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지망 대형로펌"… '법조인 정점' 판사, 돈공세에 밀렸다 [S스토리]

- 2019. 6. 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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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보단 대형로펌” / 로스쿨 우수생, 재판연구원 기피 심화 / ‘사시 합격 땐 판·검사’도 이제 옛말 / SKY 출신 5대 대형 로펌 선호 / 로펌 억대 연봉, 법관 초임 월 311만원 / 로펌들 로스쿨 1학년 때부터 채용 예약 / 올해 사법연수원 1·2등 김앤장行 선택 / 경력 법관 65명 중 ‘빅펌’ 출신 17명뿐 / 경력법관 지원 적어 수요만큼 못 뽑아 / 판사 1명당 처리 사건 연간 1233.9건 / 야근 반복 고강도 업무에 과로사 비극 / 1심 처리기간도 늘어… 피해는 국민 몫
#“왜 후배님들은 법관을 지원 안 하세요?”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재학 중인 A씨는 지난해 모교 특강을 온 10년 차 법관에게 판사를 왜 지원하지 않느냐는 싫은 소리(?)를 들었다. ‘선배와 만남’ 형태로 학교가 모교 법학과를 졸업한 현직 법관들과 로스쿨 재학생들을 이어주는 자리였다. 당시 법관은 모교 후배들이 사실상 예비 법관으로 불리는 재판연구원에 많이 지원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A씨는 “다른 현직 판사들이 학교에 와도 종종 왜 법관에 지원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며 “동기들은 그 말에 공감하지 않고 대형로펌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순위 대형로펌, 2순위 검사, 3순위 판사입니다.”
 
한 서울 소재 로스쿨 교수 B씨도 변한 시대가 새삼 놀랍다. 법조인 출신인 그는 현재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B 교수가 사법고시에 합격한 20∼30년 전만 해도 연수원 우수생들은 ‘법관-검사-변호사’ 순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B 교수는 “학생들은 1번이 대형로펌, 2번이 검사, 3번이 재판연구원”이라며 “우수한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데 이들이 대형로펌 위주로 진로를 선택해 (대형로펌의 주요 고객인) 대기업 등 경제적 강자를 대변하는 게 좋다고만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수 학생들의 법관 기피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과거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무조건 판·검사가 돼야 한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되레 SKY 로스쿨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대형로펌에 지원하는 경우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 경력 5년 이상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경력법관 제도도 대형로펌(김앤장·광장·세종·태평양·화우)에서 지원하는 변호사들의 숫자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신분보장 안 되는 재판연구원… 상위권 학생들은 대형로펌 선호

‘법조일원화’ 정책으로 로스쿨 졸업생과 사법고시 합격생들이 법관으로 가는 방법은 재판연구원이다. 재판연구원 최대 3년 과정을 마친 뒤 경력법관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상위권 학생들은 재판연구원보다 대형로펌으로 가는 길을 선호하고 있다.

31일 세계일보가 최근 10년간 사법연수원 수료 당시 대법원장상 등 우수상을 받은 10명씩, 총 100명의 진로를 분석한 결과 재판연구원보다 대형로펌으로 진출하는 수료생들이 점차 늘고 있었다. 지난 1월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48기 수료식에서 우수상을 받은 10명 중 3명이 법무법인 김앤장에 지원해 놀라움을 샀다. 이 중에는 대법원장상과 법무부장관상을 받은 상위 1·2등 학생도 포함됐다. 2010년 39기 수료생의 경우 우수생 10명 중 6명은 군법무관으로 진출하고 나머지 4명은 법관을 지원한 점에 비추면 상당한 변화다.

서울대 로스쿨을 중심으로 재판연구원을 기피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이날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재판연구원에 합격한 학생 중 서울대 로스쿨 출신은 4명으로 연세대(6명)·고려대(4명)에 비해 적다. 재판연구원이 처음 도입된 2012년에도 서울대 로스쿨 출신은 4명, 연세대와 고려대 로스쿨 출신은 각각 7명, 6명을 기록했다. A씨는 “최대 3년 과정인 재판연구원의 경우 판사가 반드시 된다는 보장이 없어 불안정한 것에 비해 대형로펌은 1학년 겨울부터 입도선매식으로 학생들을 유치한다”며 “또 과거에 비해 법조시장이 침체돼 전관출신이 개업한다고 해도 잘되는 시대가 아니라서 단기간에 전문성을 쌓고 돈을 벌 수 있는 대형로펌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경우, 지난해에 60∼70명 정도가 대형로펌으로 들어갔고 현재도 채용이 확정된 숫자가 50명 정도로 알려졌다. 반면 재판연구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한 학년당 20∼30명 정도로 전해졌다.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대형로펌에 입사한 C씨도 “서울대 로스쿨 안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대형로펌에 취직돼 채용이 일찍 확정된다”며 “판사와 달리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사건을 맡을 수 있어 선호도가 높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연구원의 경우 3학년부터 본격적인 채용이 시작돼 변호사 시험과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전했다.

