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만 하면 돈 준다? 이미 '실행중'입니다

강상구 2019. 6. 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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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의 진보정치] 녹색참여소득제안 ⑩ - 건강과 인센티브

[오마이뉴스 글:강상구, 편집:김지현]

불평등과 빈곤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주목할 만합니다. 한편에서 기후변화는 인류의 운명을 가를 절체절명의 문제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기후행동'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동시에 기후행동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녹색참여소득'을 제안합니다. 생태적 이동, 에너지 절약, 친환경 제품 사용 등을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녹색참여소득의 개념, 기본소득과의 차이, 기대효과 등에 대해 연재합니다.
 
여쭤봅니다.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 달에 수십 만 원의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전기, 가스, 수도의 절약을 조건으로 한다면요? - 기자 말
 
 걸으면 소득을 지급한다? 이게 허무맹랑하다고요? 전세계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새로운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pexels
 
평소에 자가용 승용차만 타고 다니던 사람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막고, 자동차가 아니라 인간 중심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의 삶의 양식 자체가 생태적 이동을 중심으로 분명히 바뀌어야 합니다.
 
'녹색참여소득'은 시민의 삶의 양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행동 변화에 따른 적절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는 발상에서 시작됐습니다. 자칫 허무맹랑한 제안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충분히 나올만한 구상입니다.
 
이미 생태적 이동, 에너지 절약 등을 조건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정책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특히 생태적 이동을 조건으로 한 인센티브 지급 정책은 지방자치단체, 금융회사, 통신회사 등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남아공 '디스커버리'사의 바이탈리티 프로그램 
 
 남아프리카공화국 보험사 '디스커버리'의 보험상품 '바이탈리티 프로그램'의 혜택들. 음식부터 영화관람, 비행기표 할인 등 혜택이 다양하다.
ⓒ 디스커러리 갈무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보험사인 '디스커버리'는 이 분야의 선두주자입니다. 디스커버리는 1997년부터 바이탈리티 프로그램, 우리말로 하면 '활력'쯤으로 번역할 만한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건강행동을 하면 그때마다 포인트가 쌓이고, 포인트가 쌓여 등급이 올라가면 보험료가 할인됩니다. 또 높은 등급일수록 무료 커피부터 비행기 할인까지 다양한 혜택이 뒤따릅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웰니스' 프로그램이라고 부릅니다. 웰니스는 '웰빙'과 '피트니스'를 합한 용어입니다. '운동을 통해 웰빙을 추구하는 프로그램'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보험료를 할인 해주면 보험회사 입장에서 손해 아닌가?'
 
이런 의문을 가지실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보험가입자들이 건강해지면,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지출이 적어지니 결과적으로 이익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프로그램은 오래 지속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남아공 국민의 평균 기대 수명은 63세인데, 바이털리티 가입자의 기대수명은 평균 81세이고 이중 골드멤버의 기대수명은 평균 87세라고 합니다. 미가입자와 비교했을 때 의료비는 17%가 줄었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들이 물론 디스커버리사 자체의 보고서가 출처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벌써 30년째 바이털리티 프로그램이 판매되고 있고, 남아공 전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지금은 전 세계 10여 개 나라로 이 프로그램이 팔려나가 가입자가 800만 명이라는 점을 보면 건강행동을 조건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 여러 면에서 효과가 있다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각종 금융 상품들
 
 KEB하나은행이 내놓은 '도전365적금'. 걸음수에 따른 금리우대 혜택 등을 제공한다.
ⓒ KEB하나은행 갈무리
 
유사한 보험상품은 한국에도 있습니다. 한국 '메트라이프' 생명은 180일 이내에 180만 걸음 달성 시 40만 원 상당의 관광상품권 등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걷기 보상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ABL생명'은 걷기와 식사 기록을 기준으로 마일리지를 매월 15만 점 쌓으면 다음 달에 2000원을 지급하는 상품이 있습니다.
 
보험사 말고 건강행동을 금리와 연동한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도 있습니다.
 
'나의 걸음수에 따른 우대금리 혜택! 걸음수 UP! 금리도 UP!'
 
KEB하나은행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렇게 홍보하고 있는 상품이 있습니다. 걸음수와 연계해 최대 연 3.75%까지 우대 금리를 주는 상품입니다. 이름도 '도전365적금'입니다.
 
이렇게 은행, 보험사 등은 건강행동 연동 인센티브를 가미한 각종 상품을 이미 판매 중입니다.
 
SK텔레콤에서는 'T건강걷기'라는 앱을 스마트폰에 다운받고, 1주일 단위로 걷기 목표를 채우면 매주 3000원 통신요금을 할인해주고 있습니다. 한 달로 따지면 최대 1만2000원입니다. 작지 않은 액수입니다. 최대 6개월까지 할인 혜택이 주어지는 게 아쉽긴 하지만, 걷기를 통신요금과 연동한 참신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통신요금 할인 대신 고객이 원하면 커피 1잔, 인터넷 쇼핑몰 할인 쿠폰 등을 제공 받을 수도 있습니다.
 
