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과정에 부당한 공권력 행사"

이희경 2019. 6. 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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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주민 강제 연행하고 일상적 채증 실시"
경찰이 한국전력이 주도한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각종 인권침해를 저질렀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옷을 벗은 채 반대 시위를 하던 고령의 여성을 남성 경찰이 연행하고, 반대 주민을 대상으로 상시적으로 채증을 실시하는 등 경찰은 송전탑 건설이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13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경찰청에 재발 방지 및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이 사건은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한국전력과 해당 지역 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갈등을 말한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 3·4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를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로 보내려고 90.5㎞ 구간에 송전탑 161기를 세우는 ‘신고리 원전-북경남변전소 765㎸ 송전선로 건설사업’의 일부다. 공사는 2008년 8월 시작됐지만 주민들은 전자파가 건강에 미칠 악영향 등을 우려하며 반대에 나섰다.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 2명이 분신하거나 음독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2014년 6월에는 반대 농성장을 철거하기 위한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일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경찰은 송전탑 및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국책 사업’으로 여기고 송전탑 건설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나 활동을 정보력과 물리력을 동원해 저지하려 했다. 구체적인 지시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2013년 9~10월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이 엄정 대응 방침을 밝히는 등 농성을 진압하는 쪽으로 경찰 병력을 운용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고 진상조사위는 전했다. 경찰은 공사재개에 따른 경력의 지원 일정, 투입 인원수, 차량 통제 방안 등을 한전과 일일이 논의했다. 경찰은 농성자의 수십 배에 달하는 경력을 동원했고, ‘3선 차단’의 개념을 도입해 반대 주민은 물론 활동가, 일반 주민들의 이동권까지 침해했다.
 
경찰은 특히 행정대집행이 이뤄진 2014년 6월11일 과도한 공권력 행사를 일삼았다. 당시 경찰은 천막을 찢고 들어가 주민들이 목에 매고 있던 쇠사슬을 절단기로 끊어내 밖으로 끌어냈다. 또 옷을 벗은 고령의 여성 주민들이 남성 경찰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오는 등 인권침해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고 진상조사위는 지적했다.
 
아울러 반대 주민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정보 활동도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불법행위가 발생하기도 전에 특정 주민의 이름과 나이, 처벌전력을 파악해 검거대상으로 분류하고 전담 체포·호송조를 별도 편성해 마을별로 배치했다. 정보관별로 특정 주민을 배당해 관찰과 순화·설득 작업을 벌이도록 했는데, 이런 활동은 주민들에게 협박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진상조사위는 전했다. 경찰은 또 송전탑 건설 반대행위에 대한 강경수사 방침을 세우고 사복 채증 조를 편성해 상시로 광범위한 채증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는 이와 함께 한전이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채 사업을 강행한 탓에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전은 주민들에게 사업추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2005년 8월께 한전의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밀양 주민은 단장면 50명, 상동면 38명, 부북면 10명, 청도면 28명 등 총 126명으로,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5개 면 인구(2만1천69명)의 0.6%에 불과했다. 청도 각북면 삼평리에서는 당시 이장이 2006년 주민공청회에 주민 50명이 참가한 것처럼 주민의견서를 위조해 군청에 접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밀양과 청도 주민들의 건강권과 재산권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도 적절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진상조사위는 지적했다.
 
진상조사위는 “주민들이 여전히 심각한 스트레스와 외상을 겪고 있다”며 “한전은 주민들의 재산·건강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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