 기자 2019. 5.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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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돈 안되는 손님일까 카공족의 경제학

대학생 오연수(22)씨는 지난 15일 서울 지하철4호선 신용산역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공부를 하러 갔다가 곧바로 나와야 했다. 매장 내에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충전에 필요한 전기 콘센트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콘센트가 없는 스타벅스 매장을 본 건 처음"이라며 "카페에 자리 잡고 몇 시간씩 공부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스타벅스가 콘센트를 없애는 추세라고 하던데 진짜인가보다"라고 말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오씨만이 아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지난 한 달여간 오씨처럼 '콘센트 없는 스타벅스'에 관한 글이 1000건 이상 올라왔다. 글 내용을 보면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걸 즐기는 이른바 '카공족(族)'들은 콘센트 없는 스타벅스에 당황하는 분위기지만,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자리를 전세낸 것처럼 행동하는 카공족들을 차단하는 조처"라며 반기는 이들도 많았다.

최근 서울 성수동에 1호점을 낸 미국의 프랜차이즈 카페 '블루보틀' 역시 매장 내에 콘센트가 1개도 없다는 점이 입길에 올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한 이 카페는 미국과 일본에 낸 매장에도 콘센트를 아예 설치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커피와 대화라는 카페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한 경영철학"이라는 게 블루보틀의 입장이지만,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카페가 일종의 생활 공간이 된 한국의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도 나왔다.

일러스트= 안병현

카공족으로 뜬 스타벅스, 카공족을 배신?

실제로 스타벅스는 신용산역점을 포함,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나 인천공항점,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점 등 전국의 매장 중 10여 곳에 콘센트를 설치하지 않았다. 대부분 최근 2~3년 사이 문을 연 곳이다. 콘센트가 없는 매장뿐 아니라 새로 생기거나 리모델링을 한 매장들 대부분이 이전보다 콘센트 숫자가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4월 문을 연 서울 노량진역점이다. 공무원 고시 준비생들이 모인 노량진 고시촌에 처음 들어선 스타벅스라 관심을 받았는데, 막상 100석 규모의 매장에 콘센트가 4개밖에 없어서 논란이 됐다. 카공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처라는 것이다. 노량진 고시생들을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터져나오자 콘센트 숫자를 늘리긴 했지만 그래도 11개에 불과했다. 고시생 이어정(27)씨는 "2층짜리 매장에 콘센트가 4개나 11개나 그게 그거 아니냐"며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몇 시간씩 공부하는 고시생을 돈이 안 되는 손님이라고 볼 거면 왜 굳이 여기에 매장을 낸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3년 사이 급격히 늘어난 '리저브 바(Reserve Bar)' 점포의 인테리어도 스타벅스의 변화를 보여준다. 바리스타가 타주는 커피를 제공한다는 프리미엄 전략매장인 리저브바는 1인석과 2~4인석을 구분해 배치하고 콘센트는 1인석에 몰아넣는 구조다. 카공족이 2~4인석을 차지하고 공부하는 걸 줄이겠단 의도다.

스타벅스의 이런 변화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건 카공족이 한국 카페 문화의 성장 동력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중반 여러 카페 프랜차이즈가 한국에 상륙할 때 스타벅스는 카공족 친화 정책으로 시장을 선점했다. 매장 곳곳에 콘센트를 배치하고 무료 와이파이 혜택 등을 제공해 카공족이 몇 시간씩 매장에 머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 당시 라이벌이었던 커피빈은 스타벅스와 달리 '無콘센트·無와이파이' 전략을 고수했다가 뒤처졌다. 20~30대 카공족을 중심으로 '스타벅스가 공부하거나 일하기 좋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쏠림 효과가 나타났다. 무슨 일을 하든 스타벅스를 찾는 충성 고객이 늘어나면서 매출 확대와 점포 확장 등 추가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냈다. 커피빈뿐 아니라 할리스, 투썸플레이스, 이디야 등 후발주자들도 와이파이와 콘센트는 물론, 독서실 칸막이 같은 시설을 설치하거나 미리 예약하면 시간 제한 없이 좌석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1인석을 만드는 등 '카공족 모시기' 전략을 내놓으며 스타벅스 따라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10년 이상 이어진 선순환 고리가 정점에 달하면서 스타벅스가 기존의 카공족 친화 정책을 수정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작년 한국 스타벅스의 총매출은 1조5523억원으로 업계 2위인 투썸플레이스(2642억원)보다 7배 이상 높을 정도로 압도적 1위를 고수했다. 스타벅스가 매장 내 콘센트를 '구조조정'하는 건 이런 시장 지배력을 등에 업고 이제 매장 내의 회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익을 더 내겠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스타벅스 관계자는 "쇼핑몰이나 지하철역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입지의 매장에선 쉬면서 즐기려는 고객이 많아서 붙박이 소파라든지 편한 좌석을 일부 늘리는 방향으로 리뉴얼한 것은 맞는다"며 "대신 1인석에는 콘센트와 USB 포트까지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매장 전체로 보면 카공족을 위한 편의시설을 줄이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공족이 1시간 30분 이상 머물면 손해?

그렇다면 카공족은 카페 입장에서 실제로 돈이 되는 손님일까.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통계나 연구 사례가 전무한 실정이지만, 스타벅스에서 공개한 데이터를 통해 소위 '카공족 경제학'의 윤곽을 추청해볼 수는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작년 기준 스타벅스 매장당 매출 원가 및 운영 비용, 즉 커피를 팔고 매장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비용은 매장 1곳당 하루 평균 299만원가량이다. 스타벅스는 테이크아웃 매출 비중이 약 40%라고 밝혔다. 이를 감안하면 매장 내에서 약 180만~200만원가량의 매출을 올려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단 계산이 나온다. 메뉴나 매장 규모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평균적으로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을 4000원, 매장 내 좌석수를 50석 정도라고 보면 하루에 좌석 하나당 9~10잔의 커피를 팔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보통 스타벅스 영업시간이 하루 15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손님 1명당 좌석에 머무는 시간이 1시간 30분 내외여야 이만큼의 커피를 팔 수 있다.

