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 1호기 제어봉 조작 실패, 이래도 안 멈출 건가

이명옥 2019. 5. 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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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염 작업 하청노동자 이케다 미노루의 기록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

[오마이뉴스 이명옥 기자]

"위험한 원전가동은 멈춰야만 한다!"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 선생은 전라남도 영광에서 생명평화공동체를 일구며 바우연구소라는 대안공동체를 꾸려 젊은이들과 지속가능한 삶의 모형을 찾으며 살고 있다.
 
며칠 전 황대권 선생 페이스북에 올라온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한빛 1호기 제어봉 조작실패 사고로 영광군 전체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황대권 선생은 고추모를 심다 말고 달려가고 또 다른 활동가분은 예초기로 풀을 베다 말고 허겁지겁 군청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개호 장관이 한수원 사장을 불러 '한빛1호기 사고에 대해 보고를 듣는다'는 얘기를 듣고서라고 한다.

한수원 관계자들은 전혀 잘못이 없다는 표정으로 지역 사람들과 범대위 공동 활동가들의 출입을 막아섰다고 한다. 트럭을 몰고 온 농민활동가가 화가 나서 휘발유를 들이부었지만,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사건이 종결되었다는 놀랍고 씁쓸한 소식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영광군은 비상시국이나 전쟁판과 같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매일 집회로 날을 새우다보니 밀양처럼 농사를 짓는 분들의 농사며 일상이 뒷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상시국? 원불교대책위와 함께 영광군청 앞에서 집회. 매일 집회와 회의로 날이 샌다. 전화통도 바쁘고. 전쟁이라도 난 것일까?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니 2017년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국면에서 환경단체 쪽이 패배하면서부터이다.

그 후유증으로 전국조직이 와해되었고, 곧바로 고준위핵폐기물 국면으로 이어졌다. 신고리 싸움을 타산지석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며 수없이 만나고 회의하다 보니 영광대표가 지역, 광역, 전국을 대표하게 되었다. 영광 탈핵운동의 상징성때문이다. 이 와중에 한빛1호기 제어봉 조작실패 사고가 났다. 대형사고로 가는 마지막 단계이다.' - 황대권 선생 페이스북
 
▲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 후쿠시마 하청노동자의 실태 기록
ⓒ 두번째테제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마구 퍼져나가는 방사능을 막는 제염 작업에 하청노동자로 투입되어 일한 이케다 미노루의 기록이다.
 
우체국 집배원으로 2013년 3월 정년퇴직한 이케다 미노루씨는 후쿠시마 원전 복구 현장 하청노동자로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제염 작업을 했다. 지금은 후쿠시마 하청노동의 실태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지역 하청 노동자로 일하면서 겪은 일을 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원전의 위험성과 하청 노동자의 실태를 모르는 이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지금은 단번에 "원전이 밉습니다."라고 말하는 요시오카 씨, 직장도  뺐긴 데다가 고향인 다무라시 미야코지에도 돌아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이지 시대 이후 전해 온 논밭을 지키기 위해 요시오카 씨는 풀울 베고 밭을 경작해 왔다. "풀을 메고 나서 도랑에 앉아 논밭을 바라보는게 좋았지요. 아이가 들어 가면서 점점 고향의 좋은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면서 말을 이어 갔다. 아이에게도 그 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땅을 지켜왔지만 "원전이 내 꿈을 앗아 갔지요. 조상님들 묘역에 아이를 데려가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26쪽
 
후쿠시마 원전 제염 작업에는 4만 명 이상의 하청노동자가 투입됐다고 한다. 그들은 원청으로부터 다섯 단계 이상 넘어온 하청 업체를 통해 투입된 경우도 있다. 지휘 체계의 꼭대기에 속하는 정부나 원청 사람들은 그 위험한 작업장에 나타나는 법이 없었다.

소속 하청 회사들을 통해 작업량을 지시하고 작업장 변경, 작업 종료 일시를 알릴 뿐이었다.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이나 생명존중 따윈 없었다. 하청노동자들은 쓰고 버려지는 휴지와 같은 존재일 뿐이다. 일을 그만두면 피폭의 후유증에 대한 대책이나 보상도 없다. 

사고 전 도쿄 전력 직원의 보너스 지급액이 발견되는데 우체국 집배원으로 일하던 미노루씨가 받은 최고 보너스 금액의 세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심지어 노조조차 원전을 이해시키는데 일조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노조비를 받아 원전 추진 위원들을 홍보하고 있었다고 한다.
 
급여명세서도 나왔는데, 사고 전년(2010년) 연말 보너스 금액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관리직 것일지 모르지만, 지급액이 무려 267만엔'으로, 우체국에서 일할 때 내가 받은 겨울 보너스 최고 지급액의 3배가 넘었다. 역시 도쿄전력은 일류 기업이었다. -112쪽

위험을 지역민에게 떠넘긴 채 원전을 가동중인 한수원 관계자들 역시 자기들은 최고의 일터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많은 급여를 받으며 살 것이다. 원전의 위험을 알면서도 원전이 안전하다고 세뇌 작업을 벌이는 어용학자들, 관리들, 국회의원들의 행태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위험작업 외주화와 하청노동자에 대한 생명경시와 비인권적 행위도 역시 일본과 한국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 생명을 갉아 먹으면서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은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채 계약된 일당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올 봄(2015년 봄) 세간에는 아베노믹스 효과에 의한 임금 인상에 대해서 말이 돌고 있지만, 이곳 이치에프에서 그런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도쿄전력 노조는 춘투에서 임금 인상 요구를 보류했다고 하는데, 다른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 중공업, IHI 혹은 대형 제네콘들은 평균 6~8천엔의 임금 인상을 해 준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들 일용 하청 노동자에게는 낙수효과는커녕 물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는다.-207쪽
 
불필요하고 위험한 원전을 가동해 전기를 만들어 공급해 이익을 취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원전으로 인해 피해를 안고 사는 이들과 원전 폭발의 피해자는 또 누구인가. 전기를 싸게 공급받아 마음껏 쓰는 이들은 원전으로 피해를 보는 이들의 생명이나 안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오직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궁리를 하며 땅과 사람과 땅, 땅에 깃든 생명을 희생시키며 사는 것이다.
 
귀경 전날, 퇴소 절차에 동행해 준 현지 선배가 말한 것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나라는 어떻게 되려는지 원. 우리 고향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원전을 재가동하다니"라고 고친 어투로 말했다. 이전부터 도쿄전력의 하청업체에서 일을 해 온 선배지만 "지금은 도쿄전력이나 돈 때문이 아니야. 고향을 위해서 일하는 거야"라며 의무감을 보이는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 260쪽
 
저자는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절박함으로 하청노동자의 실태와 후쿠시마의 실태를 기록했다고 말한다. 원전 폭발의 위험은 러시아의 체르노빌이나 일본의 후쿠시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후된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영광, 고리의 원전 가동을 하루라도 빨리 멈춰야 한다.

백해무익한 원전 가동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재앙의 불씨를 삶터에 안고 사는 일이다. 그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황대권 선생이 영광의 주민들과 탈핵활동가들과 함께 바쁜 농사일을 제쳐두고 서울로 달려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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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 : 후쿠시마에서 하청 노동자로 보낸 시간 /이케다 미노루. 정세경 역./두번째테제 /1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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