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역사 스페인 투우 막았다..지금 유럽선 '동물당' 돌풍
포스터에 올빼미·강아지 내건 동물당 아시나요
유럽의회 선거서 11개국 연합 출사표
최근 스페인에서 조회 수 230만번을 기록하며 논란을 부른 영상이 있습니다. 투우 경기는 마지막에 투우사가 검으로 소를 찔러야 끝나는데 갑자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황소의 눈물을 닦아주는 투우사 모습이 담긴 것이었지요. 4개의 창이 몸에 박힌 채 피를 흘리는 황소의 앞에 마주 선 투우사의 이 같은 행동에 “위선자”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목소리를 높인 이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실비아 바르케로 노갈레스 스페인 동물보호당(PACMA) 대표였는데요. 그는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다리에 피가 쏟아질 때까지 소를 고문한 뒤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것”이라며 “동정심조차 없는 투우사”라고 비판했습니다.
PACMA 등 유럽 전역의 동물당들은 지난 23일(현지시간)부터 진행 중인 유럽의회 선거에도 출사표를 던졌다고 하는데요. 이번 [알쓸신세-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에선 투표권이 없는 동물을 대신해 정치하는 동물당들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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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당 18개국서 등장…당과 의회에 동물친화 법안 압박
“녹색당을 포함해 다른 모든 당은 인간의 복지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가장 강한 자의 권리에 대항해 가장 약한 자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기본 원칙을 갖고 있다. 인간과 동물 모두의 이익에 봉사한다.”
무수한 정당들이 사람만을 위한 정책으로 목소리를 높일 때 이들은 선거 포스터에 올빼미, 강아지 등을 모델로 내세워 동물 권리를 주장합니다. 선거 운동이 한참이던 지난 20일 네덜란드 거리에 내걸린 16장의 선거 포스터 가운데 나비 로고를 새긴 포스터가 눈에 띄었는데요. 네덜란드 동물당(Partij voor de Dieren, PvdD)의 것이었습니다. 이미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한 전력이 있는 동물당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당이지요. 네덜란드는 이번에 25석을 할당받았는데 이를 놓고 싸우는 16개 정당 사이에 당당히 자리 잡으며 표심 공략에 나선 겁니다.
의원을 배출하는 등 정치권력을 직접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다른 당과 의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자는 데 이들 목적이 있습니다. 다른 당들이 동물친화적인 법안을 내도록 압박하고 인사검증 당시 동물 권리 등의 가치관을 따지는 식이지요. 유권자에게 어젠다를 던져주는 역할도 합니다. AWP의 당수 바네사 허드슨은 지난 2017년 아이리시 뉴스에 “대중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동물과 환경 문제가 정치적 의제의 정상에 오르는 일이 거의 없다”고 창당 이유를 밝히기도 했지요. “선거에 출마해 논쟁에 참여함으로써 주류 정치에서 무시되고 있는 이슈를 노출할 수 있다”는 겁니다.
15년 전에만 해도 전 세계에 하나뿐이던 동물당은 현재 유럽 외 미국과 캐나다, 호주, 아시아까지 모두 18개국서 생겨났습니다. 동물당이 모두 모인 동물정치협회는 정기적으로 총회를 열어 각종 사안을 논의하고 협력을 다지고 있지요.
모피용 동물 사육 금지시키고 500년 투우 축제 끝내
동물당들은 동물 실험을 폐지하고 동물 운송을 중단하며 동물 학대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PvdD는 국정 연설 때 ‘고기 없는 월요일’(Meat free Monday)이라 적힌 모자를 쓰고 탄피에 총알 대신 당근을 채우는 식의 퍼포먼스로 대중의 눈길을 끌기도 했지요.
PvdD의 경우 2014년 모피 생산을 위한 동물 사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내 통과시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단 평가를 받습니다. 2015년엔 서커스에 동물 출연을 막고 트로피 헌팅(재미 삼아 동물을 선택적으로 사냥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지요. 정부가 최우선 의제 중 하나로 육류 소비의 추가 감소를 들고 나선 게 첫 임기 4년의 가장 큰 성과라고 이들은 밝히기도 했습니다. 최근 유럽유대의회(EJC)에 따르면 네덜란드 헌법재판소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PvdD는 종교적 도축법 금지안을 또다시 하원에 냈지요. 이슬람 할랄, 유대교 코셔에 따르면 가축은 완벽히 건강한 상태에서 목을 베는 식으로 도살돼야 하는데 죽이기 전 반드시 무의식 상태로 하게끔 제한을 둬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입니다.
투우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인 스페인에선 지난 3월 대법원이 북서부 카스티야이레온 주에서 매년 9월 열리는 최대 투우 축제인 ‘토르 데 라 베가’를 결국 금지하라고 판결했는데요. 현지 언론은 500년 이상 이어진 고통을 종식시켰다며 PACMA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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