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 새벽에 무슨 택배야?" 경비아저씨가 외쳤다(영상)

박민지 기자, 백승연 인턴기자박민지 기자, 백승연 인턴기자 pmj@kmib.co.kr, 영상=최민석 기자 입력 2019. 5. 27. 05:01 수정 2019. 5. 2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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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 2개월 '쿠팡맨' 정진영씨 동행취재.."4.5분에 1개, 그래도 욕먹었다"
촬영=최민석기자

자정 전에만 주문하면 아침 식탁에 올릴 수 있다. 이걸 한 달 2900원으로 누린다. 이동시간, 노동력, 번거로움을 다 계산해본 영리한 소비자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수요가 늘면서 공급도 경쟁적으로 증가했다. 마켓컬리를 시작으로 쿠팡, 이마트 등이 뛰어들면서 새벽배송 시장은 3년 새 40배 성장했다.

하지만 편리함과 낮은 가격. 이 두 가지가 저절로 이뤄질리는 없다. 누군가는 더 일찍, 더 오래, 더 적은 돈을 받으며 일해야 한다. “야근 많은 직장인들의 최애 서비스”라는 환호와 “배송기사들의 몸을 갈아 만든 서비스”라는 비난 사이. 논란 많은 새벽배송 서비스의 민낯을 확인해봤다.

국민일보 기자들이 새벽배송을 시작한 지 2개월 됐다는 3년차 쿠팡맨 정진영(26)씨의 새벽배송길에 지난 16일 동행했다.

새벽 3시 도시 전체가 정지된 시간,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의 좁은 골목 가로등 사이로 쿠팡트럭의 불빛이 보였다. 정씨는 배달동선을 파악하고 있었다. 올해 1월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물량 탓에 더 서둘러야했다. 나름 능숙한 배달원인 그도 새벽배송을 앞두고는 긴장한다고 했다.

그는 올해로 쿠팡에 입사한 지 3년이 된 베테랑 쿠팡맨이다. 보통의 직장 3년 차와는 다르다. 정씨가 속한 조직에서 3년 이상 일한 직원은 10%가 되지 않는다. 정씨는 정규직 전환이 된 후 현재는 새벽배송 관리업무를 맡고 있다. 밤 10시 출근해 새벽배송 과정을 총괄 지휘한 뒤 새벽 3시부터는 현장으로 나가 배송지원을 한다. 퇴근은 오전 8시쯤 한다. 물량이 밀린 동료를 돕기 위해 그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다.

인적 없는 가로등 불빛이 전부인 거리.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은 상황이 조금 나았다. 이 시간에 공사장처럼 외진 곳을 방문할 때는 건장한 20대 남성인 정씨도 망설여진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개 짖는 소리만 나도 머리털이 곤두섰다.


새벽배송에서는 고객과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새벽 3시에 초인종을 누르거나 전화를 걸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배송지를 찾는데 애를 먹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날도 ‘문 앞에 놔달라’는 택배물건에 건물 비밀번호가 없었다. 한참을 동동거리던 정씨는 건물 외부 택배함을 선택했다. “문 앞이 아닌데….” 그는 배달완료 사진을 찍으면서도 내내 찜찜해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반드시 배달을 완료해야만 했다(배달완료 문자메시지는 오전 7시에 일괄 전송된다).

새벽 공기는 꽤 쌀쌀했지만 배송시작 20분 만에 정씨는 땀범벅이 됐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은 낫지만 이마저도 없는 곳은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암전된 곳도 많아 위험해보였다. 정씨는 “그래도 미끄럽지 않은게 어디냐”며 웃었다. 취재진을 배려해 속도를 늦췄다는데 정씨는 물건을 들고도 늘 빠른 걸음이었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새벽시간에 택배가 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경비원이 취재진과 정씨를 잡아세웠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니 돌아가라”고 했다. 등교하는 학생들이 길을 잘못 찾았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정씨는 “쿠팡이라는 회사인데 새벽에도 배송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경비원은 “새벽에 무슨 택배가 오느냐”며 “직접 주고 왔느냐, 택배를 잃어버리면 어떡하느냐”고 물었다. 정씨는 “원래 새벽배송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문 앞에 두고 오기로 고객과 약속을 한다”고 답했다.

