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수사 외압 자료·당사자 넘쳐"

2019. 6. 7. 13: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21] 2013년 경찰 수사 실무자였던 ㄱ총경 인터뷰
경찰의 청와대 사전 보고 여부가 핵심… “내가 청와대에 보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5월1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6년 만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결국 구속 기소됐다.

김 전 차관은 2013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윤씨의 강원도 별장에서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수사로 전환되면서 결국 차관 임명 엿새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단죄는 없었다. 검찰은 그해와 이듬해 두 차례 수사했지만, 그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려 면죄부를 줬다.

그리고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지난 6월4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은 김학의 전 차관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하면서 그를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제기된 의혹의 일부 확인에 불과했다.

수사단의 재수사에서 김학의 전 차관을 구속 기소한 혐의 못지않게 핵심 사안이던 청와대 등 윗선의 수사 외압 의혹이나 봐주기·부실 수사 논란 등은 검찰이 면죄부를 쥐여줬다. 수사단은 먼저 외압 의혹의 중심에 섰던 곽상도 당시 민정수석(현 자유한국당 의원), 이중희 민정비서관(변호사) 등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수사단은 “경찰 질책 등 수사 외압은 없었다”고 결론지으면서 “경찰은 ‘성접대 동영상’ 등을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으며, 당시 논란이 된 경찰 수사 라인 인사는 정상적인 조치였다”고 판단했다. 검찰 수사팀에 대해서는 윗선의 수사 개입이나 간섭이 없었다고 하면서 수사팀 자체의 부실 수사 가능성은 아예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외압 의혹의 피해 당사자로 수사에 임했던 경찰은 검찰 수사단의 수사 결과에 즉각 반발했다. 당시 수사 책임자인 수사기획관부터 수사 실무진인 일선 팀장까지 외압의 증거를 꺼내들었다. 주장의 핵심은 “외압을 입증하기 위해 업무일지 등을 수사 당시 검찰에 제출하거나 당시 상황을 자세히 진술했다. 하지만 이번 수사 결과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겨레21>은 2013년 범죄 정보를 수집하고 직접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실무를 맡았던 수사 담당자 ㄱ총경과 6월5일 인터뷰했다.

“외압 없다는 경찰 수뇌부, 외압 당사자일 수도”

이번 재수사의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외압과 수사 방해’였다. 그런데 경찰들이 외압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럼 결론이 난 것 아닌가.

그건 당시 (경찰청장, 수사국장 등) 윗사람들이 그리 얘기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또 (외압의) 당사자일 수도 있으니 그리 말할 수 있다. (청와대든 검찰이든 경찰이든) 거짓일 수 있다. 그러니 수사하라는 것 아닌가. 외압을 입증할 증거는 많다. 이세민 당시 수사기획관과 당시 범죄정보과장이 (청와대) 수석실에서 전화가 와서 보고했다는 등의 내용을 자료로 남겨놓았고, 그것을 이번에 검찰에 제출했다. (외압이 아니라면) 그런 말을 그들이 왜 남겨놓나. 이번 수사 결과에 그런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지휘 라인에 있던 경찰 고위 관계자가 자신에게 보고되지 않았고, 보고받았다면 공직 인사를 검증하는 청와대에 보고했어야 한다고 진술했다.

(2013년) 3월2일, 5일, 9일, 11일 등 누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내용을 확인해줬고, 또 누구한테 보고했다는 내용이 당시 실무자와 수사기획관의 메모에 남아 있다. 보고하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또 13일에는 내가 직접 당시 과장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갔다. 들고 간 보고서에는 김학의 동영상과 관련한 주요 내용이 담겼다.

ㄱ총경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한 문건의 이름은 ‘검찰 고위공직자 김○○ 동영상 관련 보고’다. ㄱ총경은 “보고서에는 동영상 내용과 함께 촬영 및 유출 경위, 동영상 내 등장인물 특정, 관련 (피해) 여성의 진술 등이 기재됐다”고 말했다. “나만 아니라 다른 동료도 함께 청와대에 들어갔다. (검찰은) 청와대 출입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내가 들어간 것도 인정하지 않던데, 경찰 생활 20여 년 만에 처음 들어간 날을 내가 어떻게 잊겠나. 그게 아니라도 다른 자료와 당사자가 차고 넘치는데 어떻게 그렇게 (보고가 없었다고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김학의 동영상과 관련해 경찰의 청와대 사전 보고 여부의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은 이후 청와대 외압과 수사 방해를 규명하는 데 주요한 대목이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사전 보고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경찰이 검경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검찰 고위 인사인 김 전 차관의 비리를 감춰두었다가 임명과 함께 공개하면서 정권에 부담을 주고 검찰을 의도적으로 흠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 민정수석이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4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검경수사권 조정 때문에) 정권 출범 초기 아직 자리를 못 잡은 상태에서 경찰이 사실상 항명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수사단의 발표를 보면, 경찰이 청와대에서 김 전 차관의 내정 전까지 사건 관련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발표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이와 함께 수사 초기 이뤄졌던 수사 라인에 대한 인사 조치에 대해서도 “부당한 인사 조치가 아니”라거나 “부당한 인사라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맥락만 보면, 당시 인사 조치는 경찰의 항명이 있었는데도 불이익을 안 주고 공정하게 진행됐다는 결론에 이른다.

“3월 수사 착수하자 4월 초 인사 조치”

수사단은 당시 경찰이 (김 전 차관과 관련한) 보고를 누락한 것을 지적한다. “차관 내정 발표(3월13일) 전까지 경찰이 (김학의) 동영상을 확보한 사실이 없고 내사나 수사 단계가 아니라고 보고했다”고 발표했는데.