물론 스타벅스 점포마다 임차료나 방문 손님 숫자, 회전율 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 수치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긴 어렵다. 하지만 카공족 대부분이 1시간 30분 이상 매장에 체류하고 있기 때문에 매출에 도움이 되기보다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여러 간접 증거들이 많다.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나 샐러드 같은 음식뿐 아니라 텀블러, 머그컵, 다이어리 등 각종 스타벅스 '굿즈' 판매 종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 대표적이다. 커피만 팔아서는 이익을 낼 수 없으니 한자리에 오래 머무는 손님들이 더 많은 소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스타벅스의 커피 가격(카페라테 톨사이즈 4600원)이 미국(약 4100원)이나 일본(약 3800원) 같은 선진국보다 비싼 것도 이런 카공족의 영향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서울 시내 스타벅스 매장들의 평균 면적은 231㎡(약 70평) 내외로 미국 뉴욕, 일본 도쿄 등 대도시의 스타벅스 점포들 평균 면적(약 40~50평)에 비해 훨씬 크다. 카공족을 비롯한 한국의 스타벅스 손님들의 평균 체류시간이 미국보다 더 길기 때문이다. 매장이 크다 보니 임차료는 물론, 각종 매장 유지 비용이 추가로 든다. 그나마 한국의 스타벅스 커피 가격은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에 비해 10%가량 저렴한 편이다.

테이크아웃 손님의 비중이 낮은 것도 비싼 커피 가격의 한 원인이다. 국제마케팅리서치회사 NPD그룹에 따르면 한국의 커피 테이크아웃 주문 비중은 35%로, 미국(43%)이나 일본(48%)보다 훨씬 낮다. 카페 입장에선 테이크아웃 손님이 많을수록 큰 매장을 유지할 필요도 줄어들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한국보다 테이크아웃 손님 비중이 훨씬 낮은 중국(10%)의 스타벅스 커피 가격이 한국보다 비싼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테이크아웃 손님들에게 할인을 해주지 않거나 할인을 하더라도 300~500원 정도만 해주는 게 대부분이다. 매장에서 마시는 손님들이 이런 종류의 할인에 항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공족이 특히 많은 대학가의 소규모 카페 중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가격을 2000~3000원씩 할인해주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신촌에서 20여 석 규모의 카페를 운영 중인 김찬호(30)씨는 "스타벅스처럼 큰 회사라면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몇 시간씩 죽치는 카공족들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겠지만 우리 같은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는 그런 손님들이 몰리면 망하기 딱 좋다"며 "요즘엔 테이크아웃 커피 가격을 파격적으로 할인해주는 게 대세이고 손님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카페야 도서관이야?… 전화 통화도 눈치줄 정도로 카공족이 대세

지난 22일 서울의 한 스타벅스 매장 풍경.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몇 시간씩 자리를 차지하는 이른바 ‘카공족’은 스타벅스의 성장 동력이었지만 이제는 매출에 부담이 된다는 지적도 많이 나오고 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기자

혼자 2~4인석 점령, 짐 놔두기도

“저기 목소리 좀 낮춰 주실래요?”

지난 20일 서울 신촌의 한 스타벅스 매장 2층. 전화 통화 중이던 기자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매장 안이 절간처럼 조용했다. 모두 노트북이나 책을 펴놓고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최근 2~3년간 대학가 프랜차이즈 카페 중 대다수는 이 스타벅스 매장처럼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에 점령당한 상태다. 오랜만에 신촌을 찾았다는 직장인 오윤석(38)씨는 “카페에서 뭘 하든 개인 자유지만 대화하는 것도 눈치를 줄 정도면 카페가 아니라 도서관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다른 손님들이 카공족을 존중하듯 카공족도 다른 손님들을 존중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가뿐 아니라 오피스 타운 일대의 카페에서 장시간 공부나 일을 하는 카공족들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예전처럼 카공족 전부를 싸잡아 ‘진상’이라 부르는 일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카페 손님에게 폐를 끼치는 일부 카공족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혼자 와서 2~4인석을 점령하거나,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서 가방이나 소지품으로 자리를 맡는 등 마치 도서관처럼 카페 좌석을 차지하는 유형이다. 서울 숙명여대 앞의 한 카페에서 일한다는 이윤정(22)씨는 “카페 내에 1인석이 많은데도 자기 짐을 놔두기 편하다는 이유로 매장 문을 열자마자 들어와 4인석을 차지하고 온종일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며 “심지어 편의점에서 음료수나 음식을 사 와서 먹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게 ‘외부 음식물 반입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해도 적반하장 격으로 항의하는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카공족뿐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장기 체류 손님들도 생기고 있다. 특히 서울 종로나 광화문 일대의 스타벅스 점포에는 평일이나 주말 아침에 매장에 들어와 음료 1~2잔만 시켜놓고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중장년층 손님이 많아지는 추세다. 광화문에서 커피 프랜차이즈 점포를 운영하는 A씨는 “주말에 큰 집회가 있을 때면 끝나고 나서 5~6명씩 가게에 몰려와 커피 한 잔만 시키는 분들이 점점 늘어난다”며 “이런 분들은 종이컵과 물을 달라고 한 뒤 물을 타 나눠 드시며 몇 시간씩 앉아 있는데 제지하기도 어려워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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