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보다 비싼 커피' 논란에서 '스세권'까지..스타벅스 20년

2019. 6. 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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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1999년 7월28일 이대 앞 1호점
지난해 매출 1조5천여억원
커피전문점 업계 압도적 1위

다방커피·커피믹스→아메리카노
한국 커피 문화 크게 바꿔놓아
초창기 '사치' 논란은 고급 이미지로

무료 와이파이·콘센트 제공하며
'카공족' 적극 수용하는 전략 성공 한국인 입맛 맞춘 현지화도 주효
2016년 말 문을 연 스타벅스 1000번째 매장 청담스타R점.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제공

직장인 ㄱ씨는 출근길에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스타벅스 앱에 들어가 ‘사이렌 오더’(모바일결제시스템)를 켰다. 매장에 도착하자마자 음료를 받고 싶어서다. 스타벅스에는 없는 메뉴지만 ‘쿠앤크 프라푸치노’를 마셔보고 싶었다. 일단 바닐라크림 프라푸치노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퍼스널 옵션’에 들어가 ’자바칩과 토핑’, ‘초콜릿 드리즐 많이’를 선택했다. 우유는 ‘무지방 우유’를 선택했다. 나만의 ‘쿠앤크 프라푸치노’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에 들어가 음료를 받았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생겼다. 자리에 앉아 콘센트에 전원을 연결하고 노트북을 켰다. 스타벅스의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해 빨리 일을 처리했다.

고객이 원하는대로 만들어주는 ‘커스텀 서비스’, 매장에 가기 전 앱을 이용해 주문할 수 있는 ‘사이렌 오더’, 콘센트와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어 매장 안에서 공부나 일을 하는 ‘카공족’(카페+공부족)들. 다음달로 한국에 진출한 지 20년이 되는 스타벅스가 바꾼 풍경들이다.

한국의 스타벅스는 20년간 꾸준히 성장해 미국, 중국, 캐나다, 일본에 이어 전세계 매출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성공한 이유로는 ‘고급화 전략’ ‘카공족 수용 전략’ ‘현지화 전략’ 등이 꼽힌다.

1999년 7월, 스타벅스 1호점 이대점 당시 모습.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제공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에서 아메리카노로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한 스타벅스는 현재 78개국에 진출해 있다. 한국에서는 1999년 7월28일 서울 이화여대 근처에 1호점을 열었다. 이후 매장 수는 2010년 327개, 2013년 500개 2016년 1000개를 돌파했다. 지난해 매장 수는 1262개(지난 4월 말1280개)다. 매출액은 2016년 1조28억원으로 국내 커피전문점 가운데 처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한 뒤 지난해 1조5224억원(영업이익 1428억원)을 기록했다. 업계 2위인 투썸플레이스의 지난해 매출이 2743억원, 업계 3위인 이디야가 2004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독주’라고 할 만하다. 투썸플레이스의 매장 수는 1067개로 매출 차이보다는 크지 않다. 스타벅스의 한 개 매장 당 매출이 높다는 의미다. 스타벅스는 한국의 전통적인 ‘다방 문화’에 특유의 ‘제3의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더해 한국에서 새로운 커피문화를 이끌어온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에서 커피문화는 1960∼70년대 다방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당시에는 문화 공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방이 대중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다방에서 출판기념회, 시낭독회 등도 열렸다. ‘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이 다방 커피의 공식이었다. 1980년대부터 커피가 대중적인 기호식품이 됐다. 커피 믹스와 자판기의 등장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1990년대에는 ‘헤이즐넛 커피’ 등을 파는 커피숍이 잠깐 유행하기도 했다.

스타벅스의 등장은 한국의 커피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가 다방커피를 대체했고, 일회용 컵에 담아 길에서 들고 다니며 마시는 ‘테이크 아웃’ 문화가 생겼다. 이후 커피빈, 이디야커피, 탐앤탐스, 투썸플레이스 등 커피 전문점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스타벅스가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다방 커피나 자판기 커피, 커피믹스에 길들여진 입맛에 아메리카노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커피였다. 직원이 음료를 갖다주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 직접 음료를 가져다 마시는 ‘셀프 서비스’ 역시 적응하기 힘들었다. 뜻을 알기도 어려운 ‘카라멜 마끼아또’ 같은 메뉴 이름에 한 잔에 3000원이 넘는 높은 가격도 반감을 갖게 만들었다.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게 말이 되느냐” “주로 된장녀(과시성 소비를 하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속어)들이 스타벅스에 간다” 등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점차 스타벅스 매장 고유의 분위기와 친절한 직원 응대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된장녀 논란’은 역으로 스타벅스의 고급 이미지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2016년에는 일반 매장보다 2000~3000원 정도 비싼 리저브 매장을 만들었다. 현재 리저브 매장은 50곳까지 늘어 고급화 전략이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빠른 회전율 포기하고 카공족 흡수

