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한 투쟁 하세요"..DJ 민주화신념 '버팀목' 된 이희호 어록

2019. 6. 1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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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선 때 "남편 독재하면 내가 타도"..구속 시절엔 "하루를 살아도 바르게"
"남편이 한 일은 양심·애국적..권력의 회유에 굴한 적 없어"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고(故) 이희호 여사는 '정치적 동지'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난 가득한 정치 역정을 함께 했고, 민주화를 향한 남편의 신념이 숱한 정치 탄압으로 곡절을 겪을 때마다 흔들리지 않게 지켜준 버팀목이었다.

그렇기에 지금껏 회자하는 이 여사의 어록에는 김 전 대통령이 현대사의 거목(巨木)이 되기까지 거쳐야 했던 커다란 역사적 굴곡, 그리고 이를 함께 버텨준 이 여사의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 여사가 남긴 말은 1971년 남편의 첫 대선 도전 때부터 남달랐다.

김 전 대통령이 신민당 대선 후보로 나서자 찬조 연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만약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이후 이 여사는 훗날 인동초(忍冬草)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혹독한 정치적 고난의 길을 감당한 남편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는 조언을 부단히 건넸다.

이 여사는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 쿠데타를 일으키고 해외에서 유신 반대 투쟁을 하던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정부에서는 당신이 외국에서 성명 내는 것과 국제적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독려했다.

김 전 대통령이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도 이 여사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길거리 투쟁에 나선 그는 외국 언론에 "우리의 남편들이 한 일은 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일이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당당히 일하다가 고난을 받고 있는 우리의 남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결국 1977년 징역 5년이 확정돼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옥바라지를 하던 이 여사는 수백 통의 편지로 남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편지에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들은 당신의 고통스러운 생활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떳떳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라고 썼다.

남편을 겨냥한 권력의 탄압은 19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 여사는 그의 신념과 의지를 굳건히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희호 여사, "위중한 상태…세브란스병원 입원해 치료 중" (서울=연합뉴스) 사진은 지난 2017년 1월 1일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이희호 여사. 2019.4.21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이 여사는 편지에서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르게 살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유난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받은 것이 고난의 상입니다"라며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과 귀국 후의 가택연금, 잇단 대선 낙선 등 숱한 시련을 거쳐 제15대 대선에서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이루기까지 곁을 지킨 이 여사는 2009년 8월 평생 사랑하고 존경했던 남편의 서거를 맞는다.

이 여사는 이때에도 남편의 유지를 국민들에 또박또박 전했다.

국장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잠시 멈춰선 동안 단상에 오른 그는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어 "제가 바라옵기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라고 당부했다.

이 여사는 홀로된 후에도 남북 화해를 위해 남편이 걸었던 길을 이어갔다.

2015년 8월 방북 일정을 소화한 후 기자회견을 갖고 "평양에서 애육원, 육아원을 방문하고 해맑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으면서 다음 세대에 분단의 아픔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욱 깊이 새기게 됐다"며 "국민 여러분도 뜻을 모으셔서 6·15가 선포한 화해와 협력, 사랑에 선언과 평화와 하나 됨의 역사를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bob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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