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전 송강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봉준호의 행동

류원혜 인턴기자 2019. 5.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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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때 서로 따뜻했던 두 사람, '기생충'으로 칸을 뒤흔들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지난 25일(현지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사진=AFP=뉴스1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특별한 인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에서 20년간 환상의 호흡을 선보여 왔다.

두 사람이 함께 한 첫 영화는 2003년에 개봉한 '살인의 추억'이다. 봉 감독은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가 흥행에 참패해 어려운 처지였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한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에 인기배우 송강호를 캐스팅하는 데 성공했다. 앞날이 불투명했던 봉 감독은 어떻게 잘 나가던 배우 송강호를 캐스팅할 수 있었을까.

봉 감독은 데뷔작의 흥행 실패로 의기소침해 있던 2000년에 한 행사장에서 배우 송강호와 마주쳤다. 당시 송강호는 '반칙왕'과 '공동경비구역 JSA'로 충무로 신예 스타로 각광받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봉 감독에게 송강호는 "어제 '플란다스의 개'를 봤다.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잘 봤다"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송강호의 칭찬은 의욕을 잃었던 봉 감독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봉 감독은 2002년 두 번째 작품을 계획했다. 이미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뒤라 어떤 배우를 출연시킬지 부담이 컸다. 그 때 2000년 한 행사장에서 자신을 알아봐준 송강호를 떠올렸다.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송강호가 흥행에 실패했던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줄지 자신이 없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각본을 보냈다.

초조했던 봉 감독은 답변을 기다리지 못하고 송강호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고 "시나리오 봤다. 출연하겠다"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다. 귀를 의심하던 봉 감독에게 송강호는 "우리가 5년 전에 만났을 때 당신 영화에 출연하기로 이미 결정했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2년 전이 아니라 5년 전 처음 만났다고 했다. 알고 보니 봉 감독과 송강호가 처음 만났던 것은 2000년 한 행사장이 아닌 1997년 오디션 현장이었다.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2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배우 송강호와 함께 귀국,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chmt@

1997년 무명 연극배우였던 송강호는 단역 배우를 뽑는다는 소식에 한 영화 제작사 사무실을 찾았다. 그 때 젊은 조감독이 송강호에게 다가와 "'초록물고기' 잘 봤다"며 인사를 건넸다.

송강호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초록물고기'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초록물고기'에서는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지만 대중에게 알려지지는 못했다. 그랬던 송강호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한 젊은 조감독이 바로 봉준호였던 것.

송강호는 그날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아무도 탈락 사유를 알려주지 않아 답답해하던 그는 누군가로부터 녹음된 삐삐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보낸 장본인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넸던 조감독, 봉준호였다. 봉준호는 녹음 메시지에서 송강호가 어떠한 이유로 함께 작업하지 못하게 됐는지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언젠가 꼭 좋은 기회에 다시 뵙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송강호는 국민배우로 등극했고 2000년 한 행사장에서 마주친 봉 감독을 알아보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넨 것이다. 이후 봉 감독이 보낸 시나리오를 보고 흔쾌히 출연을 승낙했다. 그 작품이 바로 2003년 최고의 흥행작이자 역대 한국 영화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살인의 추억'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 스틸컷./사진=싸이더스 제공

영화 '살인의 추억'이 흥행과 비평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두 사람은 3년 후에 또 다시 뭉쳤다. 2006년 천만 관객 신드롬을 낳은 영화 '괴물'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휩쓴 것. '괴물'은 1301만 관객을 모아 봉준호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 됐다.

이어 2013년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등이 출연한 영화 '설국열차'에서 다시 한 번 함께 하며 서로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2019년 두 사람은 6년 만에 '기생충'으로 재결합했다. 송강호는 지난 4월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기생충'은 '살인의 추억' 이후 16년 만의 봉준호와 한국 영화의 진화"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봉 감독 역시 "배우 송강호는 영화를 찍을 때 더 과감하고 어려운 시도를 하게끔 의지가 되는 선배님"이라며 송강호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에 송강호는 "봉 감독과 안 지 20년이다. 인간적인 믿음도 있겠지만 그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와 비전에 늘 감탄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우정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제72회 칸영화제에서도 빛이 났다. 봉 감독은 시상식 무대에서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씨의 멘트를 듣고 싶다"며 송강호에게 마이크를 넘기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봉준호 감독과 주연배우 송강호가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왼쪽), 영화 '기생충' 포스터./사진=김창현 기자 chmt@(왼쪽), CJ 엔터테인먼트

1997년 삐삐 메시지의 인연은 20여년이 흐른 201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황금종려상은 전 세계 예술영화 축제로 최대 규모와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 최고상이다. 한국 영화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기생충'이 사상 처음이다.

상패를 받은 봉 감독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배우 송강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상패를 건네기도 했다. 이에 송강호는 자신을 먼저 알아봐준 봉 감독이 당연히 받아야 할 상이라고 답해 훈훈한 모습을 자아냈다.

봉준호 감독을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서게 만든 영화 '기생충'은 오는 30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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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원혜 인턴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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