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관광지는 '돈'이 된다..패키지 구조 해부

류인하 기자 2019. 6. 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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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유명 관광지는 돈이 된다. 해마다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명소는 여행업자들에게는 수익을 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유럽 3대 야경’ 중 하나로 꼽히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도 마찬가지다. 다뉴브강 야경 투어는 구시가지와 현대적 건물을 한눈에 볼 수 있을뿐더러 어두운 밤 간접조명으로 비춘 부다 왕궁과 어부의 요새는 신비한 느낌까지 갖게 한다.

허블레아니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치니 다리 밤 전경./Pixabay@Zsolt Toth

문제는 이 같은 야경 투어가 사실상 ‘이윤’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된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마이너스에서 시작해 손실금을 채우고 수익까지 내야 하는 유럽 패키지 여행 업체의 수익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유럽 패키지 여행은 동남아와 달리 상점을 들르는 ‘쇼핑옵션’이 없거나 적은 편이다. 동남아 상품의 경우 현지 가이드가 각 상점에 방문한 관광객 1인당 ‘인두세(人頭稅)’를 거둬어들이는 방식으로 이윤을 남긴다. 상점마다 정책은 제각각이지만 관광객이 상점에 들러 물건을 사면 물건값의 몇 퍼센트를 가이드가 돈으로 돌려받거나, 관광객에게 지급되는 생수 등 각종 서비스 물품을 이동차량에 넣어주는 방식으로 이윤을 남긴다. 또 관광객이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일단 상점에 들어가면 들어간 인원만큼 돈을 받기도 한다. 동남아 패키지 여행상품의 경우 ‘저렴할수록 많은 상점을 들른다’는 공식은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

유럽은 쇼핑보다 선택관광이 위주

유럽 패키지 여행은 다르다. 쇼핑옵션이 동남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에 속한다. 가이드가 이윤을 남길 쇼핑 상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 전문 가이드 ㄱ씨는 “요즘은 프랑스의 약국이나 이탈리아의 가죽상점, 올리브 오일·비누상점, 독일의 쌍둥이칼 상점 등을 들르는 쇼핑옵션이 예전에 비해 늘어난 편이긴 하다”면서 “그러나 동남아처럼 여행객들이 원하지 않는 상점을 강제로 들르는 것이 아니라 유럽 관광을 온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들르는 곳 위주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쇼핑옵션을 통해서도 유럽 여행 가이드들은 수익을 얻는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은 단체관광객들을 한곳에 몰아넣어 진행하는 선택관광 상품에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곤돌라, 유람선, 보트, 케이블카 투어 등이 유럽 여행 코스에 유독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유럽 전문 가이드의 말이다. “필수관광이든 선택관광이든 일단 현지에서 (단체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가이드에게 떨어지는 수수료가 있다. 수수료가 곧 가이드의 수입이다. 여행객들이 관광옵션을 많이 하면 할수록 (수익이) 많이 남는다. 이번에 사고가 난 헝가리 허블레아니호 규모의 배는 선박업자가 관광객 두당 8유로(약 1만원)를 가이드에게 지급한다. 관광객 1인당 유람선 탑승료로 50유로를 가이드에게 낸다. 30명이 타면 1500유로(199만원)이고, 40명이 타면 2000유로(265만원)를 가이드가 쥐는 셈이다. 배 한 척을 빌리는 데 한화로 30만~40만원 정도가 든다. 뱃삯을 제한 나머지 돈에서 한국 여행사와 현지 여행사, 가이드가 3분의 1씩(혹은 현지 여행사와 가이드가 절반씩) 나눈다. 많이 태우면 태울수록 수익이 나는 구조다.”

가이드들이 각종 옵션을 유도해 수익을 챙기는 데는 패키지 여행 상품의 이상한 수익구조에 원인이 있다. 허블레아니호 사고가 발생한 ‘참좋은 여행’은 통상 ‘직판 여행사’로 분류된다. 여행사 대리점을 통한 여행객 모집을 하지 않고, 홈쇼핑이나 인터넷 예약을 통해 모으는 방식이다. 그러나 1군으로 분류되는 중급 이상 규모의 여행사들은 본사에서 모객을 하지 않고 대리점을 통해 한다. 고객이 대리점을 통해 여행상품을 구매하면 본사가 대리점에 수수료를 지급한다. 다만 1인당 170만원짜리 7박9일 동유럽 여행 패키지 상품을 구입했다면 여기서 비행깃값과 대리점 수수료 또는 홈쇼핑 광고대행비 등을 제한 나머지 금액이 본사가 가져가는 수익이 된다. 유럽 전문 가이드 ㄴ씨는 “여행사는 비행깃값이 제일 싼 시기에 한꺼번에 티켓을 구매하기 때문에 비행깃값이 일반인들이 구매하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책정된다”고 말했다.

