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문화 결여 문제는 쏙빼고 한빛1호기 사고 0등급 매긴 한수원

조승한 기자 2019. 5. 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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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에 위치한 한빛 원자력발전소. 연합뉴스

한빛원전 1호기 원자로의 열출력이 급증하는 이상 상황이 12시간 가까이 지속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당시 원자로 제어봉을 무자격 정비원이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이 이번 사고를 안전에 영향이 없는 등급인 ‘0등급’으로 판단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사 측이 사고 규모를 축소를 위해 등급을 낮춰 평가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선 심각한 단계에 해당하는 3, 4등급이 맞다는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한수원은 이런 의혹 제기에 "등급을 축소 평가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대신 원전 사고 등급 평가기준인 ‘국제 원자력 사고 고장 등급(INES)’에 따라 이번 사고를 평가했다고 밝혔다. INES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경제협력개발기구 원자력기관(OECD/NEA)이 원전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건사고의 심각성을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입한 국제적인 공용 등급이다. 1992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약 60개국이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1993년 이 체계를 도입했다.

INES는 안전성 중요도에 따라 0등급에서 7등급으로 등급을 분류한다. 높을수록 심각한 사고이다. INES에 따르면 1~3등급은 고장, 4등급 이상은 사고로 정의한다. 원칙적으로 사고와 고장의 분류 기준은 사건의 발생이 종사자와 주변주민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의 여부다.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를 고장으로 분류한다. 안전에 중요하지 않은 경우는 0등급 ‘경미한 고장’으로 분류한다.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7단계는 전 세계 역사상 단 두 차례 있었다.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7단계는 심각한 사고로 방사성 물질이 수만 테라베크렐 이상 외부로 방출되는 경우를 뜻한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인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도 5단계다.

국제 원자력 사고·고장 등급(INES) 척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홈페이지 캡처

한수원은 규정에 따라 원안위에 보고했다. 사업자는 사고 발생 24시간 이내 안전 설비의 이상 유무와 방사성 물질 유출 등을 기준으로 규제기관인 원안위에 잠정 등급을 알려야 한다. 한수원은 “한빛 1호기 문제는 방사성 물질의 유출이 전혀 없이 원자로가 멈춘 것으로  안전설비가 모두 건전해 사고 등급평가 매뉴얼에 따라 잠정등급을 ‘0’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방사성 물질 유출도 없고 안전설비도 건전해 안전상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일반인 또는 작업자 피폭이 일어나거나 외부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경우와 핵연료 손상이나 방사선 방벽이 손상돼 원자력 시설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2등급 이상을 매기고 있다. 심각한 사고를 예방하거나 대처하기 위한 설비가 고장나는 경우에는 1등급에서 3등급이 매겨진다. 한수원은 이번 사고가 이 세 가지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한수원은 일각에서 이번 원전 정지가 3~4등급 수준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반박했다. 한수원 측은 “3등급 사고는 안전계통의 심각한 기능이 상실된 고장이며, 4등급 사고는 일반인이 피폭받을 수 있는 비교적 소량의 방사성물질 방출사고로 일본 JCO 임계사고와 같은 방사선피폭에 의한 사망사고가 이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JCO 임계사고는 1999년 일본 핵연료 재처리 회사인 JCO에서 핵연료를 가공하던 중 발생한 임계사고다. 매뉴얼을 무시하고 자체 작업 지침서를 편법으로 만든 채 우라늄 용액을 양동이로 붓다가 발생한 사고로 작업원들과 구조대원 등 49명이 피폭됐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3등급 이상의 사건이 일어난 적은 없다. 한국에서 등급을 매기기 시작한 1993년 이후 사고는 총 398건이 발생했다. 이 중 0등급은 369건, 1등급은 26건, 2등급은 3건이었다. 열 건 중 아홉 건 이상이 0등급인 것이다. 0등급으로 분류된 사고 대부분은 한수원이 이번에 밝힌 것처럼 방사성물질에 문제가 없고 안전설비에도 이상이 없는 경우다. 인적 실수가 주 원인으로 밝혀진 사례 중 0등급으로 결정된 사고도 있다.

하지만 한수원이 매뉴얼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시운전에 나선 점과 이후 열출력에 대한 이견으로 수동정지를 막은 정황이 제기되면서 등급은 높아질 수 있다. 등급 추가 상향 요인에 ‘안전문화 결여’가 있기 때문이다. 2012년 2등급을 받은 고리 1호기 사고도 이 요인에 해당한다. 당시 고리1호기 보호계전기 시험 중에 외부 전원도 잃고 비상발전기 가동에 실패해 12분간 전력공급이 중단됐지만 한수원 측은 비상발령과 관계기관 보고 등 필요조치를 하지 않고 32일이 경과한 후에야 원안위에 보고했다. 지난 2012년 한울 6호기도 인적 실수로 원전 압력이 증가했을 때 대처하기 위한 운영기술지침서를 잘못 적용한 사항이 확인돼 0등급이 1등급으로 오르는 등 안전문화 결여로 등급이 올라간 사례가 상당수 있다.

최종등급은 전문가로 구성된 원안위 원전사건등급 평가위원회가 사고의 경과를 검토하여 내리게 된다. 이후 원안위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평가위원회가 분기별로 진행되고, 사고가 여전히 수사중에 있는데다 처음으로 특별사법경찰이 투입된 사례라 결과가 당장 나오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편 한수원은 27일 긴급 토론회를 개최하고 사내 전문가로 구성된 ‘안전운영 현장점검단(TF)’을 5개 원전본부에 파견해 원전 운영 실태와 문제점을 점검하기로 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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