민간회사부터 지자체까지 
 
 '빅워크' 앱 미리보기. 100m를 걸으면 1원이 쌓여 기부행위 등을 할 수 있게 해놨다.
ⓒ Bigwalk Inc.
 
사실 걷기 보상 프로그램은 이미 각종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활성화돼 있기도 합니다. 
 
'캐시워크'라는 앱은 깔면 100걸음 당 1원이 적립됩니다. 역시 적립한 돈으로 커피, 스무디 같은 음료를 비롯한 각종 제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빅워크'라는 앱도 100미터 걸을 때마다 1원씩 쌓이는데, 쌓인 돈으로 각종 기부를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마음이 착해지는 아이디어입니다.

여러 지방자치 단체에서는 '워크온'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목표 걸음 달성 시에는 무료 쿠폰 혹은 기부 혜택을 제공하고 인천 서구에서의 나의 걸음 수 순위, 우리 동네에서 나의 걸음 순위도 알 수 있어 나도 모르게 승부욕이 생겨 걷고 싶은 의욕이 생기게 됩니다.'
 
인천 서구 블로그에 실려 있는 워크온 사업 안내 문구 중 일부입니다.
 
걷기 보상 프로그램이 갖는 다양한 효과들

점차 많은 사람들이 점점 많은 곳에서 걷기 보상 프로그램을 접하고 있습니다. 인센티브가 어떤 수준에서 설계 되느냐에 따라 참여의 정도가 달라지겠지만, '건강행동을 조건으로 한 인센티브 지급'이라는 원리 자체는 이미 생활 속의 일부가 돼 우리의 생활을 바꾸고 있습니다.

앞서 예로 들었지만, 아프리카 공화국의 디스커버리사가 실제 국민들의 수명을 연장시켰다는 사례만 있는 건 아닙니다.
 
SK텔레콤의 'T건강걷기' 가입자는 지난해 8월 이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1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최대 월 1만2000원, 그것도 6개월간만 지속되는 인센티브에 비교적 단시간에 100만 명의 시민이 반응한 것입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100만 명의 가입자가 그동안 걸어서 이동한 거리는 지구 둘레 620바퀴 정도라고 합니다. 이 설명이 사실이라면 이 서비스 가입자들은 자신의 건강을 챙겼고, 그 만큼 의료비를 절감했을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도 줄였습니다.
 
'워크온' 앱을 이용한 건강 사업은 앞에서 사례로 든 인천 남구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해 인천 남동구에서도, 경남 하동군, 김해시에서도, 부산 사상구에서도, 강원도 홍천군에서도 워크온 사업이 추진될 계획이거나 이미 추진되고 있습니다.
 
특히 김해시에서 진행하는 'ICT활용 걷기 활성화 사업'은 올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진행하는 건강영향평가 시범적용 대상사업으로 선정됐습니다. 늦지 않은 시기에 지방자치 단체 차원의 걷기 보상 프로그램이 갖는 시민 건강 증진 효과에 대한 엄밀한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인센티브 설계가 중요

결국 인센티브가 어느 정도 규모로 제공되는가,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는 건강행동 중에서도 걷기와 연동한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았지만, 인센티브 설계 역량에 따라 보상은 적정하게 하면서도 참여자들의 참여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은 여러 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디스커버리 프로그램은 영국에도 수출됐는데, 영국에서는 포인트 기준을 달성할 경우 음료를 제공하는 기준을 월 단위가 아니라 주 단위로 바꾼 후 활동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들이 대폭 늘었다고 합니다. 최소 운동 기준을 달성한 가입자가 50% 미만에서 80%로 증가했다고 하니 대단한 변화죠.
 
남아공에서는 걷기 이외의 건강 행동에도 보상을 합니다. 2009년부터 건강 식품을 구입할 경우 25%까지 현금으로 돌려주는 정책을 시행한 이후 가입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SK텔레콤의 'T건강걷기' 프로그램의 걷기 미션은 50대 가운데 36%가 달성한 반면, 20대는 그 절반인 18%정도에 그친다고 합니다. 똑같은 인센티브라도 세대별 반응이 다릅니다.
 
 인센티브의 종류와 제공 방식이 참여자들의 참여 정도에 영향을 준다는 점 만은 확실하다.
ⓒ pexels
  
나라와 지역, 세대 혹은 성별에 따라 사회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정책이 분명히 더 효과적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다만, 인센티브의 종류와 제공 방식이 참여자들의 참여 정도에 영향을 준다는 점 만은 확실합니다.

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인센티브가 커피 한 잔 정도에 그치더라도 참여율은 지급 시기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꽤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기업이나 지방자치 단체가 특정 정책 목표나 사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건강 행동을 참여의 조건으로 내거는 일은 전혀 이상할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점점 흔한 일이 돼 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건강행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기본소득과 연결해보는 상상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국가가, 지구의 건강까지 챙기는 생태적 이동에 대해서 인센티브를 주는 일은 이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녹색참여소득은 이런 상황에서 제시된 아이디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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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상구씨는 정의당 교육연수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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