쿠팡맨이 하루 8시간 동안 배달해야하는 상품은 약 150개다. 3.2분에 1개꼴로 배달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정씨는 이날 택배 20개를 1시간 30분 만에 완료했다. 4.5분마다 1개씩 배달한 셈이다. 1분도 쉬지 않았지만 “너무 느리다”는 관리부서의 질책 전화를 받았다. 정씨는 “쿠팡맨 대부분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다. 이 경우 정규직 전환에 불이익을 받는다”며 “나 같은 관리직까지 투입해야 간신히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번 새벽배송에 발을 들여놓으면 6개월은 무조건 유지해야한다. 6개월씩 3번을 버티면 정규직 전환 심사 기회가 주어진다.

특히 올해 초부터 물류업계의 속도경쟁은 극심해졌다. 사측은 살아남기 위해 인력은 그대로 둔 채 할당량을 늘렸다. 정씨는 “쿠팡맨은 수당이 아닌 고정급을 받는데 4년 동안 임금은 동결상태”라며 “물가상승률만큼도 인상해 주지 않았으면서 할당량은 계속 늘리고 있다. (수당으로 받는 회사보다) 3배 더 할당받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연히 건당 배송료는 급락했다. 올초 건당 3000원 정도였던 배송료는 최근 1000원이 조금 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새벽배송을 하는 쿠팡맨은 신입기준으로 한 달에 300만원 정도를 번다. 나쁘지 않은 수입이다. 고정급이 주는 안정감도 큰 장점이다. 게다가 새벽배송의 경우에는 임금이 1.5배 많다. 정씨는 “쿠팡맨들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고정급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다고 가정할 경우, 인사에 불이익을 받을지언정 임금을 깎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쿠팡맨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특히 새벽배송의 경우 임금이 더 높은데도 새 인력이 투입되는 족족 떨어져나간다. 정씨 캠프에 있던 동료 두 명도 일주일도 안 돼 퇴사했다. 정씨 역시 “돈을 더 주는데도 솔직히 새벽배송에 지원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며 “이렇게 열악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인력충원을 계속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탈 인원이 더 많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정씨는 새벽배송을 시작한 지난 2개월 동안 제대로 휴식을 취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훤한 대낮에 잠드는 게 힘들어 생체리듬이 엉망이 됐다. 식사도 불규칙해졌다. 그는 “밤낮이 바뀌고 식사가 불규칙해져서인지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저녁 약속이 어려워 친구관계도 사실상 포기상태다. 그는 “잠을 포기하고 낮 시간대에 가끔 친구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체력적으로 부담이 너무 크다”고 했다.

정씨가 가장 바라는 건 휴게시간 보장이다. 1시간이라도 쉴 수 있으면 식사라도 제때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새벽배송하는 쿠팡맨이 근무하는 총 9시간(밤 10시~아침 7시) 중 1시간은 휴게시간이다. 하지만 정씨는 “근무 중 쉬는 쿠팡맨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워낙 물량이 많다보니 9시간 내내 일해도 다 채우지 못한다. 일하는 시간 동안 밥을 먹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새벽배송의 경우 특히나 휴게시간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안전을 위해서다. 정씨는 휴게시간이 보장된다면 인력 이탈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인력이 충원되면 할당량은 줄어든다. 할당량이 줄면 밤새 질주하지 않아도 되니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 수 있다.

정씨는 “ 연이은 배달원 사망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다. 곧 닥칠 찜통더위는 어떻게든 이겨볼 수 있지만 겨울철 어둠 속 빙판길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며 “새벽배송 안전을 위해 할당량을 줄이고 휴게시간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생활물류서비스사업법’의 빠른 입법을 촉구했다. 그는 “물류산업이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종사자는 지위와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며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법을 제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본사도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란다”며 “쿠팡맨 노조를 작은 단체로 치부하지 말고 교섭 대상으로 존중해달라”고 강조했다. 정씨는 쿠팡맨 노동조합의 조직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새벽노동환경 개선을 역설하면서도 고객이 배송정보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아 허탕을 쳤다거나 경비원이 입장을 저지해 힘들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 “제 시간에 배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는 “단 한 번도 그런 상황을 가정해본 적 없다. 무조건 한다”고 답했다. 사명감이다. 이 정도 책임감이라면 1시간 휴식시간을 보장받는 최소한의 대우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박민지 기자, 백승연 인턴기자 pmj@kmib.co.kr, 영상=최민석 기자 yulli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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