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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확대범'에서 '고구마 확대범'으로

입력 2019. 05. 28. 13:46 수정 2019. 05. 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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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히끄와 함께 사는 제주 집을 계약하면서 바로 옆에 딸린 텃밭을 덤으로 받았다.

텃밭에는 히끄의 털이 빠지는 속도로 풀이 자랐다.

평소 나는 히끄가 그루밍을 하면서 혹시 털을 많이 삼킬까봐 빗질을 자주 해주는데 텃밭 관리는 그러지 못했다.

히끄는 창문틀에 앉아 내가 텃밭과 마당을 분주하게 오가는 걸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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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히끄의 탐라생활기
텃밭의 작물도 반려동물 대하듯..사랑을 쏟아부으면 더 잘 자란다
발만 보면 히끄가 고구마를 전부 캔 것 같지만, 고구마 사이에서 놀아서 저렇다.

지금 히끄와 함께 사는 제주 집을 계약하면서 바로 옆에 딸린 텃밭을 덤으로 받았다. 텃밭이라고 하기에 꽤 넓은 그 땅을 그냥 두기 아까웠다. 신선한 채소를 바로 따먹을 계획으로 모종을 샀다. 농사 첫해에는 텃밭을 빈틈없이 채우겠다며 이것저것 심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농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모든 게 쉽게 느껴졌다. 마음만은 이미 대농이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로망만으로 시작했더니 시행착오가 생겼다. 단호박 잎을 따서 된장국에 넣었는데 맛이 너무 써서 다시 봤더니 참외 잎을 따서 넣은 것이었고, 엄마가 손수 심어준 마늘은 어떻게 키우는지 몰라 의도치 않게 죽였다. 손 쓰기 힘든 일도 있었다. 태풍에 토마토 줄기가 끊어졌고, 고추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말라죽었다.

텃밭도 반려동물처럼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초보 농부가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텃밭에는 히끄의 털이 빠지는 속도로 풀이 자랐다. 평소 나는 히끄가 그루밍을 하면서 혹시 털을 많이 삼킬까봐 빗질을 자주 해주는데 텃밭 관리는 그러지 못했다. 순식간에 텃밭이 망가졌고, 그럴 때마다 농사와 안 맞는다고만 생각했다. 최근에야 내가 텃밭을 버거워했던 건 애정이 없어서였다는 걸 깨달았다. 정서적으로 교감하지 못한, 조금만 들여다봤다면 예측할 수 있었던 결과였다.

텃밭에 나가 있으면 창문으로 감시 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일을 열심히 하게 된다.

‘프로 농부’인 집주인의 일손을 돕다가 다시 텃밭을 잘해보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다. 흙을 만지다 보니 잡념이 사라졌다. 명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는 쉴 때도 휴대폰을 보고 있어서 온전히 뇌를 쉬게 하는 건 잠잘 때 뿐이었는데, 밭에서 일하고 나면 몸은 힘들어도 머리는 상쾌했다. 밭에 있는 시간이 진심으로 좋아졌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많아질수록 따지는 게 많아져 몸을 사렸는데, 농사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작물을 해본 결과 나와 궁합이 맞는 고구마를 주력으로 삼기로 했다.

뭐든 글로 먼저 배우는 편이라 텃밭과 고구마 재배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지 알려면 도서관 대출 내역을 보면되는데, 히끄를 키우기 시작할 때는 시중에 나온 고양이 서적을 모두 찾아 읽었다. 키워드가 이제는 고양이에서 고구마로 바뀌었다. ‘고양이 확대범’이 아닌 ‘고구마 확대범’이 되고 싶다. 히끄와 함께 먹어도 될만큼 맛있는 고구마를 정성스럽게 키워보려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을 깨끗이 씻고 히끄 눈꼽을 떼어주는 게 일과인데, 요즘은 한 가지 더 추가됐다. 텃밭에 나가 고구마가 잘 있는지 둘러본다. 히끄는 창문틀에 앉아 내가 텃밭과 마당을 분주하게 오가는 걸 지켜본다. ‘마감 요정’과 작가에서 지주와 소작농 관계가 된 것 같다. 농작물도 반려동물처럼 돌보는 사람이 시간을 많이 들이면 건강하게 잘 자란다. 자식 같이 키운다는 농부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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