지엽적인 내용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김학의) 동영상 확인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실체가 있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사를 시작하면 확보할 수 있다고도 보고했다. 이와 관련해 3월2일부터 지속적으로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수사 외압의 대표적인 예로 지목됐던 당시 경찰 인사 조치는 이번 수사 발표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과연 그럴까. 수사 착수가 3월인데, 4월 초에 경찰청장부터 수사 라인 모두가 인사 조치됐다. 이게 외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실제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 인터뷰에서 수사 라인을 문책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2014년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의 경험담을 얘기한 <조선일보> 인터뷰 내용도 이를 뒷받침한다. “경찰에 그 사람(김학의)과 관련해 내사를 진행 중인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중에 그와 관련된 의혹이 불거졌고 경찰 지휘 라인에 대해 책임을 물어 인사상 불이익을 준 적도 있었다.”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김학의 전 차관 수사 외압 혐의와 관련해) 당시 곽상도 민정수석(현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중희 민정비서관을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했다.

물론 수사를 착수한 이후 (수사팀에는) 직접적 외압이 없었던 것은 맞다. 다만 외압이 있었던 것으로 볼 만한 단서는 충분했다. 이 전 수사기획관 등 충분한 자료와 진술이 있음에도 직권남용의 피의자나 공범이라고 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그쪽 얘기만 믿고 결론 내는 수사를 누가 신뢰할 수 있을까.

외압과 관련해 이세민 전 수사기획관은 6월5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두 차례 검찰 조사에서 외압 정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당시 수사국장이 청와대 전화를 받고 당황해 부담을 느꼈던 부분이나 당시 청와대 행정관도 찾아와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큰일 난다고 말한 대목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이는 외압이 없었다고 경찰들이 진술했다는 수사단의 발표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지난 6월4일 여환섭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 단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검찰 지휘로 원본 동영상 확보 지연”

본인이 외압을 겪지는 않았나.

수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적인 얘기지만, 안쪽(청와대를 뜻함)이 범죄 정보 수집 단계에서부터 관심 갖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김학의 사건은 3월2일부터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내가 (청와대) 민정이나 정무에서 연락왔다고 해서 보고한 게 몇 번인데…. 이게 외압인가 느껴질 정도였다. 수사에 착수하려고 할 때 윗선에서 수사 착수를 안 했으면 하는 얘기도 있었다. 회의 석상에서 벌떡 일어나 언성 높이며 싸우기도 했다. 왜 그런 일이 있었겠나. 경찰이 범죄를 수사하겠다는데, 대차게 나서야만 했던 이유가 있지 않았겠나.

이번 수사 결과 발표마저 ‘또 부실 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검찰은 김 전 차관을 구속 기소했다. 가본 적도 없다는 강원도 별장, 알지도 못한다는 윤중천과의 관계를 밝혀냈다. 경찰 수사 실무자로 검찰 수사 결과를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검찰진상조사위는 당시 경찰 수사를 두고 “경찰은 이 사건을 주시하면서 김학의와 관련해 수사 초기에는 뇌물수수 등 부패 범죄 측면에서 접근했으나 특수강간 등 성범죄로만 입건·송치했고 수사 결과도 여성들의 진술에만 의존했다”고 비판했다.

김 전 차관이 구속됐지만 애초 2013년 경찰에서 기소 의견으로 낸 특수강간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먼저 검찰이 윤중천씨를 강간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한 내용은 경찰이 당시 수사에서 밝힌 내용과 대부분 일치한다. 중요한 것은 김 전 차관이다. 검찰이 말하는 피해 여성은 경찰이 애초에 말한 (김 전 차관의) 특수강간의 피해자와 다른 사람이다. 원래대로라면 해당 피해 여성을 따로 불러 다시 진술받고 김 전 차관이 어떻게 폭행·협박을 했는지 조사해야 했다. 이번 수사 결과만 보면 그 부분의 언급이 아예 없다.

그럼에도 애당초 경찰이 뇌물죄로 보고 수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다.

맞다. 당시에는 뇌물죄로 수사할 여건이 안 됐다. 그래서 ‘이거는 접자, 입증할 수 있고, 구체적인 진술이 있는 것(특수강간 등)으로 가자’, 이렇게 한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다른 사안이라면 곧바로 나왔을 영장(경찰이 신청한 영장은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뒤 판사가 발부 여부 결정)이 한번에 오케이(검찰에 의해 수용)되는 경우가 없었다. 결정적으로는 수사 초기 김 전 차관 관련 동영상 원본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도 검찰이 지휘하면서 열흘 가까이 지연됐다. 이런 상황에서 뇌물을 준 사람의 진술도 없는데 김 전 차관이 받은 것 같으니 계좌를 뒤져보겠다는 말이 나올 수 있나. 검찰은 김 전 차관을 그때도 지금도 (뇌물 혐의를) 수사할 수 있었던 것이고, 우리는 그때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경찰 잘못 깨알같이 지적한 검찰은?”

ㄱ총경은 당시 경찰 수사의 한계를 인정했다. “경찰이 부족한 면이 있다. 물론이다. 잘못한 것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사법 처리가 될 만한 혐의는 없었지만 이번 수사단 발표를 보면 검찰이 경찰의 잘못을 깨알같이 지적했다. 받아들일 부분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검찰은 자신들의 김 전 차관 봐주기 의혹을 말하면서 공소시효 때문에 수사할 수 없다고만 한다”고 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한겨레21>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한겨레21>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한겨레21>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http://naver.me/xKGU4rkW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공식 SNS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