일부 여행사는 관광지 현지에 본사와 연계된 지점을 설치,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사들은 현지 여행업체와 계약을 맺고 상품을 판매한다. 국내 여행사는 한국인 관광객 모집만 해주고, 여행 전반에 관한 일정은 현지 업체가 운영하는 시스템인 셈이다. 가이드 ㄷ씨는 “허블레아니호 사고가 발생하고 곧바로 ‘참좋은 여행’이 사고 수습을 하러 갔지만 가이드들끼리는 ‘참좋은 여행이 뭘 안다고 수습을 하러 가느냐’는 말을 했다. ‘참좋은 여행’도 현지 업체에 모든 일정을 맡기는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경비 지급 못 받은 상태에서 일정 진행

현지 업체는 한국 여행사로부터 일정에 필요한 경비를 모두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관광객을 인계받아 일정을 진행한다. ‘본사에 필요한 경비를 모두 달라는 요청을 하면 안 되느냐’는 질문에 ㄴ씨는 “현지 업체끼리도 경쟁이 치열해 심지어 어떤 곳은 ‘여행객만 모아달라. 진행 경비는 한푼도 안 줘도 된다’고 본사에 요청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ㄱ씨는 “패키지 상품을 구입한 고객들은 170만원, 300만원씩 주고 여행을 떠났겠지만 현지 업체와 인솔 가이드는 수익이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일정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결국 여행 일정을 마쳤을 때 현지 업체와 가이드가 일정 수익을 얻으려면 각종 옵션관광을 통한 이윤을 남길 수밖에 없는 셈이다.

“저렴한 동유럽 코스는 1인당 7박9일에 79만9000원에도 나온다. 버스 대절비가 1인당 20만~30만원이 들어가고, 호텔비가 1인당 전 일정에 10만원, 밥값은 1인당 전 일정 10만원, 기타경비 20만원만 해도 이미 필수 지출경비가 60만원이 된다. 일부 유럽지역은 환경세 명목으로 그 국가에 입국하는 순간 몇 유로씩 돈을 내야 한다. 피렌체의 체크포인트비가 1인당 5~6유로다. 비행깃값이 적어도 70만원이 든다고 치면 랜드사와 인솔 가이드 입장에서는 결국 마이너스 여행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여행사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익명의 유럽 전문 가이드)

유람선이 아닌 허블레아니호와 같은 배를 타는 이유도 결국 수익구조에 원인이 있었다. “입장권을 끊고 타는 유람선은 별도 수수료가 지급되지 않을뿐더러 다른 선택옵션을 진행하다보면 탑승 스케줄이 맞지 않는다. 원하는 때에 탈 수 있어야 하는데 유람선은 저녁 9시면 운항하지 않는다. 결국 개인업자들이 운영하는 낡은 배를 빌려 야경투어를 할 수밖에 없다. 유람선은 1시간 운항이 기본인데 허블레아니호는 호텔 복귀 일정에 따라 강 하류까지 안 가고 30분만 타고 돌아오기도 한다. 식사시간이 안 맞거나 중간에 몇십 분씩 시간이 빌 경우 선장에게 ‘좀 천천히 운행해달라’고 하면 알아서 속도를 줄여 운항을 해줄 때도 있었다.”(가이드 ㄱ씨)

현재 국내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해외 패키지 상품 가운데 유람선, 보트 투어 등은 모두 중단된 상태다. 가이드 ㄱ씨는 “여행사에서 단체문자가 왔다. 현지에서 판단했을 때 위험해 보이거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일정은 진행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대체 진행상품은 없이 위험해 보이는 것은 무조건 피하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서 수익을 내야 하나”라고 하소연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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