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나이 들어가는 일본의 '빈집 메우기' 대작전

류애림 일본 통신원 입력 2019.06.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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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 탓 빈집 증가..'빈집은행' 등 대책 마련 골몰

(시사저널=류애림 일본 통신원)

'뒷문을 열고 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먼지 냄새가 풍겼지만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 평 남짓한 현관 한쪽에는 고장이 난 듯한 녹슨 세탁기가 놓여 있었다. 현관 바닥에는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쓴 슬리퍼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2012년 단행본으로 출판된, 한국에서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중 한 부분이다. 쇼타, 아쓰야, 고헤이 세 명의 좀도둑이 범행 후 폐가가 된 잡화점에 숨어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문을 닫은 지 30년이 훨씬 넘은 나미야 잡화점은 이들이 숨어들기 전까지 방치돼 있었다. 세 사람은 이 빈집에서 과거의 사람들과 편지를 나누며 소통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먼지 쌓인 채 방치된 빈집, 폐가는 결코 신비롭거나 낭만적인 장소가 아니다.

도쿄 근교의 사이타마(埼玉)현 오미야(大宮)구에 거주하는 주부 A씨는 오미야역에 갈 때마다 불쾌한 광경과 마주한다. 역으로 가는 대로변에 다 쓰러져가는 빈집이 몇 년째 보행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갈 때마다 A씨는 지진이나 게릴라 호우에 집이 무너져 다치는 사람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A씨의 이웃에도 빈집이 늘고 있다. 소유자가 세상을 떠난 뒤 상속인이 없거나 상속을 포기해 빈집으로 방치된 경우가 많다. 이웃의 빈집에는 길고양이들이 번식하고 여름에는 벌레들이 득실거린다. 벌레나 동물보다 무서운 것은 역시 사람이다. 수상한 사람이라도 빈집에 숨어들면 어쩌나 걱정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탓에 '빈집'이 크게 늘어나면서 일본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 AP 연합

정부·지자체, 빈집은행 등 대안 찾기 나서

일본이 '빈집' 탓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13년 시점으로 일본 내 빈집은 820만 호에 이른다. 총 주택 6063만 호 중 13.5%를 차지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은 주택을 빈집으로 정의하고 있다. 빈집 820만 호 중 임대용, 매각용 또는 별장 등 이차적 주택을 제외한 빈집, 즉 전근·입원·사망·전출 등을 이유로 거주 세대가 장기적으로 살고 있지 않은 주택, 재건축 등을 위해 해체가 예정된 빈집 등은 318만 호(총 주택 수의 5.2%)였다. 과거 10년 동안 1.5배, 20년 동안 2.1배 증가했다. 관리가 되지 않는 빈집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하고, 공중 위생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주위 경관을 해치기도 해 지역 주민의 생활환경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빈집 문제가 사회 전체의 문제로 부상하자,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들은 2014년 '빈집 조례'를 제정했다. 빈집이 비단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농어촌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생겨나서다. 일본 정부 차원의 대응이 요구되면서 '빈집 대책 추진에 관한 특별 조치법'(빈집법)이 제정되고 2015년 5월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일본의 '빈집법'에 따르면, 빈집의 관리 책임은 일차적으로 소유자가 진다. 빈집 소유자 이외에도 관리인, 소유자가 사망했을 경우에는 상속인이 관리를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관리 책임자가 경제적 이유 등으로 관리할 형편이 되지 않을 경우 주민들과 가장 가깝고 빈집 실태 파악이 용이한 지자체가 빈집 관리에 주체적인 역할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 일본 정부와 상위의 도도부현(都道府縣)이 이를 지원하도록 했다. 2018년 6월에 각의 결정된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 2018'에서는 빈집·빈땅의 유통과 이용·활용을 위해 지자체·부동산단체 등이 선진적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빈집 활용을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빈집은행'이다. 정부·도도부현·지자체가 빈집을 임대 또는 매각하기를 바라는 소유자들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를 수집해 빈집을 사용하고 싶다는 희망자에게 소개하는 제도다. 이전까지는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지역에 한정한 데이터를 관리했다. 그러나 2018년부터는 데이터를 전국적으로 집약해 희망자는 일본 전국의 빈집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전국판 빈집은행은 일본 국토교통성이 선정한 민간업체가 운영하고 있다. 관련 비영리단체(NPO)가 빈집은행을 운영하고 지자체가 이를 활용하기도 한다.

빈집은행 등을 이용해 새로운 주인을 만난 빈집은 여러 형태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실제 96세의 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로 비어 있었던 니가타(新潟)현 미나미우오누마(南魚沼)시의 빈집은 지역 청년에 의해 유학생들의 셰어하우스로 변신했다. 또 많은 지역에서 빈집이 값싸고 분위기 있는 숙박시설로 탈바꿈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갈 길 먼 빈집 문제에 '양도세 공제' 4년 연장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빈집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지난 4월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0월 기준 빈집의 비율은 13.6%다. 2013년에 비해 0.1%포인트 증가했다. 총 주택 수도 6242만 호로 179만 호 늘었다. 846만 호가 빈집이다. 그중 347만 호가 임대용·매각용 또는 별장 등 이차적 주택을 제외한 빈집으로 5년 전에 비해 29만 호 증가했다. 가장 빈집 비율이 높은 곳은 야마나시(山梨)현으로 21.3%에 달했다. 낮은 편에 속하는 도쿄도 10.6%가 빈집이다. 도쿄의 경우 낡은 빈집보다는 입주자를 기다리는 임대주택이 많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랫동안 공실 상태라면 주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빈집은 빈집은행만으로 활용하기 힘들다. 또 소유자가 파악돼도 소유자 본인의 소재나 상속인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빈집을 처분하거나 활용하기 어려워진다. 빈집은행은 어디까지나 소유자가 임대나 매각을 바랄 때 지자체가 중개해 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고령 소유자의 사망과 함께 주택의 상속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기에 발생한다.

결국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빈집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상속으로 획득한 가옥이나 토지를 팔면 양도소득세를 최대 3000만 엔(약 3억2700만원)까지 공제해 주는 제도를 4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2016년 4월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당초 2019년 말까지 시행될 예정이었다. 사이타마현과 교토시 등의 경우 고령 주민들을 대상으로 상속에 관한 무료 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법무사와 행정서사가 강사로 노인 클럽이나 자치회에 파견돼 상속의 필요성과 상속할 때 득이 되는 정보 및 요령 등을 강의한다. '만약 유언이 있을 경우' '치매에 대비하지 못했을 경우' 등을 테마로 구성된 책자도 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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