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오관철의 경제 단상]'안미경미' 논리를 경계한다

오관철 산업부장 입력 2019.06.1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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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하는 데까지 해보고요. 화웨이 이슈 대응에 책임지라고 하면 쿨하게 인정하고 집으로 가려고 합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 중국 화웨이와 거래하는 국내 IT기업 임원이 전해온 카톡 메시지다.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이렇게 국내 기업을 옥죄고 있다. 화웨이 제품을 쓰는 기업이란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행여 미국 정부에 밉보이는 건 아닌지, 눈치만 보다 미·중이 휘두를 칼날에 훅 가는 건 아닌지, 중국에 반감을 가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기업이 이곳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 정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중국 내 한국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미국의 대중 보이콧에 협조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렸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지만 해당 기업들은 속사정을 털어놓지 못한 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경제논리가 우선해야 할 기업들로서는 미·중 분쟁이 야속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미·중 갈등을 보면 이런 나라들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고 국제사회의 리더를 자처했나 싶다. 트럼프가 국제규범 준수, 인권·자유주의의 가치를 내걸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운다면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겠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자국 기업의 이익뿐인 것 같다. 시진핑 역시 절대권력을 구축하며 역내 패권을 추구해 왔다. 노자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전쟁터를 달리던 말을 되돌려 밭을 일군다”는 말로 분쟁과 전쟁의 불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이런 말이 시진핑에게 먹힐 것 같지 않다.

특히 트럼프는 다자 간 자유무역체제의 상징인 세계무역기구(WTO) 무력화를 노골화하고 있다. 임기 종료로 빈자리가 생긴 WTO 상소기구 위원들의 선임 절차를 사실상 보이콧하고 있다. 국내 통상 전문가는 “미국이 일본을 등에 업고 WTO 고사 작전에 나서고 있다”고 우려했다. 2001년 WTO로 중국을 끌어들인 건 미국이었다. 미국 소비자는 중국산 제품을 싼값에 사들였고 미국 기업은 거대한 중국 시장을 얻었다. WTO 체제에 편입되며 고속성장의 길을 연 중국도 각종 비관세 장벽과 기술 탈취 등으로 국제사회의 원성을 산 건 주지의 사실이다.

대화를 통한 윈윈보다 승자독식을 추구하는 두 사람의 조합은 글로벌 경제의 최대 불확실성으로 상당기간 이어질 수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무역분쟁은 자해 행위라고 우려하는 등 미·중 갈등을 우려하는 국제기구의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지만 두 지도자는 귀담아들을 태세가 아니다. 동맹국 미국과 최대 경제파트너인 중국 사이에 낀 우리로서는 넘기 힘든 파고가 눈앞에 닥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안미경미’(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전략을 바꿔야 하며 굳이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보면 명쾌하고 속 시원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단견이라 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중 수출의존도는 27%, 대미 수출의존도는 12%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내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탈중국 행렬이 나타나고 있다곤 하나 여전히 중국에 발을 담근 한국기업이 너무 많다.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건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고 안미경중에 매달리자는 얘기도 아니다. 사실 안미경중은 얼핏 그럴듯하나 경제적 이해가 집중되면 안보적 이해도 집중되기 마련이란 점에서 상상 속의 개념일 뿐이다. 경제와 안보를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두 나라에 친구라는 점을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미·중 충돌이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필연적 과정이란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가 간 관계는 길게 보면 기본적으로 갈등과 협력의 변주곡이다. 사드 사태와 달리 화웨이를 필두로 한 이번 미·중 분쟁은 한국이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와 연대할 공간도 넓다. 독일과 프랑스 등이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입장 표명을 유보한 채 버티는 것도 이유가 있다.

되레 지금은 섣부른 소신을 밝힐 때가 아니며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해야 할 때다. 미·중과 안보와 경제 모두에 걸쳐 우호적 협력관계를 증진시켜 나가는 전략을 짜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경분리 원칙을 확고하게 견지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망망대해를 홀로 건너야 하는 아득함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가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나 미국이냐, 중국이냐 어느 쪽을 선택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어선 안된다.

양쪽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할 때는 과학적 증거와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보수집 지원을 요청할 권한을 지닌 중국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중국 기업은 없다고 하나 화웨이 통신장비가 국내 안보에 위협요인이 되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오관철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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