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한국당이 말할 수 없는 '봉준호'와 '전광훈' [왜]

박순봉 기자 입력 2019.06.11. 11:36 수정 2019.06.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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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치는 ‘말의 성찬’이라고 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정당들은 회의를 하고 말을 쏟아냅니다. 이 회의에서 당 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들이 적게는 4~5명 많게는 10여명이 모두 발언을 합니다. 당직을 맡은 정치인들과 이들을 보좌하는 직원들은 매일 아침 쓸거리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선 발언자와 내용이 겹쳐서 갑자기 회의 중간에 내용을 빼는 경우도 목격됩니다. 따로 준비한 내용이 없을 때는 비슷한 내용을 그대로 읽기도 합니다. 아침 발언 뿐 아니라 계속해서 존재감을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정치인들은 페이스북 등의 SNS에도 각종 이슈에 대해 꾸준히 견해를 밝힙니다.

■한국당에선 찾아볼 수 없는 ‘봉준호’

매일 소재를 찾는 정치인들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매우 반가웠을 겁니다. 한국인 감독이 권위가 있는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내용은 이렇게 저렇게 활용하기 좋은, 정치권에서 언급하기에 매력만점인 소재입니다. 실제로 봉 감독의 수상 소식을 매우 많은 정치인들이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회의 석상에서도, 논평에서도 봉 감독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한국당 회의에서 봉 감독을 언급한 것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이 유일합니다.

나 원내대표의 당시 발언은 ‘봉준호→알랭 드롱→리플리 증후군→문재인 정부 비판’으로 요약됩니다. 나 원내대표는 “한국 영화 100년의 선물을 봉준호 감독이 가져다 주었다. 황금종려상 받았는데, 봉 감독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발언을 시작합니다. 이어 “그런데 칸 영화제 소식중에 흥미로운 것. 알랭 드롱 배우가 7번째 실패 끝에 칸 영화제에서 명예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알랑드롱 영화를 생각해봤는데, 그 역할이 뭐냐면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거짓말이 아닌 진실로 느끼게 된다는 역할이었다”며 “그것으로 인해서 리플리 증후군 용어 생기게 된다. 그거 보면서 생각난게 문재인 정부다”라고 발언했습니다. 봉 감독의 수상을 빌어 문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봉 감독을 언급했다고 보기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왼쪽)과 송강호 배우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당의 원죄 문화계 ‘블랙리스트’

그렇다면 한국당은 왜 이토록 좋은 소재를 ‘모른 척’ 하는 것일까요. 이는 봉 감독이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야당 후보를 지지한 예술인이나 ‘세월호 사고’에 대해 시국선언 등을 한 문화예술인의 명단을 정부가 작성했습니다. 지원을 끊거나 검열 등의 불이익을 줄 목적이었죠. 블랙리스트에는 9000여명의 이름이 올라와 있으며, 이를 주도한 혐의(직권남용죄)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구속 기소된 바도 있습니다.

한국당 입장에선 봉 감독을 언급하게 되면 곧바로 박근혜 정부의 과오를 들춰내게 됩니다. 언급을 피할 수밖에 없었겠죠.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지난 3일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독립영화 감독, 연극이나 소설 쪽 종사자처럼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은 힘든 시절을 보냈을 것”이라며 “그 사람들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당은 비판할 수 없는 전광훈 목사

다른 이유로 한국당이 언급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 전광훈 목사입니다. 전 목사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독일 히틀러에 비유하며 하야를 주장하고, 청와대 앞에 캠프를 치고 1일 릴레이 단식 기도회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서도 “문재인 정권으로 인해 종북화, 공산화됐다” 등 거친 발언을 쏟아낸 바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물론,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전 목사의 발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지난 10일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모든 언론이 전 목사의 비상식적 발언을 무시해달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당에선 전 목사를 비판하는 논평이나 회의 발언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한기총이 본래 한국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데다, 황교안 대표와의 특별한 관계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황 대표는 당 대표 취임 직후인 지난 3월 전 목사를 찾았고, 전 목사는 이 자리에서 황 대표에게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전 목사가 지난달 설교 도중 황 대표가 자신에게 “대통령을 하면 목사님도 장관 한 번 하시겠느냐”고 전했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고요. 이런 과정에서 황 대표와 전 목사 사이에는 일종의 ‘같은 편’이란 딱지가 붙은 셈이죠. 쉽게 비판의 말을 쏟아낼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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