스타벅스의 또 하나의 전략은 매장에서 오래 자리를 지키는 손님을 수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커피 전문점이나 식당은 회전율이 높아야 매출이 증가하기 때문에 몇 시간씩 앉아있는 고객은 기피 대상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손님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국내 커피 전문점 최초로 매장 내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를 도입했고, 매장 곳곳에 콘센트를 만들어 누구나 불편 없이 공부하거나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을 즐기는 ‘카공족’을 고객으로 흡수하며 커피 전문점 시장을 선점했다. 초기 라이벌이었던 커피빈은 스타벅스와 달리 와이파이도, 콘센트도 없는 전략을 고수하다 뒤쳐졌다. 스타벅스가 공부하거나 일하기 좋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 스타벅스에서 하는 충성 고객들이 늘어났다. 이나현(29·직장인)씨는 “스타벅스는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는 데다 와이파이 속도도 빨라 일하기 좋기 때문이다. 음악 역시 일에 집중하기 좋은 곡들을 선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콘센트가 없거나 이전보다 그 숫자를 줄인 매장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나 인천공항점,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점 등에는 콘센트가 없다. 이에 대해 스타벅스 관계자는 “백화점처럼 유동 인구가 많고 쇼핑 후 잠깐 쉬려는 고객이 많은 매장에는 콘센트를 찾는 손님이 많지 않고 소파처럼 편한 좌석을 더 선호해서 바꾼 것 뿐”이라며 “대신 1인석에는 콘센트는 물론 유에스비(USB) 포트까지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입맛이나 성향에 맞는 서비스를 재빠르게 도입하는 현지화 전략도 주효했다. 사이렌 오더는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를 겨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2014년 전 세계 스타벅스 최초로 사이렌 오더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 매장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발길을 돌려 다른 커피숍으로 가는 고객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이다. 고객은 앱에서 메뉴와 주문할 매장을 고르고 결제를 한다. 스타벅스는 근거리 위치 기반 고주파장비를 이용해 주문 고객의 접근을 매장에 알려준다. 고객이 매장에 도착하면 바로 주문한 음료를 받아갈 수 있다. 스타벅스 본사는 한국의 사이렌 오더를 벤치마킹해 2015년 여름 미국에서 ‘모바일 오더 앤 페이’를 내놨다.

메뉴도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개발했다. 한국 특산물을 활용해 2007년부터 ‘문경 오미자 피지오’, ‘광양 황매실 피지오’, ‘공주 보늬밤 라떼’ ‘이천 햅살 라떼’ 등 다양한 음료를 출시해왔다. 스타벅스는 한국에서 연 평균 35종의 새 음료를 출시하는데, 이 가운데 90%는 한국에서 자체 개발한 것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미국 시애틀 본사 역시 음료를 개발해 전 세계로 전달하는데, 한국인의 입맛에는 너무 달아서 일부 메뉴를 수정해서 들여오거나 사내 음료개발팀에서 새로운 메뉴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건물주들의 구애 대상

스타벅스는 매년 100개 이상씩 매장이 늘어났다. 숫자가 늘면 가치가 떨어질 법도 하지만 스타벅스는 반대로 최근 몇년 사이 건물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매장으로 자리잡았다. 100% 직영으로 운영되는 스타벅스는 보통 5년 이상 장기계약을 해 공실 우려가 없는데다, 매장을 찾는 고객이 많아 건물에 젊고 활기 찬 이미지를 불어넣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세권’(스타벅스+역세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전철역 주변의 상권이 살아나듯, 스타벅스가 건물에 들어서면 인근 점포 매출이 덩달아 증가하고 건물 시세까지 상승하는 효과를 낸다는 뜻이다.

‘스세권’ 효과를 노려 스타벅스를 건물에 입점시키고 싶다면서 먼저 문의를 하는 건물주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모든 매장은 직영점이기 때문에 신규 출점을 전담하는 사내 점포개발팀이 마련한 기준에 따라 매장을 낸다. 점포개발팀은 수요가 있는 후보지역을 물색한 뒤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정된 지역의 매물과 신축 건물을 조사해 입점 후보지를 압축한다. 전국에 신규 매장을 들일 수 있는 모든 후보지를 기록한 ‘스타벅스 국토개발계획 지도’도 제작했다. 전국의 지하철역과 신설 예정 지역을 지도에 그려넣고, 역의 규모에 따라 오픈 가능한 매장 수를 계산했다. 서울 지하철역은 역당 4개의 가상 매장을, 부산은 역당 2개 매장을 배정했다. 같은 방법으로 버스 정류장의 수도 조사하고, 정류장별 승하차율도 고려한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장소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과 직장인이 몰려있는 도심 오피스상권이다. 그 다음으로는 다수의 인원이 모일 수 있는 빌딩, 공연장, 영화관, 스포츠 시설, 케이티엑스, 공항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스타벅스가 매장 수를 빠르게 늘릴 수 있었던 배경으로 ‘규제’가 꼽히기도 한다. 스타벅스는 다른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와 달리 출점 규제를 받지 않는다. 전 지점이 직영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가맹점이 있는 이디야와 투썸플레이스 등은 가맹사업법에 따라 신규 출점 시 기존 가맹점의 영업권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매장간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두고 소상공인업계에서는 스타벅스가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스타벅스의 한국에서의 성공 현상을 분석한 책인 <스타벅스화>를 쓴 유승호 강원대학교 영상문화학과 교수는 “스타벅스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확산되고 있는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분위기 덕에 잘나가고 있다”며 “나를 철저히 보호하고 존중하면서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는 심리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이탈리아처럼 일상의 문화 속에 카페가 생활의 양식으로 스며들어 있거나 바리스타들이 자신의 기술로 커피를 우려내는 ‘작은’ 경쟁력이 없다. 그래서 (맛과 퀄리티가 아주 높지는 않지만) 어느 매장에서나 일정한 수준을 기대할 수 있는 스타벅스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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