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점검'이 문제다? 보수언론은 국민 안전 걱정 안되나

민주언론시민연합 입력 2019. 5. 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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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 2호기 철판 부식 관련 분석

[오마이뉴스 민주언론시민연합 기자]

2016년 6월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 한빛 2호기에서 철판 부식이 포착됐습니다. 이후 정부가 원전을 전수조사했는데, 9개 원전에서 유사한 철판 부식 그리고 13개 원전에서 콘크리트 구멍을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원자로 밖으로 방사능이 새어나올 수 있는 위험요인이었습니다. 수개월에 걸쳐 대대적 점검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여기에 따른 청구서도 날아왔습니다. 전 정부 때 90%에 육박하던 원전 가동률이 2018년 3월 54.8%로 떨어졌습니다. 에너지 생산량이 줄고 한국전력 순이익은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사고예방을 위해 손해를 감수했습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가장 큰 가치라는 우선순위가 작용한 결과일 겁니다.

하지만 야당과 원전 옹호론자 그리고 그와 궤를 같이하는 일부 언론은 '비용'에 착안해 비판했습니다. 여기에 약간의 왜곡까지 섞습니다. 마치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적자를 부른 것처럼 착시효과를 유도한 겁니다. 원전 결함이나 안전문제는 보도하지 않거나 언급해도 '점검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한다'는 업계의 볼멘소리를 주로 받아 적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구의역 참사, 김용균 씨의 죽음 등을 지나며 안전사회를 외쳤던 시민들의 다짐이 무색해졌습니다.
 
원자로에 생긴 위험요소, 보도한 언론과 눈감은 언론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원전에 실재하는 위험을 어떤 언론이 보도했고 어떤 언론이 무시했는지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앞서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가 국내 원전을 조사한 결과, 원자로 격납고 상당수에 부식으로 얇아진 철판과 구멍난 콘크리트 외벽이 문제로 지적된 바 있습니다. 해당 지적을 문제로 인식하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이 사실을 언급이라도 했다는 최소한의 기준선을 가지고 기사를 검색해 보도량을 비교했습니다.

원전 격납고의 철판 부식 문제가 처음으로 공론화된 2017년 4월부터 현재시점인 2019년 5월 24일까지 7개 신문지면에 난 기사 중 '철판 부식' 그리고 '공극'을 키워드로 검색했습니다. 여기서 '공극'은 작은 구멍이나 빈틈을 의미하는 자연과학 용어로 원자로 격납건물 외벽 콘크리트에 생긴 구멍을 가리킵니다. 한 차례 검색해 나온 기사 목록에서 '세월호 철판 부식'이나 '공공 극장'처럼 원전과 관련 없는 뉴스를 제외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최종적으로 62개 기사가 검색망에 들어왔습니다. 
 
 △ 원전관련 기사 중 ‘철판 부식’ 그리고 ‘공극’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기사량(2017/4/1~2019/5/24)
ⓒ 민주언론시민연합
 
그 결과를 언론사별로 나눠보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거듭 강조하건대, 이번 모니터 대상 기간은 2017년부터 2년이 넘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한겨레는 관련 보도를 28건으로 가장 많이 내놓았고 이어 경향신문이 20건을 보도했습니다. 이에 비해 조중동과 한국경제, 서울경제의 보도량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예 보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놓은 보수지들의 관련보도 제목과 지면배치를 살펴보겠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원전을 점검하고 있음을 부각하는 것보다는 원전 가동률이 떨어졌다거나, 이로 인해 사업에 차질을 빚는다는 식의 제목이 많았습니다. 
 
 △ 조중동과 서경, 한경의 원전 안전 관련 보도 목록
ⓒ 민주언론시민연합
   
원자로 결함이 대수롭지 않은가
특히 원자로 결함들을 대수롭게 생각할 필요 없다는 취지의 보도들이 많았는데요. 대표적 예시로 조선일보 <작년 원전이용률, 37년만에 최저치>(2019/2/7 안준호 기자)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지난해 원전 이용률이 60%대로 떨어진 첫째 이유는 정비·점검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에서 콘크리트 구멍과 철판 부식 등이 발견돼 정비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에 원전 이용률이 하락했다고 설명한다. 2016년 79.7%였던 이용률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1.2%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3월엔 52.9%까지 추락하는 등 상반기 이용률은 58.8%에 그쳤다. 하반기 정비를 마친 원전들이 재가동하면서 그나마 이용률이 65.9%까지 올랐다.
반면, 원자력 업계는 정부가 정비·점검을 전보다 몇 배나 까다롭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원전 정비는 통상 두 달 안팎이 걸리지만, 고리 3호기는 479일, 고리 4호기는 375일, 신고리 1호기는 413일이 걸렸다. 2017년 5월 18일부터 시작된 한빛 4호기의 정비는 올해 9월 30일까지 예정돼 있다. 정비 기간만 866일이다.
 
