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센인의 어머니..반세기 봉사 펼치다

허연 입력 2019.06.04. 17:45 수정 2019.06.0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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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천사' 강칼라 수녀 한국파견 50년
이탈리아 가톨릭집안 출신
전북 고창 호암마을에 정착
한센인과 함께 돼지 키우고
담배농사에 기도하며 생활
8일 조촐한 미사와 공연
"타인을 위해 사는 일이
곧 나 자신을 채우는 일"
"대신 아파 줄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전라북도 고창군 호암마을 한센인촌에서 만난 강칼라 수녀(76)는 "봉사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우문에 이렇게 답했다. 답변의 울림은 오랫동안 기자의 가슴에 남았다.

강칼라 수녀가 한국에 온 지 50주년을 맞았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스물다섯 살 꽃다운 나이에 한국에 와서 한센인들과 함께 한 지 50년이 됐다.

축하인사를 전하는 기자에게 강칼라 수녀는 이런 소감을 말했다.

"기념하고 말 것도 없는데 본당 신부님이 자꾸 말씀을 하셔서 작은 기념식을 해요. 봉사는 아니고 그분들과 그냥 함께 산 거예요. 50년 동안 순간순간 그분들과 너무 너무 행복했어요. 어려운 분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굳세요. 일반인들은 쉽게 포기하지만 그분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아요. 그분들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본명이 탈로네 리디아인 강칼라 수녀는 이탈리아 북부 쿠네오에서 사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열아홉 살에 '작은 자매 관상 수녀회'에 들어가 수녀가 됐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강칼라 수녀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나누는 삶, 사랑하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들으며 자랐다. 그의 언니도 수녀가 되어 방글라데시에서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신학을 공부하면서 전쟁고아를 돌보던 강칼라 수녀는 1968년 한국에 온다. 그가 속한 선교회에서 한국으로 파견할 수녀를 뽑았는데 그때 지원을 했다. 강칼라 수녀는 그때 일을 두고 "이상하게 한국에 마음이 끌렸다"고 말한다.

강칼라 수녀가 정착한 전북 고창 동혜원마을(현 호암마을)은 일제강점기부터 한센인들이 살기 시작한 정착촌이다. 마을에 공소가 있어 차별과 아픔을 안고 살아야 했던 한센인들은 신앙 속에서 위안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세례명인 '카를라' 발음이 어려워 '칼라'라고 불렀다. 그게 그냥 이름이 됐다. 성인 '강'씨는 한 마을 어른이 자기 성을 붙여준 것이었다.

강칼라 수녀는 한센인들과 뒤엉켜 돼지를 키우고, 담배농사를 지으며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골방에서 살았다. 한센인들을 치료하기 위해 스페인 병원에 가서 한센병 공부를 하고 간호보호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불편한 몸과 편견 때문에 세상에 나가기를 꺼리는 주민들을 위해 매일 고무신을 신고 자전거로 읍내에 나가는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

호암마을은 한때 환자 200명에 그 가족까지 모여 사는 큰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10여 명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치료가 된 사람들은 마을을 나갔고, 고령의 환자는 대부분 사망한 데다 남은 자녀도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반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강칼라 수녀는 요즘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 사업으로 도자기 만드는 일을 하면서 마을을 체험장소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호암마을 도자기'는 전국적으로 꽤 유명하다.

모진 노동에 시달린 강칼라 수녀의 몸은 온전하지 않다.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했고, 요즘은 심장도 좋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봉사의 삶은 여전하다. 지금도 장을 보러 가고, 도자기를 만들고, 밭일도 한다. 그는 여전히 말한다. "남을 위해 사는 일이 곧 나를 채우는 일"이라고.

그의 공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2016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2018년에는 호암상을 받았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오는 8일 호암마을에서 강칼라 수녀의 한국 파견 50주년 행사를 연다. 기념미사와 수녀님과의 대화, 퓨전 국악 공연 등이 준비되어 있다. 강칼라 수녀의 '타인을 위한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수녀의 직무는 그가 속한 선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지만 그는 한국에 계속 있고 싶어 한다.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것이 이유다.

"한국에서의 하루하루는 모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었어요. 아직 신의 말씀에 응답할 일이 많이 남았어요."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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