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한빛1호기, 대형참사 날 뻔했다

정철운 기자 입력 2019. 6. 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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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내부문건에서 '휴먼 에러' 외 제어봉 장애 가능성 언급 국회 과방위, 원안위·한수원 안전불감증과 늑장대응 일제히 비판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긴급현안보고 자리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안전불감증과 늑장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앞서 지난 5월10일 전남 영광 한빛1호기 원자로 수동정지과정에서 한수원은 매뉴얼에 따라 즉시 정지해야 했던 원자로를 무려 12시간 동안 가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원안위는 사상 첫 특별사법경찰 투입을 결정하며 사태 파악에 나섰다.

원안위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전 10시30분경 한빛1호기 제어봉 제어능 측정시험 과정에서 열출력에 이상이 생겨 원자로 냉각재 온도가 급상승했다. 한수원은 열출력이 제한치(5%)를 초과하면 즉시 원자로를 수동정지해야 한다는 운영기술지침서를 어기고 12시간 가까이 원자로를 가동시켜 원자력안전법 26조를 위반했다. 면허가 없는 사람이 제어봉을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한수원은 지난달 15일 '원자로 수동정지 원인 및 재발방지대책 보고'란 제목의 내부문건에서 △제어봉 인출시 반응도관련 운전변수 감시 미흡 △발전소 기기 조작원칙 미준수 △제어봉 인출 전 반응도 영향 평가 미흡 △설비 이상 발생 시 정비처리 절차 미준수 등을 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당시 근무조는 제어봉 인출 전 반응도 계산을 수행하면서, 원자로 상태가 미임계인 것으로 착각했다. 제어봉을 인출하면 원자로 출력이 증가하기 때문에 원자로 반응을 사전에 계산해야 하는데 당시 근무조가 상황 자체를 잘못 인지했다는 것이다. 이철희 의원은 이를 두고 "제어봉을 인출하면서 디지털제어봉위치지시기(DRPI)와 스텝 계수기, 냉각재 온도만 살피고 원자로 출력과 기동률 지시기를 감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건은 '휴먼 에러' 외에 설비 이상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었다. 사건 당일 원자로의 브레이크에 해당하는 제어봉이 장애를 일으켰다는 것. 실제로 내부문건에서 제시한 재발방지대책을 보면 제어봉 구동장치에 대한 대대적 점검을 예고하고 있다. 한수원 스스로 한빛 1호기의 제어봉 결함 가능성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 영광 한빛 원전. ⓒ영광군

이철희 의원은 "제어봉 자체에 중대 결함이 있다면 이번 사건은 관계자 문책과 기강 정립 정도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휴먼 에러' 외의 요인이 있었다면 대형사고 가능성이 있었으며, 단지 우리는 운이 좋았던 것일 수 있다. 한수원의 이 같은 문건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다가 이철희 의원실에 의해 11일 공개됐다.

엄재식 원안위원장은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현재 특별사법경찰관을 투입해 특별조사 진행하고 있다"며 "안정성을 철저하게 확인해 필요한 경우 행정처분 하겠다"고 밝혔다. 원안위는 크게 △면허 비보유자가 제어봉 조작 당시 제대로 감독을 받았는지 여부 △운영기술지침서 인지 여부 및 즉시 수동정지하지 않은 것의 고의성 여부 △제어봉 및 핵연료 관련한 기기 및 설비 오류 여부 △제어봉 조작 실수 등 인적오류 가능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엄재식 위원장은 "한수원이 운영지침을 어긴 것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장 사고 발생 약 12시간이 지난 오후 10시2분에서야 원자로가 정지되며 원안위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원안위가 한수원에 수동정지를 지시한 시각은 오후 9시37분이었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일단 정지해놓고 조치하는 게 맞다. 어떻게 원안위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대응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도 저출력 상태에서 제어봉 빼내다 열출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체르노빌과 유사했던 상황 아니었나"라고 우려했다. 김경진 민평당 의원은 "이 정도 상황이면 한수원으로부터 사고 통보가 오기 전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먼저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김경진 의원과 변재일 민주당 의원 등은 주조실 등 핵심 시설에 당장 CCTV를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우리는 바로 (사고 사실을) 원안위에 보고했고, 킨스 조사단이 오후 4시쯤 왔다"며 늑장 대응 비판에 해명했다. 사고 당시 무면허 운전과 관련한 관련자 진술이 번복된 것에 대해선 "스트레스를 받아서 처음에는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11일 오후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재영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엄재식 원안위원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연합뉴스

김성수 민주당 의원(과방위 여당 간사)은 "경영상 이유로 웬만하면 원전을 가동시키겠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사고다. 엄청난 실수가 반복되면 체르노빌과 같은 사고를 배제할 수 없다"고 비판한 뒤 "한수원에서 처음에 열출력 초과사실을 일부러 (원안위에) 보고 안 한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원안위를 향해서는 "안전 관리·감독기관이 왜 한수원한테 의견을 물어보며 시간을 끌었느냐"며 즉각 대응을 주문했다. 의원들의 비판이 거듭되자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책임질 것은 확실히 책임지겠다"며 거듭 사과했다.

이날 긴급현안보고에는 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민중당 의원이 참석했고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의원은 불참했다.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정재훈 한수원 사장에게 "이번 사고가 정부의 탈핵 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맞느냐"고 물었고, 정 사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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