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안전 설계됐다고 '사고 없다' 장담 못해"

남지원 기자 2019. 5. 26.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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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한국 찾은 일본 원전 전문가 고토 마사시·마키타 히로시 박사
ㆍ“무면허자가 한빛 1호기 원자로 조작 의혹…절대 손대서는 안돼
ㆍ일본은 한국의 ‘후쿠시마 식품 수입금지’에 반발할 이유 없어”

24일 서울 서초동에서 고토 마사시 일본 원전 엔지니어(왼쪽)와 저술가인 마키타 히로시 전 고치공대 강사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게 설계돼 있지만 구조가 안전하다 해서 사고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면 좋겠지만 자동차나 비행기도 안전하게 만들었는데 사고가 종종 나잖아요.”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원전 기술자 고토 마사시 박사(70)는 최근 전남 영광군 한빛 1호기 수동정지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시바에서 원자로 격납건물 설계를 담당했던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 노심 융해 가능성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일본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원전 관련 저술가이자 공학박사인 마키타 히로시 박사(53·전 콜로라도대 객원교수)도 “원자로 조작을 무면허자가 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하던데 자격 없는 사람은 절대 원자로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이날 민변 환경위원회와 한국탈핵에너지학회 창립준비위원회가 함께 주최한 ‘일본 원전 오염수 관련 전문가 초청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최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하고 있는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 수백만t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 정부는 비용이 싸다는 이유로 오염수 속 방사성물질이 기준치 이하가 되도록 희석해 태평양으로 흘려보내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2013년 오염수 방류를 공식 인정한 일이 있으며 이는 한국이 후쿠시마 인근 8개현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한 단초가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기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안전해질 때까지 오염수를 보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토 박사는 “오염수의 절대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방류한다면 방사성물질 농도가 낮더라도 어떤 피해를 일으킬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마키타 박사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에 트리튬(삼중수소) 외에는 다른 방사성물질이 없다고 숨겨왔다는 사실이 지난해 8월 드러났다”며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도 않은 데다 다른 방사성 핵종도 발견된 이상 해양 방출은 안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대형 탱크를 건설해 오염수를 오랫동안 보관했다가 방사성물질 농도가 매우 옅어졌을 때 배출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고토 박사가 제안한 보관 기간은 123년, 마키타 박사의 제안은 240년이다. 마키타 박사는 “지금 석유비축기지에 사용하고 있는 대형 탱크를 15기 건설하면 충분해 비용 문제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세계무역기구(WTO)가 한국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분쟁에서 한국의 손을 들어주자 일본 정부가 반발하고 있는 데 대해 두 전문가는 공통적으로 “한국인이 후쿠시마 식품을 먹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한국의 선택이고 일본이 반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고토 박사는 “시판되는 식품류의 방사능은 전량 검출한계 이하”라고 전제하면서도 “‘드셔도 된다’고는 할 수 있지만 ‘왜 우리 식품을 사지 않느냐’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마키타 박사는 “식품의 가치는 절반 이상이 신용”이라며 “한국인이 후쿠시마 식품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한국 정부가 이를 대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일본 정부가 반발하는 게 이상한 태도”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1일 하야노 류고 도쿄대 명예교수가 한국 원자력학회의 초청으로 방한해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조사를 한 결과 모두 안전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두 사람은 “일본에서도 논란이 많은 연구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마키타 박사는 “데이터 제공자 상당수로부터 동의를 받지 않았고, 기본적인 계산이 틀려 연구논문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본 전문가 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의 원전 신규 건설 찬성론자들이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를 겪고도 탈원전을 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데 대한 의견을 묻자, 고토 박사는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이후 새 원전을 짓지는 않았고, 가동을 멈췄던 원전을 재가동하긴 했지만 사고 원전에 적용된 비등경수로(BWR)형 원전은 한 기도 재가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키타 박사는 “자신들의 전력자산을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풍력과 태양광발전이 원자력과 석탄발전보다 저렴하다는 게 입증된 상황에서 굳이 원자력이 더 싸다는 거짓말을 하며 원전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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