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디지털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하여 / 전병유

2019. 6. 1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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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

우리는 주변에서 배달, 가사서비스, 대리운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접한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 노동’이라는 용어는 아직 낯설다. 단순히 풀어 쓰면, 디지털 플랫폼에 의해 매개되는 노동, 또는 앱이나 웹을 통해 거래되는 노동이다. 우버 드라이버, 배달기사와 같은 ‘긱 워크’(gig work) 유형과 터커·태스커와 같은 ‘클라우드 워크’(cloud work) 유형이 있다.(터커와 태스커는 아마존의 엠터크(MTurk)나 태스크래빗(TaskRabbit)과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일거리를 할당받아 일하는 것을 말한다.) 전자는 앱-지역(위치) 기반이고 후자는 웹-온라인 기반이다.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선 “디지털 플랫폼 노동 종사자”라고 표현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노동자로 부르지 못하는 것은 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의 경계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임금 노동자로서의 권리인 노동권과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자영업자로서의 지원도 받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다를 바가 없다. 노동의 유연화와 외주화라는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다른 측면도 있다. 노동은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고 더 불규칙해진다. 일거리 없이 대기하는 시간도 전체 일하는 시간의 3분의 1이나 된다. 보수는 임금 노동자의 70% 수준이다. 사용자가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만 지불하고, 노동권과 사회적 보호를 위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금도둑이라고도 한다. 업무의 사회성이 떨어지고 삶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노동중개시장을 현대화하는 긍정적 기능도 있다. 소득 발생과 중개수수료를 투명하게 하고, 숨어 있는 시장을 드러나게 하며 미활용 노동의 시장 참여를 촉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토바이 퀵서비스 기사들은 휴대폰 3~4개를 가지고 10개 이상의 화면을 켜놓고 실시간으로 최적의 주문을 파악하고자 한다. 최근 등장한 한 플랫폼은 하나의 화면에서 최적 주문을 파악해 제공하는 서비스를 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국내에서 관련 종사자의 규모는 50만명 내외로 약 200만명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4분의 1 정도다. 아직 절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미래의 지배적 노동 형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는 저숙련 부문에 한정되어 무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다른 영역으로 확산됨에 따라 더 심화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플랫폼 노동에 대한 대응은 바람직한 일의 미래를 구상한다는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플랫폼 노동을 ‘기생’이 아닌 ‘상생’과 ‘공생’의 기술로 활용하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스타트업인 노동익스체인지(Labour Xchange)는 추가 소득이 필요한 노동자와 보조적인 유연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사용자를 연결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노조가 같이 참여하고, 생활임금을 보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제3의 고용 지위를 만들기보다는 임금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는 오분류를 방지하고, 그래도 남는 회색 지대에 대해서는 가능한 권리와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다만 고용 지위를 명확하게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우려인 불규칙한 소득을 안정화하는 방안이 우선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소득 보장 시스템을 적용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과 소득의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소득 보장 제도에 관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실업보험이 아닌 소득보험을 제안한다. 올해의 소득이 직전 연도의 평균 소득에 비해 낮아질 경우, 그 차액의 50%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재원은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사용에 비례하여 부과되는 세금으로 하자는 것이다. 모든 이해당사자와 정부가 기여하는 디지털 일자리 기금을 만들고 필요한 사회보장급여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기금은 언제든지 인출하거나 변경, 중지할 수도 있는 유연한 형태의 개인저축계좌제로 운영해볼 수도 있다. 물론 누가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 장기적으로 디지털 플랫폼 노동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 당사자들의 사회적 대화와 합의 시스템 구축이 우선일 것이다. 항상 새로운 기술과 혁신은 유토피아로의 길과 디스토피아로의 길을 모두 제시한다.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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