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의 한계·위험성 드러났는데..정부 '대체시험법' 도입 의지 의문 [기고]

서국화 변호사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공동대표 2019. 5. 3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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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91년 제정된 동물보호법은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법이었다. 조문이 추상적이고 허술한 데다 동물학대를 제외한 나머지 법 위반에 대한 벌칙도 없어서다. 동물보호법 제정 뒤 28년이 지났다. 시민의식이 성숙하며 법규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제는 동물학대를 지금보다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돼 있다. 동물에 관한 전 세계 제도 및 정책 방향 역시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른바 ‘동물복지 선진국’이라 불리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이 느리긴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어느 정도 발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섣부르게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가 있다. 바로 실험동물 얘기다. 사실 우리나라는 동물복지에 관한 논의가 늦어진 만큼 ‘대체시험법’(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시험방법) 논의에서도 한참 뒤처져 있다. 2016년 화장품법이 개정되면서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 또는 원료를 사용하여 제조하거나, 제조된 화장품의 유통·판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게 됐다. 그리고 최근에야 동물실험을 대체할 시험법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도록 하는 법안 발의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비해 유럽연합(EU)은 1993년 화장품 개발에 동물실험을 금지한다는 목표를 설정했으며 2009년부터는 EU 내에서 화장품 원료에 대한 동물실험이 전면 금지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제도는 여전히 허점이 많다. 그야말로 원칙적 금지일 뿐 위해평가의 필요성, 수출입 대상국의 법령상 필요 등의 경우에는 이를 허용한다.

게다가 정부 부처들이 대체시험법 마련에 기울이는 관심의 정도를 보면 과연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줄이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09년 아시아 최초로 동물대체시험법검증센터(KoCVAM)를 설치했지만 법률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즉 대체시험법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지 않고, 그 법적 동기나 필요성 역시 전무하다.

대체시험법 필요성을 묻는 한 여론조사에서 ‘동물실험 대체방안이 법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88%를 넘었지만, 이를 이끌어야 할 정부 부처에는 ‘대체시험법은 동물보호론자들이나 주장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동물실험에 바탕을 둔 이종 이식에 관한 심포지엄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이 후원하고 있다. 과연 이들 부처가 동물을 이용한 이종 이식이 사람에게 주는 효용성과 과학적인 안전성, 그리고 이종 이식을 위한 동물실험의 윤리적 문제와 과학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을 해봤는지 궁금하다.

최근 ‘복제견 메이’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에 대한 고발과 압수수색이 이뤄지고, 그가 진행한 동물실험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이 교수의 동물실험, 그리고 농촌진흥청의 반려동물 연구사업에 대한 비판과 의문 제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농진청은 개농장 개들을 이용해 난자를 채취하는 등 물의를 빚은 이 교수를 반려동물연구사업단장으로 기용했으며, 이 사업에는 5년간 약 220억원의 연구비가 투입된다. 이는 동물실험과 실험동물 산업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017년 기준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실험을 위해 사용된 동물은 308만마리에 이른다.

동물실험에서 물질대사 및 약리·독성 반응에 대한 실험 결과와 임상시험 결과의 불일치를 비롯해 실험의 한계와 위험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유럽과 미국이 동물실험을 넘어설 새로운 과학 연구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꼭 동물권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체시험법의 목적은 실험동물의 사용을 축소하면서, 과학적 한계를 극복하며 인체에 더 가까운 모델을 개발해 그 정확도를 높이는 데 있다.

도입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생명윤리에 부합하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류의 복지를 위해 대체시험법을 위한 법률 제정을 지원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시작해야 할 때다.

서국화 변호사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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