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성형외과 의사 울게 만든 '강남언니' 앱

입력 2019.06.12. 11:36 수정 2019.06.1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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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정보 앱, 무료 견적 상담·할인 혜택으로 인기
의료계, "제 살 깎아 먹는 경쟁 탓 시장 교란" 우려
서울 강남서, 의료법 위반 등 고발 사건 조사중
"가격 경쟁 위주 마케팅 벗어나 안전성 따져야"
성형시술 정보 앱 ‘강남언니’의 화면.

최근 무료로 성형외과 시술비 견적을 상담해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 인기를 끌면서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에 놓인 성형외과 병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의료계에선 가격할인 경쟁을 유도하는 ‘성형앱’이 의료시장을 교란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은 앱 서비스 운영사의 의료법 위반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1월 강남구보건소가 의료법 위반 등으로 고발한 성형시술 정보 앱 ‘강남언니’를 개발한 ㈜힐링페이퍼와 입점 병원 등을 조사 중”이라고 12일 밝혔다.

의학전문대학원 출신 의사 2명이 2015년 출시한 ‘강남언니’는 현재 전국 1300여개의 병원이 입점해 모두 86만여건의 시술 상담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앱의 인기에 힘입어 힐링페이퍼는 지난 3월 사모펀드 운용사들로부터 45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힐링페이퍼 쪽은 “미용 진료 분야의 정보 불균형 문제를 정보통신(IT) 기술로 해소하기 위해 앱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이 꼽는 이 앱의 가장 큰 장점은 발품을 팔지 않고도 시술비용을 무료로 상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면과 옆모습 등을 촬영한 사진 3장과 함께 수술 부위, 예산, 원하는 스타일, 시술법 등을 견적요청서에 남기면 병원으로부터 소요비용 등에 대한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앱을 통해 시술을 예약할 경우 원래 가격보다 최대 40%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문제는 저렴한 시술비용을 앞세워 마케팅이 이뤄지다 보니 앱에 입점한 병원들이 보다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제 살 깎아 먹기’식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언니’ 앱에 입점한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의 경우 쌍꺼풀 수술을 단돈 29만원에 할 수 있다는 홍보 문구까지 내걸었다. 일반적인 쌍꺼풀 수술 가격은 150만~200만원 상당이다.

의료계는 이 같은 가격 경쟁 과열이 의료시장 교란은 물론 의료사고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강남 유명 성형외과 원장 출신의 한 개업의는 “성형앱을 통한 병원 홍보를 제안받은 적이 있는데, 앱에 입점한 병원들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아 의사가 어떻게 이윤을 남기는지 의아했다”며 “환자가 성형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얻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광고비에 가격 경쟁까지 더해 손실이 생긴 병원은 환자에게 추가 진료를 제안해 수익을 내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성형시술 정보 앱 ‘강남언니’의 화면. 서울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는 쌍꺼풀 수술을 29만원에 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병원들이 이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성형앱에 입점하게 된 배경에는 미용 목적 의료시장이 포화상태인 상황에서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인 환자들이 대거 빠져나갔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황규석 강남구의사회장은 “2009년 외국인 환자 유치가 허용된 뒤 2014년 전후로 중국 자본이 투자한 대형 성형외과 4~5곳을 포함해 강남에 성형외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다가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인 의료 관광객이 감소하면서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며 “10~20년 이상 영업한 병원들은 고정 고객이 있지만, 새로 개업을 한 의사들의 경우 환자가 없어 성형앱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강남구청이 집계한 ‘강남구 소재 성형외과 현황’(의원급·중도 폐업 미포함)을 보면, 2010년 181곳에 그쳤던 성형외과 숫자는 2013년 235곳, 2016년 304곳, 2019년 5월 기준 377곳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9년 사이 전문의가 개원한 성형외과 숫자만 2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강남·서초구 소재 성형외과 가운데 폐업한 병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 역시 2015년 26곳, 2016년 33곳, 2018년 34곳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도 지난 4월까지 7곳이 문을 닫은 상태다.

강남구청 제공

이런 상황에서 대한의사협회는 성형앱이 의료법 제27조 3항(환자유인 행위)과 제56조 2항(의료광고 금지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지난 4월 병원들의 주의를 당부하는 공문을 보냈다. ‘강남언니’는 고객의 상담신청 건수가 많을수록 병원으로부터 광고비를 더 받는 시피에이(CPA·Cost Per Action) 방식으로 광고비를 책정한다. 의협 등은 영리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의료법 제27조 3항에 비춰볼 때 앱 이용자들의 상담신청 건수에 비례해 광고비를 받는 ‘강남언니’가 사실상의 환자유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힐링페이퍼는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시피에이는 포털 등 검색광고 업체에서 일반적인 광고비 책정 방식이기 때문에 의료법과는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용자가 앱을 통해 상담신청을 하더라도 시술 예약 등 병원 매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성형앱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진기남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이용자 입장에서 한 번에 가격정보를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최근 유행하는 성형앱들은 의사의 경력이나 실력 등 의료기관의 안전성보다는 소비자를 자극하는 할인가격 위주로 병원을 홍보하도록 설계돼 있다”며 “독일의 의료관광 정보 앱인 ‘메디고’(Medigo)의 경우 성형외과의 가격정보도 제공하지만, 해당 병원이 환자들의 안전과 관련해 어떤 인증을 통과했는지 등을 균형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의료서비스를 질보다 가격 문제로만 따지는 세태가 반영된 것 같아 염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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