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락한 고려청자' 아닌 조선의 미감 구현한 분청사기의 모든 것

이기환 선임기자 2019. 6. 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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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분청사기 선덕10년명 지석. 현존하는 조선 도자기 지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선덕 10년(1435년) 11월15일 차집을 장시지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화여대 박물관 제공

분청사기는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 위에 백토(白土)로 표면을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기를 일컫는다. 일본인들이 사용했던 ‘미시마(三島)’ 용어에 반해서 미술사학자 고유섭(1904~1944)이 새롭게 지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약칭이다.

‘퇴락한 상감청자’에 연원을 두는 이 사기는 고려 말인 14세기 후반부터 제작되어 조선조 세종조(재위 1418~1450)를 전후한 시기에 그릇의 질이나 형태 및 무늬의 종류, 무늬를 넣는 기법 등이 크게 발전해서 절정을 이뤘다. 분청사기는 백자가 조선왕조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는 16세기 무렵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분청사기 유로문 매병. 상감분청사기는 고려청자의 기법을 계승해서 15세기 전반까지 활발하게 제작됐다. |이화여대 박물관 제공

‘퇴락한 상감청자’라는 평처럼 고려시대의 전성기 청자에 비하면 다소 거칠고 색조도 어둡다. 그러나 상감(무늬를 선이나 면으로 파고 백토를 박아 넣음)·인화(무늬를 도장처럼 찍음)·철화(철분 안료로 그림)·귀얄(풀이나 옻을 칠할 때에 쓰는 솔로 백토를 바름)·선각(분장 후 선으로 무늬를 새기는 조화기법)·덤벙(백토물에 담가 분장)·박지(剝地·무늬 배경을 긁어내 하얗게 무늬만 남김) 등 다양한 장식이 가미됐다.

즉 청자나 자기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활력 넘치는 실용적 형태와 다양한 분장기법, 또한 의미와 특성을 살리면서도 때로는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켜 재구성한 무늬를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상감이나 인화분청사기에서는 매우 고려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덤벙(분장)과 귀얄, 철화, 박지 등에서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에서 광범위하게 유행한 보편적인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분청사기 연화문 편병. 상감과 인화기법으로 장식한 병이다. |이화여대 박물관 제공

이화여대박물관은 개교 133주년을 맞아 오는 30일부터 12월31일까지 2층 기획전시실에서 바로 이 조선의 미감을 보여주며 사랑을 받아온 특별전(‘분청사기’)을 연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분청사기 상감 유로문 매병’, ‘분청사기 선덕10년명 지석’, ‘분청사기 인화문 경승부명 접시’, ‘분청사기 인화문 경주장흥고명 유개태호’, ‘분청사기 철화 모란문 병’ 등 소장품 및 대여품 100여점과, 1958년 박물관이 입수한 전북 부안군 우동리 파편 200여점 등을 공개한다.

이 중 여말선초의 작품인 ‘유로문 매병’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을 계승해서 15세기 전반까지 활발하게 제작된 상감 분청사기이다. 외반된 구연과 쳐진 어깨선, 반전되지 않은 저부, 고르지 않은 기면, 회색빛을 띠는 유약, 청자의 포류수금문을 간략화 한 버드나무, 갈대 무늬 등 분청사기 매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준다.

분청사기 인화문 ‘경승부’명 접시. 경승부는 1402년(태종 2년) 원자의 교육을 위해 설치된 관청이다. 이 관청은 1418년 순승부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 분청사기는 조선의 가장 이른 단계의 공납자기이다.|이화여대 박물관 제공

‘분청사기 선덕10년명 지석’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도자기 지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선덕 10년 을묘년(1435년·세종 17년) 11월15일 차집을 장사지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지석에 절대연대가 남아있기 때문에 조선초 도자연구와 편년자료가 되는 작품이다. 또 두 지석의 뒷면 유색의 차이는 분청사기와 청자의 과도기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모양은 직사각형, 연꽃과 연잎으로 장식한 위패형으로 서로 다르다. 그러나 내용은 동일하다.

같은 내용이 2개인 것은 아들 이름 앞에 고애자(孤哀子·부모가 모두 돌아갔을 때 쓰는 호칭)라는 칭호를 붙인 것으로 보아 아버지와 어머니 무덤에 이 지석을 각각 1편씩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분청사기 상감 연화문 편병’은 상감과 인화기법으로 장식한 병이다. 이밖에 ‘분청사기 상감 모란엽문·연화문 접시’(15세기)의 경우 흑색·백색감입토를 모두 사용하던 상감청자와 달리 백색 감입토를 주로 활용하고 선이 아닌 넓은 면에 감입토를 넣는 면상감(面象嵌)과, 문양이 아닌 바탕부분에 상감을 하는 역상감(逆象嵌)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분청사기 인화문 ‘경주장흥고’명 유개태호. 장흥고는 돗자리와 지물 등 궁궐 물품을 마련하고 보급했던 관청이다. 장흥고명 분청사기는 주로 경상도 일대에서 제작됐다. |이화여대 박물관 제공

‘분청사기 인화문 경승부명 접시’에는 ‘경승부(敬承府)’ 명문이 새겨져 있다. 경승부는 1402년(태종 2년) 4월 원자(양녕대군)의 교육을 위해서 설치된 관청이다. 1418년 6월 순승부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 접시는 1402~1418년 사이에 제작된 것이 틀림없다. ‘경승부’명 분청사기는 조선의 가장 이른 단계의 공납자기이다.

중국 금나라 시대의 베개이다. 백색 화장토를 입히고 붓으로 흑색안료를 찍어 모란문을 그린 자주요 백자흑화장식 베개이다. |이화여대 박물관 제공

‘분청사기 인화문 경주장흥고명 유개태호’ 역시 명문 항아리다. ‘장흥고(長興庫)’는 돗자리와 지물 등 궁궐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마련하고 보급했던 관청이다. 1392년(태조 원년)에 고려 시대의 제도를 답습하여 설치했다. 장흥고명 분청사기는 인수부명과 함께 주로 경상도 일대에서 제작되었으며, 충청도에서도 일부 발견된다.

이밖에 ‘분청사기 인화문 합(그릇)’의 경우 윗면이 납작한 뚜껑의 형태로 보아 당시 사용하던 금속기의 형태를 모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분청사기 인화문 내섬명 발(사발)’은 내섬시(內贍寺)라는 관청에 공급한 사발로 보인다. 내섬시는 조선시대 궁궐에 바치는 토산품과 2품 이상에게 주는 술과 안주, 왜인 및 여진인에게 주는 음식물과 직조 등을 담당한 관청이다.

장남원 이화여대 박물관장은 “이번 전시에서는 분청사기의 개념부터 기법과 조형미, 근대기의 전승현황 등을 담아 미술품으로서의 도가지를 넘어 한 시대의 경제 산물로서, 제도적 변화 아해 주문된 생산품으로서, 또한 과거의 전통을 대변하는 기념품으로서의 여러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I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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