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장려금 받으려면 세대분리"..꼼수에 삐거덕대는 청년 지원제도

심영주 인턴기자 입력 2019. 6. 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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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장려금·국가장학금 등 각종 지원제도 부정수급 많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대놓고 부정수급 방법 알려주기도
도움 필요한 저소득층 청년은 못 받고 고소득층이 받기도

"근로장려금은 부모 재산도 본다는데, 세대분리하면 탈 수 있을까요? 근로장려금 받으신 분 좋은 정보 부탁드려요."

'맘카페'를 중심으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지난달 '근로장려금 받는 법'이 이른바 인기글이었다. 근로장려금은 원래 열심히 일은 하지만 소득이 적어 생활이 어려운 근로자 가구에 대해 현금을 지원해 근로를 장려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그런데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제도의 허점을 노려 저소득 가구가 아닌 이들이 받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올해 근로장려금 신청자격이 대폭 완화되면서 그 허점을 노린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이' 준다는 근로장려금 노리는 늑대들

국세청은 근로장려금 신청자격에서 단독가구의 연령요건(30세 이상)을 올해 폐지했다. 30세 미만 청년도 단독가구일 경우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단독가구의 소득기준도 기존 13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완화했고, 최대지급액은 85만원에서 150만원으로 늘렸다. 국세청은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지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국세청은 올해 근로장려금 신청자격을 대폭 완화했다. /연합뉴스

이같은 제도 변화에 일부 맘카페에서는 '세대분리'를 이용해 대학생 자녀가 근로장려금을 받는 방법을 적은 글이 인기를 끌었다. 20대 대학생이 부모가 전세금을 대준 원룸 오피스텔에서 독립해 살면서 방학에만 잠깐씩 아르바이트로 일하면 매년 최대 150만원의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대분리를 통한 단독가구와 연 소득 2000만원 이하의 기준만 맞추면 부모의 재산이 얼마나 많든 상관없이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가운데 환경이 넉넉한 청년에게까지 근로장려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경제 팟캐스트 '신과 함께'를 진행하는 이진우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제는 밖에 나가서 따로 방을 얻어 살 수 있을만한 부유한 가정의 대학생들은 대부분 근로장려금을 받는다"며 "오히려 월세를 아끼려고 부모와 함께 사는 대학생은 부모가 소득이 있거나 집의 전세금이 2억원이 넘으면 가난하더라도 근로장려금을 못 받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근로장려금 부정 수급은 전부터 빈번하게 발생했다.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근로장려금 제도가 시행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부정수급자(자녀장려금 포함)로 밝혀진 경우는 3만9872가구에 268억원에 달한다. 매년 50억원 안팎이 부정수급으로 적발되고 있는 것이다. 적발되지 않는 경우를 합치면 부정수급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맘카페에서 공유된 세대 분리 방법은 부정수급은 아니지만, 정부보조금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지원이 필요없는 중산층 이상 가구에 돌아가게끔 제도의 허점을 악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온라인에서는 근로장려금 부정 수급 방법을 소개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세대분리는 기본이고, 심사 기간에 맞춰 통장 잔고를 비우거나 부양 가족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법, 수급자의 소득 기준에 맞춰서 연소득을 과소 신고하는 법 등이 안내되고 있다. 네티즌사이에서는 "근로장려금은 안 받는 사람이 바보인 국민 저금통"이라는 조롱섞인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의 각종 보조금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닿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선DB

부정수급자를 찾기 위해 국세청도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근로장려금 신청 대상자는 작년에 비해 75% 증가한 61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보다 262만여가구가 늘었다. 국세청이 담당 인력을 늘렸다지만 부적격자나 부정수급자를 꼼꼼하게 살피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필요한 사람은 국가 지원 못 받는 억울한 현실"

대학생에게 지급되는 국가장학금에서도 각종 편법과 꼼수가 횡행한다. 국세청이 관리하는 근로장려금보다 부정수급이 훨씬 쉽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10월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가근로장학금에서는 최근 5년간 3337건의 부정수급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자영업자인 부모를 둔 경우에는 소득신고를 누락해서 국가장학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A(25·여)씨는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공무원이라 국가장학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학기 내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힘들게 벌었다"며 "그런데 직원만 20명인 고깃집을 운영하는 부모를 둔 친구는 국가장학금으로 학비와 용돈을 해결하고 있다. 공무원 월급보다 고깃집 수입이 적은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영업자 부모가 소득을 적게 신고해 그 자녀가 국가장학금을 타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른 대학생 B(25·여)씨도 "부모가 모두 의사인 친구가 국가근로장학금을 받는 경우를 봤다"며 "저소득층 학생 같이 필요한 사람이 국가근로장학금을 지원받지 못하고 부잣집 아이들이 장학금을 받는 건 억울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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