원안위는 원자로 여럿에 결함이 있다고 하고 있는데, 원자력업계는 근거도 정확하게 대지 못하면서 원자로 점검이 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자의 일은 그것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발견됐다는 결함이 실제로 긴 시간을 들여 정비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최대한의 사실을 모아서 나름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양측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고 마는 '갈등 중계식 보도'를 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 논조는 오히려 원전 가동률이 떨어졌다며 원자력 업계 측에 편향돼 있습니다. 원자력 안전 문제는 사실의 문제이자 시민들의 안전 문제이지만, 기자의 보도는 해당 사안을 정쟁으로 둔갑시킨 것입니다.
 
'원전 점검'을 '탈원전'으로 왜곡하기도

고장난 차를 고치는 건 결국 안전하게 운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차를 파는 것(탈원전)'과 '카센터에 맡기는 것(원전 점검)'은 목적부터가 다릅니다. 하지만 상당수 기사에서는 원전 점검과 탈원전이 동의어로 사용됐습니다. 조 단위의 한전 적자 그리고 급격히 낮아진 원전 가동률로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기고, 이를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반대 여론으로 연결시키려는 일부 언론의 왜곡인 것입니다.

다음 조선일보 <사설/탈원전 한전 상반기 1조원 적자, 현 정권 책임이다>(2018/8/14)이 대표적입니다. 
 △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률이 낮아져 한전 1조원 적자로 이어졌다는 조선일보 사설(2018/6/14)
ⓒ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정부의 안전점검에 대해서 "탈원전 이후 원전을 적대시하면서 안전 점검 등의 명목으로 원전을 세우는 일이 많아졌다"고 주장했습니다. 탈원전과 안전 점검이 어떤 인과관계라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도한 것인데요. 이런 지적을 하려거든 하다못해 안전 점검이 단순한 핑계인지 아니면 실제로 점검이 필요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과정이 선행됐어야 합니다. 하지만 앞선 보도량 분석에도 나왔듯 조선일보가 '철판 부식'이나 '공극'을 언급이라도 한 보도는 단 세 건에 그칩니다.

원전에서 발견된 위험요소를 정비하는 것은 원전에 대한 찬반을 논하기 이전에 상식 문제입니다. 원전에서 사고 가능성이 발견돼도 뭉개고 가자는 식의 사고방식을 '원전 찬성'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는 소리입니다. 안전 관련 사안에까지 정치적 프레임을 들이대는 일부 보수언론의 보도태도는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보수언론의 '탈원전 프레임 왜곡'은 경향신문 기사 <원전 가동률 떨어지자 한전 '적자'··· 탈원전 정책 때문?>(2018/10/26 이주영 기자)에 잘 정리돼 있습니다. 한전이 적자를 기록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점검으로 원전 가동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2016년 6월 한빛 2호기에서 격납건물 철판 부식이 발견돼 정부는 운영 중이던 원전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9기 원전에서 격납건물 철판 부식이, 11기에서 콘크리트 결함이 나왔습니다. 원전 정비일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해 11월 원전 가동률이 56.1%까지 떨어진 배경입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따라 일부러 원전을 멈춰 세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기존 원전의 부실시공 문제가 점검·정비 기간을 장기화시킨 것입니다.
 
안전에 돈 드는 줄 몰랐나? 언론의 안전불감증 우려

결국 이렇게까지 일부 언론이 원전 위험을 축소하거나 보도하지 않고 원전 적자만을 강조하는 것은, '원전을 점검하고 정비하는 비용이 지나치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 예상됩니다.

하지만 세월호가 가라앉고 구의역 노동자와 김용균 씨가 죽은 이유는 결국 '돈'을 아꼈기 때문입니다. 구조 책임의 진상규명은 차치하고라도, 낡은 선박을 개조해 지나치게 많은 화물을 실은 것은 세월호 참사의 1차적 원인이었습니다. 2인1조로 일했으면 죽지 않았을 노동자들도 회사가 인건비를 아낀 탓에 홀로 배치돼 목숨을 잃었습니다. 원전도 결국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설비가 부식되든, 구멍이 뚫려있든 일단 원전을 운행해서 최대한 많은 전기를 생산하자는 보수언론의 주장은 세월호 이전의 사고방식에 기반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으면 결국 돈이 굳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그 비용은 시민들의 목숨으로 치러질 겁니다. 돈을 아낄 게 아니라,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해 안전을 도모하는 게 절대적으로 맞다는 겁니다. 결국 이런 보도행태는 원전사고와 본인들은 무관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내가 사는 동안에는 별 일 없겠지'라는 무사안일주의가 생명 앞에서도 주판알을 튕기는 여유로 이어진 것입니다.

원전사고 피해는 원전을 일터삼아 일하는 노동자와 주거지 근처에 원전을 끼고 사는 지역민에게 집중되며,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언론은 더 이상 '원전 정비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느긋한 볼멘소리를 중단해야 합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4월 1일~2019년 5월 2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지면보도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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