◆법조경력 5년 이상만 법관 지원 가능… “우수 경력자들은 지원 안 해”

법원은 법조일원화 정책의 일환으로 경력법관들을 법관으로 채용하고 있다. 현재는 법조경력 5년 이상만 법관으로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판사들 사이에서는 “데려오고 싶은 변호사가 있어도 막상 법관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현황은 어떨까.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변호사 경력 5년 이상 경력법관 출신 현황’에 따르면, 대형로펌에서 판사에 지원하는 숫자는 많지 않았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변호사 경력 5년 이상을 보유해 경력법관으로 채용된 65명 중 대형로펌 출신은 17명에 불과했다. 중·소형 로펌에서 지원한 사람은 24명으로 가장 많은 출신을 차지했다. 법조일원화가 처음 시행된 2013년의 경우 대형로펌에서 지원한 경력 5년 이상 변호사는 한 명도 없었다.

일선 판사들은 우수한 인재들이 법관으로 지원하지 않는 이유로 낮은 처우를 꼽았다. 대법원에 따르면, 초임 법관의 월 급여(1호봉)는 311만원가량이다. 반면 대형로펌 신입 변호사들의 월 급여는 통상 8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법무관 출신 지방법원 판사 D씨는 “10여 년 전 군법무관을 마치고 대형로펌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고, 당시 연봉 1억3000만원을 제안받았다”며 “거절하고 판사 임용 후 월 급여가 3분의 1가량인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업무강도가 낮은 것도 아니다. 다른 재경지법의 판사 E씨도 “초임시절에는 주6일은 기본이고, 지금도 일주일에 3번은 오후 11시쯤 집에 간다”며 “그러나 급여는 대형로펌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이어 “판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도 떨어져 사명감만으로는 우수 인재들을 유인하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2026년 이후부터 법조경력 10년 이상만 법관에 지원할 수 있어 인재 유치가 더 힘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대형로펌에서 10년 이상 일하며 자리를 잡은 경력자들이 굳이 판사를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도 “인재 확보가 어려워 법원으로서도 많이 고민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 여전한 검사의 인기

그렇다면 검사는 어떨까. 법조계에서는 대형로펌만큼은 아니지만 상위권 로스쿨 학생을 중심으로 검사는 여전히 인기가 있다고 한다. 실제 민주당 금태섭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검사에 임용된 서울대 로스쿨 출신 학생은 15명으로 2015년 11명에 비해 다소 늘었다. SKY 로스쿨 출신 신규 검사 숫자는 지난해 33명으로 전체 임용자 대비 3분의 1가량을 차지했다. 2015년 21명 대비 늘어난 수치다.

고려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F씨는 “법조경력을 요구하는 판사에 비해 아직 검사는 신규 임용이 가능하다”며 “대형로펌만큼은 아니지만 재판연구원에 비해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검사 임용을 위해 로스쿨에서 이뤄지는 검찰 실무수업에는 많은 학생이 몰린다. SKY 로스쿨의 경우, 지난해 ‘검찰실무 1·2’ 수업을 들은 학생 숫자는 399명으로, 전년도 371명에 비해 증가했다.

검사 출신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에 비해 검사는 바로 임용이 되기 때문에 로스쿨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다”며 “상위 20% 안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검찰과 대형로펌을 지원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법조인 출신 B 교수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검찰은 많은 권력을 갖고 있어 상위권 학생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가동법관’ 구인난… 정원보다 582명 모자라

‘정원 3214명 중 실제 근무자 2632명.’

부족한 법관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숫자다. 지난 1월 법관 사내 전산망(코트넷)에는 법원행정처 차장 명의로 공지가 올라왔다. 휴직하는 법관들이 증가해 실제 재판을 진행하는 ‘가동법관’ 숫자가 약 10명 감소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사법연수원에서 법관 10명가량이 복귀해 공백을 메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우수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법원이 판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관 1명당 배당되는 사건도 많아져 사건 처리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31일 대법원에 따르면 이달 기준 가동법관들의 숫자는 2632명(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겸임하는 법원장 등 35명 제외)이다. 지난해 2699명 대비 감소했다. 이는 법령이 규정한 법관 정원에 비하면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다. 법령상 전국 법원에 배치돼야 할 법관은 3214명이다. 정원 대비 582명이나 법관이 부족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관 1명이 담당하는 사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7년 서울중앙지법 법관 1명당 처리사건 수는 1233.9건이다. 2011년 888.2건 대비 6년 만에 껑충 뛰었다.

대법원에 따르면 전국 지방법원의 형사공판 1심 평균 처리기간도 2013년 3.4개월에서 2018년 상반기 4.4개월로 늘었다. 법관 수 부족의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판사들의 근무강도도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법 소속 이모 판사는 밀린 업무 처리를 위해 야근을 반복하다 과로사했다. 그는 사망 전날에도 야근 후 새벽에 귀가했다.

일선 판사들은 우수한 인력 유치의 어려움과 부족한 법관 숫자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기획법관 출신 한 수도권 판사는 “법원행정처에서 경력법관을 선발하려고 해도 필요한 수요만큼 뽑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다 보니 법령에 비해 실제 가동법관이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우수한 자질의 법관을 선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초임 법관은 공무원 직급 3급 대우를 받는다. 이를 5급으로 낮추는 등 문턱을 낮춰 다양한 인재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재경지법의 판사는 “가만히 있어도 우수한 인력이 법관으로 오는 시대는 지났다”며 “프랑스 등 대륙법 계통 국가들은 높은 자질을 요구하기보다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을 법관으로 임용시킨다”며 “임용 문턱을 낮추고 국민참여재판 활성화, 양형기준법 확립 등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염유섭·유지혜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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